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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만 남겨놓은 채 … 책 쓰다 떠난 '영원한 문청'

암세포도 최인호의 창작열을 막지 못했다. 그가 2010년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작품을 구상하며 걷고 있는 모습이다. 고인은 “소설로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며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이듬해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했다. [사진 백종하]
25일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는 영원한 ‘문청’(문학청년)이었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펜을 놓지 않았다. 가톨릭 서울주보에 연재했던 ‘말씀의 이삭’에 나오는 작가·화가 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성경 구절과 연결한 책을 집필 중이었다. 머리말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고2 시절 신춘문예 가작 입선
4년 뒤 당선 … 응모 때 소감 동봉
70년대 청년 저항문화의 아이콘
"주님을 봤다, 됐다 가자" 마지막 말

 고인은 이날 오후 4시쯤 병석에서 딸 다혜에게 “하느님이 오셨다. 주님을 봤다. 됐다. 가자”라고 했다. 죽음을 마주한 자리에서도 의연했던 그의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최씨는 조숙한 천재였고 삐딱한 반항아였다. 지난 50년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소설가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작품 판매량과 작가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다른 문인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73년 장편 『별들의 고향』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신드롬을 일으켰다. 평범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첫사랑에 실패한 후 타락해 남자들 품을 전전하다 끝내 자살에 이르는 주인공 경아의 이야기는 당대의 분방한 성 풍조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문제 삼았다. 한때 경아는 술집 여급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고인이 처음부터 대중작가로 분류된 건 아니었다. 서울 토박이로 서울중·고를 나온 그는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패기만만한 문청이었다. 고교 2학년 때인 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 ‘벽구멍으로’가 가작 입선에 그치자 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응모 때는 ‘당선 소감’을 함께 보낼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등단 이후 ‘술꾼’ ‘타인의 방’ 등 문제작을 쏟아내자 60년대 김승옥의 감수성의 혁명을 이어 갈 작가라는 상찬도 받았다. 세련된 문체로 도시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새 그(최인호)는 미니스커트, 송창식의 통기타, 칸막이가 있는 생맥주 집 등과 함께 70년대 저항적인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돼 있었다.’(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



 하지만 대중적 사랑과 문단의 지지라는 행복한 결합은 오래가지 않았다. 순수문학 진영이 그를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로 낙인찍자 평론가 김현에게 "내가 못마땅하면 내 이름을 평론에서 빼시오”라고 한 뒤 평단과의 인연을 끊은 사건은 유명하다.



 2011년 암 투병 중 쓴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출간 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나는 체질적으로 어디 소속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반체제가 아니라 ‘비체제’다.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단이 작가의 고독을 일시적으로 달래 줄 수는 있지만 작품을 쓰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시 내 철학이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단을 등진 그는 독자를 직접 상대하는 길을 택했다. 『잃어버린 왕국』(1986), 『왕도의 비밀』(1995) 등 역사소설, 한국 근대불교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경허 선사의 일대기를 파헤친 『길 없는 길』, 조선 순조 때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 『상도』 등 시대 감각에 맞는 작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2008년 발병한 침샘암도 그의 창작열을 꺾지는 못했다. 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해 왔던 소설 ‘가족’을 2010년 연재 시작 35년 만에 402회로 끝마쳤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에 고무골무를 끼고, 빠진 발톱은 테이프로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조각을 씹으며 두 달 만에 완성했다.



 고인은 87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가톨릭에 귀의했다. 하지만 그의 변치 않는 신앙은 문학이었다. 생전에 글 잘 쓰는 후배들을 언급하며 “처음에는 닮은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다가 나중에는 업어 주고 싶다”고 했다.



 고인이 아꼈던 소설가 김연수씨는 “도회적인 단편과 이야기가 풍부한 장편을 모두 아우른 작가였다. 대단한 이야기꾼이 사라져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별들의 고향’을 연출한 이장호 감독은 “고인은 영화에서도 변화를 일으켰다. 저나 배창호나 고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사람들의 클럽이다. 한 시대가 갔다”며 안타까워했다. 영화 ‘고래사냥’의 배창호 감독은 25일 밤늦게 주연배우 안성기씨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28일 고인의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가톨릭 정진석 추기경도 이날 애도 글을 남겼다. 정 추기경은 “삶을 통찰하는 혜안과 인간을 향한 애정이 녹은 글을 써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은 이 시대 최고의 작가였다. 이제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도 조의를 표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부의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신준봉·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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