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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그해 여름은 뜨거웠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폭염이 지독했던 올여름을 나면서 뜻밖에도 ‘그때가 더 더웠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찬찬히 들어보면 1994년 여름을 가리키는 얘기다. 그때도 참 더웠다. 일례로 그해 서울지역의 열대야는 때 이르게 6월에 시작해 무려 36일이나 발생했다. 올여름의 20여 일을 훌쩍 앞서는 기록이다. 물론 이런 수치까지 다들 기억할 리 만무하다. 유독 94년 여름의 기억들이 또렷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더위가 한창이던 그해 7월 초 한반도에 큰 뉴스가 전해졌다.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이다.

 어떤 이는 그해의 더위 얘기 끝에 ‘버스를 타고 가다 라디오로 들었다’며 그 뉴스를 처음 접한 순간까지 기억해 낸다. 개인적으로는 실향민들의 반응을 취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분단으로 고향을 잃은 이들, 혹은 가족과 생이별한 이들이다. 뭔가 격한 반응을 쏟아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때 만난 몇몇 실향민의 표정은 어딘지 헛헛했다. 그 무렵은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예정대로라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7월 말 만날 참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도 이런 상황이 드러난다.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제일 처음 떠올린 생각’으로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라 아쉬웠다’(63%)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회담이 열리면 이산가족 문제도 거론될 터였다.

 실제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된 건 그로부터 6년 뒤 여름이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8월 첫 상봉행사가 열렸다. 당시 상봉가족은 남북 각각 100명가량. 이산가족 전체에 비하면 실낱같은 비율이지만 희망이 현실이 된 건 분명했다. 반세기 만에 손을 맞잡은 부모와 자식이 홍수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면 83년 여름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그해 6월 말 KBS가 6·25 33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놀라운 반향을 낳았다. 출연 신청이 쇄도하면서 전례 없는 생방송 릴레이가 장장 넉 달이나 이어졌다. 가족의 이름과 헤어진 사연을 손글씨로 적은 도화지는 방송사 건물 외벽까지 빼곡히 장식했다. 다수가 분단 이후 6·25전쟁 통에 가족과 헤어진 경우였다. 요행히 가족을 만난 이들은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물론 헤어진 가족이 북에 있는 경우라면 이런 행운이 허락되지 않았다.

 올여름의 끝자락에도 상봉의 감격을 목격하리란 건 순진한 기대였던 것 같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계절의 순환과 달리 남북 관계는 변수투성이다. 흐르는 세월은 안타깝게도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북에 있는 누군가를 목 놓아 울며 만나고 싶은 이들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절반이 80대 이상의 고령이다. 휴전 이후 벌써 60년이다. 그 긴긴 세월을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잔혹한 현실에 대면 지난여름 폭염의 기억이 철 지난 농담 같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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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