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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녀 둔 어느 부모의 한숨

경희대 교수 7명과 본지 기자들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은 지난 6월부터 석 달 동안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취재팀은 부모들이 말하는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 형식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했다.

졸업한 지 30년. 민규와 동창생 2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 김포의 조그만 중학교다. 민규 기수에서 주최하는 체육대회 행사였다. 모두 ‘4학년 5반’, 중년 티가 완연했다.

 “애들은?” 중3 때 민규 단짝이었던 동수가 종이컵을 건넸다. “중2 딸내미에 초등학생 아들. 너는?” 동수가 모자를 고쳐 쓰면서 말했다. “큰애가 집에서 검정고시 준비해.”

 1980년대 중반, 십대로 돌아가 있던 소년소녀들이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귀환 지점은 하나같이 자녀였다. 키다리 명옥이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거짓말하고 나가서 친구랑 밤에 놀고 있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지 않았겠니?”

 명옥이는 중1 딸아이가 잘못을 빌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드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딸아이 뺨을 때렸다.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엄마는 딸아이가 남긴 양 팔목의 손톱자국을 보며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셨다. 딸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엄마가 싫어, 엄마랑 사는 게 싫어’라고 외치던 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명옥이는 딸에게 사과 편지를 두 번 썼다. 첫 편지는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딸이 두 번째 편지를 읽고 나서야 말문을 열었다. 명옥이는 “말도 마, 날마다 전쟁이야, 전쟁”이라며 음료수 잔을 비웠다.


 보건소에 다니는 순화는 중1 아들이 게임에 중독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집에선 스마트폰 안 하기로 약속하더니만 이젠 몰래 PC방을 드나드는 거야.” 모범생이었던 순화는 “자식농사가 가장 큰 농사라더니, 해가 갈수록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이구동성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딸 대다수가 부모를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자식이 염려돼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답은 하나, 그것도 외마디였다. “나보고 어쩌라고!” 친구들끼리 하는 욕설이 입에 붙어 부모 앞에서도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했다.

 민규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5월, 딸아이를 위해 주말 캠핑을 가려다가 무산된 일이 떠올랐다. 딸에게 애교 섞인 카톡을 보냈는데 ‘폭풍 카톡’이 날아왔다.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나도 힘들어. 내 생각은 왜 안 하는 거야’. 토끼 같던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살쾡이로 돌변했다. 민규는 아내가 딸아이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고 나서 하소연하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당신이 잘못하면 밉다는 생각이 들다 마는데, 아이들이 잘못하면 정말 죽고 싶어.”

 축구와 배구가 결승전을 치르는 사이, 교단에선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민규는 학교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교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 나도 대책 없는 문제아였지. 하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함부로 대들지는 않았잖아. 우리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 철이 들까. 민규는 복도를 걷다가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급훈이 보였다. ‘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자. 한 번 더 생각하자.’

 민규는 상상했다. 만일 중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을 포기하고 전인 교육에 전념하겠다는 안내문을 보내온다면? 아내가 과연 찬성할까. 어른들 중에 ‘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학교와 사회, 국가가 하루도 쉬지 않고 정직과 책임, 공감과 배려를 외치지만, 아이들은 ‘됐거든요, 너나 잘하세요’라며 코웃음을 칠 것이다.

 행사 후 집으로 돌아온 민규는 동창 카페에 글을 올렸다. 우리 모두 정말 열심히 살았어.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IMF 외환위기였지. 그때 우리 부모가 무너졌고, 나라가 흔들렸어. 우린 더욱 생존에만 매달렸지.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막막했으니까. 우리에겐 돈이 전부였던 것 같아. 그런데 거기에만 몰두하다 보면 천박해지더라. 남보다 많이 가지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집단 무의식. 어느새 아이들에게도 그걸 강요하고 있던 건 아닐까. 우리가 먼저 황폐해진 내면을 들여다봐야 했는데.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지 바로 댓글이 달렸다. 만년 대학강사인 철식의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배드민턴 경기처럼 보여. 가정과 학교가 한편, 사회와 국가가 한편인 복식. 서로 셔틀콕을 받아넘기기에 급급하지. 남편 : 아내, 엄마 : 딸, 가정 : 학교, 국가 : 학교가 하는 단식도 다를 바 없어. 셔틀콕을 상대방에게 넘기지 못하면 아웃.’ 민규도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이 경기 왜 하는지 모르겠다. 뭐가 옳고 그른지 알려줄 심판도 없는데 말야.’

◆특별취재팀: 성시윤·윤석만·이한길·김혜미·이서준 기자
◆경희대 연구팀: 정진영(정치학)·김중백(사회학)·김병찬(교육행정)·성열관(교육과정)·지은림(교육평가)·이문재(현대문학)·김진해(국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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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