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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잊혀진 영웅 여성첩보원 "피란민 위장, 북 침투해…"

[앵커]

6000명 참전…20%는 여자 첩보원, 적진 활동…아군 공격에 희생되기도
첩보 부대의 비운…남은 기록 거의 없어

이틀 뒤면 국군 창설 65주년, 국군의 날입니다. 올해는 정전 60주년이기도 한데요, 6.25 당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 여성들이 있습니다. 바로 미군 소속 첩보 부대원들인데요,

잊혀진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를, 김상진 기자와 문호기 피디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인천에서 16km 정도 떨어진 등대섬 팔미도.

6.25의 전세를 뒤집은 유엔군 인천상륙작전의 전초 기지입니다.

지난 14일, 백발이 성성한 58명의 참전자가 이 섬을 찾았습니다.

[김덕준/KLO 전우회 회장 :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하면서 맥아더 사령관의 극비 지시로 등대 탈환 및 점등에 필요한 공작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북한군을 물리치고 되찾은 팔미도 등대.

이튿날 새벽, 261척의 연합군 함선은 등대 불빛을 길잡이 삼아 인천 해안을 휩쓸었습니다.

연합군 팔미도 탈환 전투의 주역은 바로 한국인이었습니다.

미 극동군사령부가 극비리에 운영하던 한국인 첩보부대, 이른바 켈로(KLO)부대 요원들이 그 주인공.

KLO는 'Korea Liaison Office'의 약자로 한국 연락사무소를 뜻합니다.

1948년 신탁통치를 하던 미군이 철수하면서 첩보 작전을 위해 미 극동군사령부가 만든 부대입니다.

[양욱/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 군사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 없이는 작전을 구상할 수도 없고, 실행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첩보부대였던 만큼 켈로부대의 행적은 아직도 상당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전사하면 새 요원을 뽑는 방식으로 모두 6000명 정도가 참전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중 20% 정도가 여성 첩보원이었습니다.

[더글라스 딜라드/전 미 극동군사령부 정보장교 : 여성들에게 북한 땅에 낙하산으로 침투하는 훈련을 시켰어요. 정말 잘 해냈어요.]

취재진은 잊혀진 한국의 여성 첩보원을 직접 찾아나섰습니다.

78살 심용해 할머니는 16살의 나이에 미군을 따라나섰습니다.

[심용해/6·25 당시 첩보원 : 내가 입대할 때, (함께 간) 선배들이 나보다 세살 많고, 네살 많고, 다섯살 많고…이런 사람을 30명을 데리고 간 거야. 다 죽었어. 진짜 죽으러 가서 다 죽었는데, 나만 산 거야.]

어렸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자진 입대한 심 씨는 미 육군 25사단에 배속됐습니다.

피란민 복장으로 중서부 전선의 적진에 들어가 병력 규모와 화기 배치 등 각종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오는 게 임무였습니다.

[심용해/6·25 당시 첩보원 : 가서 보는 건 다 머리에 넣고 와야 돼. 무슨 부대가 있더라. 거기에 몇 명쯤 있더라.]

적진에서 활동하다 보니 아군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용해/6·25 당시 첩보원 :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지면서 이렇게 돼. 그래서 엎드리라는 거야. 왜? 등, 허리, 머리만 맞지 않으면 죽지 않으니까…]

88살 김영옥 할머니는 명문인 평양 서문여고를 나온 재원이었습니다.

한때 김일성보다 당서열이 높았던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두봉의 비서로 발탁된 뒤, 본격적인 스파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영옥/6·25 당시 첩보원 : 문서를 건네지는 못 해요. 구두로만 다 했지. 깊숙이 있었죠. 아무거나 빼내라면 다 빼낼 수 있었지.대동교가 이렇게 있으면 탱크가 지나가는데 여기 한 대, 여기 한 대, 이렇게 해서 밤에 내내 그렇게 움직였어요.]

평양에 잠입한 켈로 요원의 설득으로 남한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옥/6.25 당시 첩보원 : 대동교가 이렇게 있으면 탱크가 지나가는데 여기 한 대, 여기 한 대, 이렇게 해서 밤에 내내 그렇게 움직였어요.전쟁 준비하느라고…(그런) 전쟁 정보를 내가 주고…]

김 씨는 1.4 후퇴 무렵, 미군 트럭을 타고 가까스로 탈출했습니다.

[김영옥/6·25 당시 첩보원 : 겨우 건너왔어요. 정보원이어서 왔지, 민간인은 일절 그때만 해도 못 왔어요.]

[앵커]

네. 그럼 취재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상진 기자, 켈로부대가 적진에 침투하는 첩보부대라면 희생자도 많았겠어요.

[기자]

예 그렇습니다. 모두 6천명 정도가 투입됐는데, 이 중에서 무려 5천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다섯 명 중 네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겁니다.

[앵커]

여성 대원이 20%나 차지했다는 게 놀랍네요.

[기자]

아무래도 여성이 피란민 사이에 섞이면 적의 의심을 피하기 쉬웠기 때문인데요. 소년과 노인 심지어 임산부까지 자원해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

방한복을 입고 소련제 기관단총을 맨 세 남자, 중공군으로 위장한 켈로 부대원입니다.

목숨을 걸고 북한에 투입되기 직전 얼굴을 남겼습니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사진입니다.

기밀 유지가 생명인 첩보부대 특성 상 켈로부대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정옥/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 첩보라는 건 당시에는 모두 비밀이죠. 적이 알아서도 안 되고. 켈로 부대원들은 어떻게 보면 나타나지 않은 영웅들이죠.]

당시 활동 근거지는 서울 인사동 일대. 여기서도 자취를 찾기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김상기/KLO전우회 사무총장 : 당시엔 이런 고층 건물이 없었어요. 이 자리에 5층 건물이 있었는데, 옛날 남조선 전기회사 건물이에요. 그걸 사령부에서 징발해서 본부로 쓴 겁니다. 여기서 첩보교육 시켜서 공수 투하해 대북 첩보 수집, 아니면 선박 태우고 잠입시킨다든가…]

켈로부대가 건진 아군 목숨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더글라스 딜라드/전 미 극동군사령부 정보장교 : 중공군이 북한으로 들어오고 있단 확실한 첩보가 보고됐습니다. 한 대원이 (사령부가 있는) 도쿄로 건너가 직접 보고했죠.]

첩보의 양과 질도 월등했습니다.

[양욱/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 통계에 따르면 켈로 부대원들이 수집한 첩보는 한국전쟁에서 필요한 첩보 활동의 절반 이상을 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적진 한복판으로 투입된 요원이 살아 돌아온다는 건 기적에 가깝습니다.

[더글라스 딜라드/전 미 극동군사령부 정보장교 : 얼마나 많은 수인지 모를 만큼 수많은 대원을 훈련시켜 북한에 침투시켰죠. 그들의 용기와 애국심이 존경스러웠습니다.전 결코 그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앵커]

참 많은 분들이 전사하셨군요. 생존자는 얼마나 되나요?

[기자]

현재 생존자는 450명 정도입니다. 그중 여성 대원은 10명이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앵커]

중공군 참전을 사전에 알렸다면 정말 큰 공을 세운 분들인데, 정부가 충분한 예우를 해주고 있나요?

[기자]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켈로부대원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급여는 물론이고 훈장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대장을 지낸 일부 장교를 제외하면 모두 군번도, 계급도 없는 비정규군이었기 때문인데요.

취재 내용을 좀 더 보겠습니다.

+++

심용해 할머니는 불면증이 심합니다.

[심용해/6·25 당시 첩보원 : 그러니까 이렇게 많이 먹어야지 된다고…수면제, 이걸 정신과에서 가져온 거야.]

첩보원 시절의 불안감 때문에 찾아온 증상.

자신의 정보 때문에 숨져간 적군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심용해/6·25 당시 첩보원 : 옆에서 죽어가는 것, 남의 군인이야. 저쪽 사람들이지.
같은 사람이니까 친구잖아.]

이런 고통을 몰라주는 정부가 서운합니다.

[심용해/6·25 당시 첩보원 : 나라에 대해서는 내가 정말 많이 섭섭해요.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알아줘야지 되잖아.]

켈로부대원이 현재 받고 있는 수당은 월 15만원.

일반 참전용사와 같습니다.

[조경철/국가보훈처 등록관리과 : 국방부에서 관련 기록을 찾거나, 관련 기록이 없는 경우에는 그 당시에 같이 참전했던 전우를 찾아 심사해서 확인하고…]

적진 한복판에서 그 누구보다 위험한 작전을 해냈지만, 특수임무수행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국군이 아닌 유엔군 소속이란 이유 때문입니다.

[김상기/KLO전우회 사무총장 : 우리 한국군도 당시엔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사실 싸운 것 아니예요? 그런데 (시행령에서) 유엔 및 외국군 소속의 첩보원 및 유격군은 본 법안에서 제외한다. 그렇게 못을 박아버린 거예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라가 그들의 희생을 알아줄 희망이 생겼습니다.

관련법이 발의됐기 때문입니다.

[정문헌/새누리당 의원 : 전쟁통에 상세한 기록을 다 남기는 건 어찌보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우 보증 (전우의 증언)이나 기타 방법을 통해서 이 분들이 참전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낼 수 있을 겁니다.]

군번도 없이 북한 땅 한복판에 던져졌다 살아돌아온 그들.

살아 생전 그 위험한 헌신을 인정받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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