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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허용량 110년치 방사능이 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은 전 세계의 골칫덩이다. 하루 300t의 방사능 오염수가 끊임없이 태평양으로 새어나간다. 이를 단기간에 차단할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태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오염수로 인한 영향은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완전 차단’이란 말도 반복하고 있다. 태평양 바다가 모두 자기 것인양 오염수를 내보내고 있으면서도 불안과 걱정에 쌓인 주변국에 대한 사과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어디 오염수뿐이랴. 후쿠시마는 여전히 방사능의 공포 속에 떨고 있었다. 마을 모습도, 주민들 마음도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2년 반을 맞아 후쿠시마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원전 주변 반경 약 50㎞ 지점부터 원전 앞 1㎞까지 샅샅이 둘러봤다.



배 50척은 2년 반 동안 묶여 있어

 지난 12일 낮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浪江町) 니혼마쓰(二本松) 사무소. ‘귀환(歸還)곤란구역 출입허가증’을 교부받고 취재차량을 원전 방향으로 15분가량 몰자 이중으로 차단된 바리케이드가 나타났다. 원전으로부터 약 40㎞ 지점. ‘귀환곤란구역에 따라 통행금지’란 팻말이 걸려 있고 5명의 경비원이 차량 탑승객의 신분증과 허가증을 일일이 대조했다. 귀환곤란구역이란 연간 방사선 누적선량이 높아 5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거주 및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곳. 입구에서부터 도로변 풀들은 잡초가 돼 삐죽삐죽 솟아 있었고 음료 자동판매기는 녹슬어 흉측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30분 뒤 도착한 곳은 쓰시마(津島) 스크린 검사소. 원전에서 약 20㎞ 떨어진 이곳부터는 방호복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두 겹으로 된 신발 덮개를 했다. 손에는 면장갑 위에 다시 고무장갑 두 개를 추가로 끼어야 했다.

 방호복을 착용하고 16번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차량에 설치한 방사능 측정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일반인의 시간당 방사능 피폭 허용기준치는 약 0.19마이크로시버트. 차량 안 측정기 수치가 순식간에 3.55마이크로시버트까지 오르더니 불과 3분 사이 8.61로 치솟았다. 기준치의 45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원전 반경 10㎞ 내의 나미에마치에 들어서자 갑자기 원숭이가 도로변에 나타났다. 보초 역할을 하는 듯한 원숭이 한 마리가 잽싸게 ‘외지인’의 등장을 경고하고 사라지자 곧이어 우두머리로 보이는 덩치 큰 원숭이 한 마리가 도로변 담배가게 쪽에서 취재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민가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 눈에 띄는 야생 원숭이만 대략 10여 마리. 사람을 경계할 필요가 없어진 야생 원숭이가 원전 주변 마을의 민가와 상점을 접수한 것이다.

 바리케이드 검문소의 한 60대 남성은 “인적이 끊긴 지 2년 반이 되다 보니 야생동물들이 인간의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피하지도 않는다”며 “검문소 동료의 차량은 며칠 전 도로에서 야생 멧돼지에 들이받혀 파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8㎞가량 떨어진 나미에마치역. 역 광장 앞 가로등의 윗부분이 부러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상점들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폭삭 주저앉은 채였다. 간간이 지나가는 경찰 차량과 전력회사 차량만이 눈에 띄었다. ‘마쓰모토 이발소’나 ‘사토 주점’ 같은 간판이 없었다면 이곳에 예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인적을 찾아볼 수 없이 폐허가 된 유령 도시였다.

 원전에서 3㎞ 거리의 후타바마치(雙葉町) 대로변 옆 풀밭. 소 20여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피폭을 당해 식용으로 내다팔 수 없어 정부가 도살을 지시한 소들이다. 하지만 목책에 걸려 있는 ‘생명의 낙원’이란 간판이 소 주인의 심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가축으로서의 가치는 상실했는지는 모르지만 ‘피폭 소’라고 해서 결코 생명을 빼앗을 순 없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6번 국도를 지나자 돌연 방사능 측정기의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측정기 화면도 ‘경고 수준’을 알리는 적색으로 변했다. 수치는 시간당 21마이크로시버트. 차량 안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방사능 피폭 허용치로 환산하면 무려 110년치에 달하는 방사능이 쏟아진 것이다. 외부에서 이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됐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오싹해졌다. 어찌할 수 없는 후쿠시마의 현실이었다.

 이튿날 원전에서 약 30㎞ 떨어진 이와키시의 히사노하마(久ノ濱) 항구. 항구에는 50척의 배가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밧줄에 묶여 있었다. 어민들의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년 반 동안 한 번도 생선을 잡아 팔지 못하고 있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험조업을 실시해 온 후쿠시마현 북부지역 어업협동조합과 달리 이곳이 속한 남부지역 조합은 줄곧 조업을 중지해 왔다. 더구나 이달 초부터 일부 어종에 대해 시험조업이 예정돼 있었는데, 오염수 문제가 불거져 나오며 또다시 연기되면서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어부인 스즈키 미쓰노리(鈴木三則·62)는 “2년 반이나 기다렸는데 또 조업이 지체되면 어민도 배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취재진이 만난 어부들은 대부분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일본 8개현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냈다.

 히사노하마 항구에서 남쪽으로 10㎞가량 떨어진 오나하마(小名濱)항. ‘저인망어업협동조합’의 니키 가쓰미(仁木克己·67) 회계주임은 “국가가 아예 출하를 금지시킨 42개 어종은 잡아봐야 팔지도 못하고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그동안 계속된 모니터링을 통해 방사능 안전성이 검증된, 세슘 농도가 아주 낮거나 전혀 검출되지 않은 문어·오징어·털게 등 16개 어종에 한해 시험조업을 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조업이란 본격적인 조업 재개를 앞둔 준비단계다. 생선을 잡아 일부 상인을 통해 유통시켜 실제로 팔리는지 안 팔리는지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작업이다.

 하지만 막상 후쿠시마 수산물을 소비자에게 내다팔아야 하는 상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나하마항 부근 대형 어시장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상인 시오노 가즈히로(鹽野和裕·28)는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나오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향후 10년은 후쿠시마에서 조업을 재개하기 힘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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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어종 시험조업 … 재개 움직임

 취재 중 확인한 것은 ‘후쿠시마 안의 양극화’였다.

 취재진이 숙박한 이와키시는 원전에서 남쪽으로 43㎞가량 벗어난 곳. 방사능 수치는 시간당 0.12마이크로시버트로 기준치보다 한참 밑이었다. 낮에는 식사를 위해 식당 앞에서 상당 시간 줄을 서 기다려야 했고 밤에는 거리마다 인파가 넘쳤다. “여기가 후쿠시마 맞아?”란 말이 절로 나왔다. 12일 밤 취재진이 찾은 한식집에는 마침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작업하는 가시마(鹿島)건설과 도시바(東芝) 직원들이 회식 중이었다. 주인 이상옥씨는 “전국에서 몰려온 원전 복구 관련 종사자들로 때아닌 대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회식 중이던 한 직원이 취기가 올랐는지 벌떡 일어나 자신의 이름인 ‘요시오’를 가사에 넣어 개사한 듯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요시오는 원전에서 일한다오~. 내일도 가야 한다오~. 무섭고 두려움도 있다오. 하지만 내가 갈 길은 바로 그곳이라오.”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후쿠시마인의 운명’이 애절하게 느껴졌다.

후쿠시마=김현기·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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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