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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에 잡은 붓 … 그림 최고수 꿈을 그리다

안창수 화백은 1945년생 닭띠다. 우연히 ‘닭그림 전시회’에 갔다온 뒤 닭을 그려본 걸 계기로 동양화의 세계에 입문했다.


안 화백의 2013년 작 ‘투계도(鬪鷄圖)’.
“평생을 은행가로 살다 나이 예순에 처음 붓을 잡았다. 매일 12시간 이상 꼬박 그림만 그리던 때가 있었다. 붓을 너무 오래 잡아 엄지가 젖혀지지 않았고, 허리가 아파 복대를 차야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꿈이 있으니까.”

수출입은행 은퇴 안창수 화백
일본 최대 수묵화 공모 입상
"미국·영국에도 진출할 것"



 예순이 넘어 숨겨진 재능을 찾은 안창수(68) 화백 얘기다. 안 화백을 만나기로 약속했던 21일. 경남 양산 소토리 10평 남짓한 그의 화실엔 종이와 물감향이 그윽했다.



 정년퇴임할 때까지 그는 충실한 샐러리맨으로 살았다. 부산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온 뒤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조사와 원조 업무를 맡았다. 해외여행이 허가제였던 1980년대, 아프리카만 5차례 드나들었단다. 안 화백은 “그때 외국을 많이 다녀서 사람들이 참 부러워했다. 선물 사느라 골치가 아프긴 했지만…”이라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2004년 낙향한 그는 소일거리로 서예를 배우면서 처음 붓을 잡았다. 글씨에서 그림으로 전향한 건 우연이었다. “부산에서 우연히 닭 그림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내가 닭띠라서 닭을 한 번 그려봤거든. 서예학원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닭이 참 잘 생겼다’며 칭찬을 하더라고. 그림 그려볼 맘이 생기더라. ”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양산에선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대학에서 미술강의를 하던 지인이 안 화백에게 “학위를 딸 게 아니라면 중국에서 배우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곧바로 짐을 꾸려 동양화 최고 명문학교로 꼽히는 항저우(杭州) 중국미술학원으로 향했다.



 “말이 안 통해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학생을 붙잡아 점심을 사줬다. 통역을 부탁했더니 교수하고도 얘기가 되더라. ‘외국인 연구생’ 추천서를 받았다. 한국으로 와서 보따리 싸갖고 다시 중국으로 갔지. 중국 유학생활이 그렇게 시작된 거다.”



 그때부터 만 2년. 안 화백은 한국땅을 한 번도 밟지 않고 그림에만 매달렸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대상포진으로 몸무게가 10㎏ 넘게 빠졌지만 이를 악물고 그림을 그렸다. 가족들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부인 권민자(64)씨가 한국에서 약을 지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갔다.



 “6개월이 지나니까 걱정이 되더라. 예순 넘어 처음 잡은 붓인데 그림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중국까지 와서 허송세월하면 안 되지 않나. 스승에게 그림으로 성공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청나라 최고의 화가 금농(金農) 얘기를 해주더라. 금농도 쉰이 넘어 붓을 잡았고, 예순이 넘어 대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처음에 6개월을 계획하고 떠난 유학이었는데 그 말에 용기를 얻어 2년으로 유학이 늘었다. ”



 유학을 마친 뒤에도 안 화백은 일본 교토조경예술대에서도 수학하며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10여 차례 입상했고, 개인전시회도 5번 열었다. 지난 6일엔 일본 최대 수묵화 공모전인 제42회 전일본수묵화수작전에서 ‘남일본신문사상’을 받았다. 작품은 11월 8~15일 도쿄 우에노공원 도쿄미술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 공부는 열심히 해도 내게 한계가 있다는 좌절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림은 그리면서 내 스스로 나아지는 걸 느끼니까 그런 데서 자유롭다. 취미 삼아 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미국, 영국 등에도 진출하는 게 목표다.” 



양산=글·사진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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