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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그림=화가 김태헌
전복 -김덕희-



화면에 두 사람이 나타났을 때부터 '전복이' 를 알아봤다

남자애가 여자애를 경계석에 앉히고 빠르게 사방을 둘러본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각, 인적이 없고 행길과 완벽히 격리되어 있는 주차장 안쪽은 가로등빛조차 닿지 않는다. 여자애는 물먹은 헝겊처럼 자꾸만 상체를 무너뜨리는 중이다. 그러나 곧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정돈하며 아주 무방비는 아니라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남자애가 여자애의 곁에 바짝 다가앉아 자기 쪽으로 기대게 한다. 여자애는 별 저항 없이 남자애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얼굴을 부비며 편한 자세를 찾는다. 그러자 여자애의 머리카락이 다시 앞으로 쏟아진다. 남자애가 자유로운 바깥쪽 손으로 여자애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동그랗고 하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 위로 제 얼굴을 포갠다.



 203호, 신영주, 불문과 2학년, 김과 전복이 유명한 남쪽 해안 도시에서 왔고 아버지 직업은 치과 개업의다. 나는 주차장 앞쪽 CCTV 화면에 두 사람이 나타났을 때부터 ‘전복이’를 알아봤다. 그러나 남자애의 신원은 알 수 없다. 건장한 체구나 깔끔한 스포츠형 머리는 전복이가 지난 학기 내내 자기 방에 들이던 남자애들과 많이 닮았다.



 남자애의 손이 전복이의 얼굴에서 목덜미로, 어깨로, 가슴으로 더듬어 내려간다. 늘 같은 패턴이다. 남자애와 함께 주차장 뒤쪽 으슥한 곳에 앉아 스킨십을 유도하다가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남자애의 손길이 전복이의 스커트 아래쪽을 서성이기 시작하자 전복이가 몸을 떼고 허리를 곧추세워 앉는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남자애도 머쓱하게 자세를 고쳐잡는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미안해, 싫어할 줄 몰랐어. 둘의 대화가 들리는 것도 같다.



 봄 학기가 시작되고 전복이가 고향에서 올라온 직후 그 어머니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느닷없이 생물 전복이 배달되었던 것이다. 전복이 어머니는 맛이나 보라는 얘기 끝에 딸에 대한 당부를 덧붙였다.



 “덩치만 크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예요. 삼촌이 잘 지켜봐 주세요.”



 전복이가 남자애들을 그렇게 갈아치우는데도 집 앞에서 진을 치거나 난동 부리는 놈 하나 없는 걸로 봐서 세상물정 모르는 건 딸보다 어머니 쪽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입주 학생들의 부모들이 걸핏하면 나를 삼촌이라 부르는 게 싫었다. 자취생들의 보호자 노릇을 할 생각은 없다. 집주인과 세입자일 뿐이다. 인정에 호소할 여지를 줬다간 월세를 미루거나 계약 기간을 넘기고도 버티기 십상이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다시마 더미 속에서 아직 살아 꿈지럭거리고 있는 전복들을 들여다봤다. 다섯 마리가 아이스박스 안으로 옮겨진 바다 속에서 느릿느릿 다시마를 뜯어먹고 있었다. 생물을 눈앞에 두긴 처음이었다. 나는 다시마를 붙들고 있는 한 놈의 조가비를 잡고 뜯어 올렸다. 놀란 녀석은 허공에 노출된 조가비 아래쪽 살집을 세로로 길게 오므렸다. 미처 다 닫지 못한 검고 거친 겉살 사이로 뽀얀 살구색 속살이 비쳤다. 마치 늙고 비만한 창녀의 헐거워진 음순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전복을 내던지듯 다시마 더미에 내려놓고 아이스박스 채 냉동실에 처박아버렸다. 전에도 과메기나 홍어 따위가 냉동실을 드나든 적이 있었다. 모두 꽝꽝 언 채로 서너 달쯤 지나 버려졌다. 텅 비어 있던 냉동실에 아이스박스가 놓이자 오랫동안 공복이었던 양문형 냉장고가 웅, 소리를 내며 반겼다.



 두 사람이 갑자기 몸을 반쯤 일으키고는 주차장 바깥쪽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건물 1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주차장은 계단 통로를 중심에 놓고 디귿 자를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일부러 찾아 들어가지 않는 한 출입문 쪽에서 주차장 안쪽의 두 사람을 발견할 수는 없다. 나는 내 심야영화의 진행을 훼방 놓는 이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CCTV 채널을 돌려본다.



 한 여자가 출입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참이다. 나는 입주자들에게 카드키만 나눠주고 비밀번호는 알려주지 않았다. 번호 유출로 인한 잡인의 출입을 막을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건물에서 주인인 나를 제외하곤 비밀번호란 각자의 방 앞에서나 필요한 거다. 이상하다 생각하는 순간 인터폰이 울리며 화면에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106호. 임예슬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임혜슬이라고 했던 것 같다. 경영학과 신입생이고 A 트리플 플러스 등급의 한우로 유명한 도시에서 왔으며 부모가 지역에서 한우 갈빗집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 어안렌즈의 화각이 임혜슬의 갸름한 얼굴을 실제보다 넓게 비추고 있다.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대시를 열 번 넘게 받아도 이상할 게 없을 만한 미인이다. 그러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충 묶은 머리 모양과 민무늬 티셔츠 차림에서 도서관의 책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신입생이라기보다는 졸업반 취업준비생의 느낌이다.



 방을 계약할 때 함께 나타났던 모친의 말처럼 정말 집과 학교밖에 모르는 걸까? 임혜슬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모친은 목소리를 낮추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자기 딸이―행여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하고 단서를 붙였다―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즉시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학생들에게 월세를 받는 집주인으로서의 의무라고까지 하며 다짐을 강요했다. 나는 임혜슬의 모친이 어떤 걸 두고 부적절한 행동이라 말하는지 얼른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그러고도 입주자 중에 남학생은 몇이나 되는지, 집주인인 나는 왜 아직 미혼인지 등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때맞춰 임혜슬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한우의 세계화를 위해 요리를 연구하고 있다는 어떤 여자와 선 자리까지 마련될 분위기였다. 모녀 사이에 무언의 신경전이 잠시 오가는 걸로 봐서 임혜슬은 이미 제 엄마가 나를 붙들고 어떤 얘기를 했는지 짐작하는 것 같았다.



 신입생이 돼서는 입학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금요일 자정에 학교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건 적절한 행동일까 부적절한 행동일까. 생각하는 동안 초인종이 다시 울린다. 입주자가 출입문에 붙어 서서 집주인에게 초인종을 누르는 이유는 뻔하다.



 “네, 무슨 일이에요?”



 “저…… 죄송한데요, 카드키를 방에 두고 나왔나 봐요.”



 “잘 챙겨 다니세요.”



 문을 열어주는 순간 이번이 벌써 두 번째라는 사실이 기억난다. 출입문 열림 버튼을 누르기 전에 그 사실을 지적해 주지 못한 게 아쉽다. 인터폰 화면에서 임혜슬의 얼굴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소파에 가 CCTV 화면을 다시 주차장 안쪽으로 돌린다. 그 사이 중요한 장면을 놓쳤을 것만 같다.



 전복이와 남자애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본다. 야간모드 화면 속 푸르스름한 주차장의 어디에서도 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녹화된 화면을 되감아본다. 그러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전복이가 남자애의 손을 끌고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 건물들 사이의 좁은 통로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통로 저편은 다른 행길로 이어져 있다. 덩그러니 주차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내 차 보닛 위로 작은 불빛 두 개가 잠시 머물다 지나간다. 길고양이의 안광마저 사라진 주차장은 갓 발굴된 유적지처럼 괴괴한 분위기만 고여 감돌고 있다.



 정 실장으로부터 방을 구하는 학생이 나타났다는 전화가 왔다. 인터넷으로 부동산 정보를 본 학생이 지금 방을 보러 오겠다는 것이다. 토요일치곤 이른 시간이다. 이번 학기에도 방을 몇 개 놀리나 보다 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다른 원룸 건물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운이 좋은 날이다.



 “제가 뭐랬어요, 우리 사장님은 저만 딱 믿고 있으면 된다니까. 호호호.”



 중년 여자의 억지스러운 교태와 생색에 금방 피곤해졌다. 건물의 마스터키를 맡겨뒀으므로 정 실장이 잘 알아서 방을 보여줄 것이다.



 내려가서 분리수거함을 정리하고 건물 외곽 곳곳을 둘러보며 밤새 별 일 없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올라와 오랫동안 집 안을 청소했다. 바닥을 닦은 걸레에 송홧가루가 묻어났다. 봄이면 집 앞쪽에 엎드려 있는 야산에서 푸르스름한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곤 한다. 음식에도 사용한다지만 창틀이며 차며 곳곳을 곰팡이 핀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송홧가루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창문을 모두 잘 닫았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청소를 마친 뒤 차를 내려 마시고 있는데 찻잔 바닥이 보이기도 전에 정 실장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계약을 하자는 것이다.



 “사장님네가 이 동네에서는 제일 좋다는 걸 다 알아보는 것 같아요. 학생이 아주 마음에 들어하네. 얼른 도장 챙겨서 나오세요.”



 이 집 저 집 옮겨다녀 봤다는 어느 학생의 얘기에 의하면 내 건물은 조용한데다 냉난방비가 훨씬 적게 나온다고 했다. 고가도로와 아파트단지를 접한 동쪽 블록이 아니라 야산과 숲이 가까운 서쪽 블록 끝자락이라 여름에 덜 덥고, 공사 때 자재를 아끼지 않아 단열이 잘 된다. 급히 올린 건물들은 재활용 벽돌을 쓰거나 건물주가 공사비를 무리하게 깎아버려 겉모양만 그럴싸하지 내장재는 엉터리인 경우가 많다. 수익만을 생각했다면 나 역시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어차피 시세를 끌어올린 뒤 팔고 떠버릴 건데 잘 지을 필요가 없었다. 차차 드러날 부실이나 피해야 늘 그렇듯 세입자와 새 주인이 감당할 몫이다. 이 동네에 나와 같은 원 건물주는 몇 남지 않았다. 모두 시세 차익을 남겨먹고 떠난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새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 하나를 굴리고 굴려 여기까지 오는 데 딱 15년, 활화산 같던 부동산 경기가 내리막길에 들어선 걸 감지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집을 사고파는 데 신물이 나 있었다. 1년마다 한 번씩, 어떤 해는 두 번씩 이사를 했다. 올랐다 싶으면 팔았고 오르지 않겠다 싶어도 팔았다. 집 한 채를 고를 때마다 평균 예닐곱 번씩 현장을 답사했다. 아침에 출근과 등교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파악해야 했고 밤에는 주변 상권의 분위기를 살폈다. 비오는 날과 맑은 날이 다 달랐고 평일과 휴일이 또 달랐다. 찻잔 바닥에 식은 채 남은 찻물에 얼굴을 비춰본다. 고생했어. 찻물이 동그랗게 흔들린다.



 봄볕이 따끈하다. 꽃가루가 날리는지 재채기가 인다. 대학의 정문을 가로지르면서 어딘가 들뜬 분위기를 느낀다. 날짜를 꼽아보니 다음주가 축제 기간이다. 당분간 이 대학은 상아탑을 빙자한 유원지가 될 것이며 유원지에는 축제의 가면을 쓴 야시장이 들어설 것이다. 물풍선 맞고 돈 뜯고 주점 열어 돈 뜯는 게 대학 축제의 전부다. 돈 벌겠다고 그만둬버린 대학을 이제는 마쳐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다가도 원룸을 시작한 이후 보아온 것들만 떠올리면 금방 고개를 내젓게 된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머리카락이 어정쩡하게 짧은 남학생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인사를 한다. 제대하자마자 복학했으며 한 달 반이 됐다고 한다. 부모님의 일에 잠깐 사정이 생겨 그간 친구네 자취방을 전전하다가 일이 잘 풀려서 방을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그를 재빨리 훑어봤다. 눈빛에 자신감이 넘치고 몸엔 군살이 없으며 어깨가 넓어 보이도록 어딘가에 힘을 주고 있다. 마치 남자 대 남자로서, 어디서 복무했는지를 물어봐 주길 바라는 것만 같다. 15년 전엔 나 역시 휴전선 근처에서 복무하고 갓 제대한 복학생이었다. 얼굴이 불에 덴 듯 불그스름한 건 햇빛보다는 눈에 반사된 자외선 때문일 것이고 그나마도 옅게 얼룩덜룩한 것은 위장크림을 늘 발라야 했던 흔적일 것이다. 제대한 지 한 달 반이나 됐다면 갖은 방법을 동원해 피부에 남은 군인의 자국을 지웠을 텐데 아직까지 눈에 띄는 건 제대 직전까지 훈련에 참가했다는 증거다. 말년 병장을 열외시켜주지 않는 훈련은 나 역시 몸담았던 수색대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머리 앞쪽 한 줌만 남기고 삭발하는 해병대식 헤어스타일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한 달 반 동안 억지로 기른 머리 모양으로 보아 육군이 확실하다.



그림=화가 김태헌




“그렇게 절간 같은 원룸, 이 근방엔 없다니까”



“아버지가 중고차 사업을 하신다고요. 우리 차도 지금 오늘내일하고 있는데 이참에 바꿔볼까? 뉴월드 부동산 이름 대면 좀 잘 해주시려나? 호호호.”



 정 실장이 방을 본 학생의 부모 직업을 들먹이는 건 앞뒤 재지 말고 잡으라는 신호다. 평소에도 월세 밀릴 일 없는 사람만 골라서 내게 소개한다는 걸 강조했는데, 실제로 정 실장의 말을 믿고 들인 세입자들은 그 부분에서만큼은 아주 분명했다. 그러나 첫 대면인 만큼 집주인 행세를 좀 해두고 싶다.



 “술은…… 얼마나 하는지?”



 “아유, 사장님. 내가 벌써 주의사항 다 얘기해줬지. 그 집이 어디 보통 집이에요? 죄다 학구파들만 모인 데잖아. 그렇게 절간 같은 원룸, 이 근방엔 없다니까. 이 학생도 장학금 받아내겠다고 의지가 대단해요.”



 “그렇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복학해서까지 술판 쫓아다니면 못 살아남죠. 고향에서 돈 부쳐주시는 부모님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고요. 하지만 술을 못하는 건 아닙니다. 형님, 아, 제가 형님으로 모셔도 괜찮겠죠? 형님께서 부르시면 두말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얘길 듣다 말고 벽에 걸린 이쪽 지역 지도로 눈을 옮긴다. 왼편의 녹지와 오른편의 도로로 둘러싸인 대학과, 대학 아래에 형성된 번화가가 마치 한 마리 고래처럼 보인다. 육중한 몸집 아래로 쭉 빠진 꼬리는 대학 정문과 진입로에 해당하고 커다란 양쪽 꼬리지느러미는 원룸촌이자 이른바 대학가의 영역이다. 크고 작은 사각형들이 빼곡하거나 성글게 모여 있고 번지수에 따라 파스텔 톤의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돼 있다. 건물들의 1층은 내 경우처럼 주차장이거나 아니면 상점이 대부분인데 내가 속해 있는 왼쪽 꼬리지느러미보다는 오른쪽에서 학생들이 갈 곳이 많다. 학생들은 고래의 꼬리지느러미에서 피씨방과 커피숍, 당구장을 찾고 값싼 술과 안주를 찾아 매일 밤 순례를 한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흥청망청 몸살을 앓는 오른쪽 블록은 내 집에서도 훤히 보인다. 그래도 다들 졸업장은 챙겨서 떠나겠지? 고래가 넓은 꼬리지느러미로 수면을 강타하며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떨어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무슨 학과지?”



 여전히 몸에 힘을 풀지 않고 있는 수색대에게 질문으로 급습해 본다.



 “사회학괍니다. 3학년으로 복학했습니다.”



 “사회학과…… 거긴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나……?”



 “기자도 되고 출판사도 가고, 방송 쪽에서 일하는 선배도 더러 있더라고요. 교수님들이나 동문들이 워낙 잘 이끌어줘서 졸업한 다음 일은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전 아버지 일을 도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아직 진지하게 고민해보진 못했는데 제대도 했으니까 차차 찾아봐야죠.”



 허세와 자긍심을 구분하지 못하는 수색대가 천진난만한 꼬맹이처럼 보인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자마자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금의 수색대가 그렇듯 앞으로의 일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있던 때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후였고 앞날이 캄캄했다. 대학 졸업장을 딸 이유도 없었다. 당시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건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 나라가 세워진 이래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진리라고도 했다. 아버지는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동안 투자해볼 만한 곳을 자주 얘기했다. 더러는 1년 안에 표나게 시세가 올랐고 더러는 별 볼일 없이 떠들썩하기만 했다. 적중률은 좋게 잡아서 50퍼센트 내외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상이 들어맞을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어머니는 아버지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기회가 보여도 가족의 생계를 담보로 일을 벌일 수 없다는 사실에 아버지는 늘 좌절했다. 아버지는 그런 자신을 스스로 마름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논리에 따르면 건물주는 지주였고 임차인은 소작농이었다. 소작농이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소작료를 내듯 상가를 빌린 임차인들은 장사를 해 번 돈으로 임대료를 냈다. 그 둘 사이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지주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중개수수료를 덜 받거나 아예 떼먹혀도 참아야 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땅과 건물에 집착했다.



 근대니 현대니 말은 좋지. 하지만 여전히 봉건시대야. 봉건시대.



 가끔은 나도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 실장이 계약서를 내 눈앞에서 흔들며 어서 도장을 달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다른 방을 찾아봐야겠어요. 우리 집에는 여학생들이 많아서 좀 불편해할 것 같네. 부모님들이 신경을 많이 쓰시거든.”



 나는 정 실장에게 따로 통화하자고 하고 부동산을 나왔다.



 전복이 없어졌다. 연락이 안 된다고 한다. 평소에도 집에 자주 전화하는 애는 아닌데, 너무 오랫동안 아무 연락이 없어 걸어보니 꺼져 있더란다. 전화기는 그 뒤로도 켜진 적이 없고 지난 50시간 동안 전복이와 연락이 닿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는 사람인가요?”



 해가 떨어지자마자 찾아온 형사는 CCTV 녹화 화면부터 보자고 했다. 형사는 화면에서 전복이와 함께 있는 남학생을 지목하며 물었다. 둘은 주차장 경계석에 앉아 바깥 정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옆 건물과의 좁은 틈으로 사라졌다. 다시 봐도 어두컴컴한 주차장에서 밀회를 즐기다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친 은밀한 커플이다.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신영주 양이 저기서 남자애들이랑 자주 저럽니까?”



 “글쎄요. 평소엔 일부러 CCTV를 볼 일도 없고 저 시간이면 저는 늘 자고 있어서요.”



 형사는 그다지 내 말을 안 믿는 눈치다. 내 말이어서가 아니라 누구의 말도 잘 믿지 않을 것이다. 그게 형사의 직업윤리일 테니까.



태어나면서부터 풀옵션의 혜택을 누려온 아이들이었다



“그렇군요. 얼마 전에 이 친구들 또래의 남자애가 여자 친구를 약 먹여서 강간하고 살해한 일이 있었어요. 뉴스에서 보셨죠? 잔인하게 토막을 내서…… 그것 때문에 이 건이 아주 빠르게 윗선까지 올라갔습니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할 단계는 아니고, 최대한 조용하게 할 테니까 지금처럼 협조 좀 잘 부탁드립니다. 영장 받고 어쩌고 하면 동네 소문만 나고,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죠? 그나저나 젊은 분이 참 성공하셨네. 거실이 우리 집보다 넓은 것 같아……”



 형사가 입주한 학생 열다섯 명의 인적사항을 본인 수첩에 옮겨 적을 동안 나는 개강 이후부터의 CCTV 자료를 형사가 준 USB 메모리카드에 복사해줬다. 형사는 왔을 때처럼 조용히 돌아갔다.



 삼촌이 잘 지켜봐 주세요. 전복이의 엄마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굵은소금 같은 것이 심장에 뿌려지며 죄책감이 곤두서는 게 느껴진다. 잘 지켜봤잖은가. 그리고 아직은 어떻게 됐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내가 뭘 더 했어야 하나. 애써 몸부림쳐보지만 소금 맞은 심장에선 점액질이 뜨겁게 거품을 만들어 홧홧한 느낌만 더한다.



 전복이의 방으로 내려가 마스터키로 문을 연다. 눈앞에 펼쳐진 건 여학생의 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저분한 광경이다. 개수대에서는 라면으로 보이는 음식물 찌꺼기가 썩어가고 있고 빨랫감인지 입을 것인지 모를 옷가지가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방 전체에서 옅게 담배 냄새도 맡아진다. 마치 실제 범죄현장인 것만 같아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과감히 둘러볼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꿈꿀 수 있었을까. 아이스박스 속에서 한가롭게 다시마를 뜯던 전복들이 떠오른다.



 전복이의 방이나 다른 학생들의 방이나 구조와 넓이는 똑같다. 행어, 책상, 매트리스, 거기에 잘 해봐야 6단짜리 책꽂이 하나 정도면 꽉 찰 크기다. 비록 넓진 않지만 싱크대, 인덕션, 벽걸이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까지 갖춘 풀옵션이다. 방의 크기보다는 옵션이 중요하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쓰다 버릴지도 모를 것들을 사지 않아서 좋고, 버리지 못해 짊어지고 옮겨 다닐 일 없어서였다. 전복이 역시 노트북과 몇 권의 전공 서적, 옷가지 말고는 개인 집기랄 게 없는 듯하다. 영화 DVD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것도 같다. 제목은 들어본 적 있으나 보지는 못한 것들이다. 감독들의 이름에서 모두 불어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그래도 학과 공부를 하긴 하는 모양이다.



 좀 산다 하는 집안의 아들딸들이라 그런지 전복이만이 아니라 대부분 학생들이 표정에 그늘이 없고 감정에 솔직했다. 태어나면서부터 풀옵션의 혜택을 누려온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남의 도움을 청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우편물을 대신 받아주거나 형광등을 갈아주는 건 예삿일이다. 인터넷이 안 된다고 해서 가 보면 본인이 랜카드 설정을 건드려놓았고, 욕실 배수구가 막혔다고 징징대는 걸 한 타래로 뭉쳐 있는 머리카락을 빼내서 달랜 적도 있었다. 작년에 장마가 끝나가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전복이가 세탁기가 고장났다며 나를 부른 적이 있다. 세탁기는 여름 이불 석 장과 여섯 장의 베갯잇을 비롯한 엄청난 빨랫감을 머금고 소화불량 상태가 되어 있었다. 세탁물을 모두 꺼내 나눠 넣은 다음 잘 돌아가는 걸 보여주자 전복이는 양손의 엄지를 세워 보이며 “아저씨 최고!”라고 소리쳤다. 그때 본 티 없이 맑은 전복이의 얼굴을 떠올리자 갑자기 폐부가 무언가에 잔뜩 짓눌리는 기분이 든다. 어디 갔을까.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정 실장이다.



 “사장님, 바로 전화를 드리려다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 이제 전화 드려요. 왜, 그 학생이 맘에 안 드셨어요?”



 “아, 네…… 뭐……”



 뭐라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정 실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남학생들이 좀 그렇긴 하죠. 더군다나 그 집처럼 여학생이 많은 데선 신경 쓰일 일이 많을 거고요. 그런데 사장님, 학기 시작한 지가 벌써 언제예요. 복학하는 남학생 아니면 사람 없어요. 제가 보니까 부모들 소득도 좀 되는 것 같고 너무 아깝더라. 제가 그 학생한테 다시 잘 얘기해볼까요?”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번 학기에는 더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좀 지겨워졌어요.”



 정 실장이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 뭐라고 하는데 그냥 끊어버렸다. 즉흥적으로 나온 말인데도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침에 눈 뜨면 건물을 둘러보고 청소를 한다.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TV를 보다가 잠든다. 수익과 지출 경비를 맞춰보는 긴장감, 줄어드는 대출 원금과 불어나는 잔고가 주는 쾌감은 처음 1년도 채 가지 않았다. 단조롭고 빤한 일상의 무한 반복이었다. 세입자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긴 게 그 즈음이 아닌가 싶다.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운동을 나가는 202호, 주말마다 엄마가 찾아오는 105호, 친구들을 수시로 불러들이는 206호. 세입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중국집은 다금성, 용루, 예원각 순이고 택배 트럭들이 이쪽 동네를 도는 시각은 주로 오후 두 시, 다섯 시다. 우울증의 기미가 느껴져 정신과를 다녀보기도 했다. 의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야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집에 무슨 일 있나?

못 보던 남자가 들락날락 하는 것 같던데.

혹시 공무원 아니야?




 철물점에 다녀오는 길에 황 영감을 마주쳤다. 이 동네에선 황구렁이로 통한다. 영감은 내게 유감이 많다. 나와 거의 동시에 이 동네에 들어왔는데 눈에 든 땅을 매입하려고 보니 간발의 차로 이미 내가 차지한 뒤였단다. 그는, 겉으로는 젊은 사람 순발력은 못 당하겠다고 앓는 소릴 했지만 부동산 정보를 취하는 촉이나 입지를 살피는 눈에 대한 오랜 자긍심을 내가 무참히 밟아놓은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말년을 보낼 곳을 찾다가 하늘이 점지해준 땅을 만났는데 늙은이가 눈귀 어두워 그걸 제때 잡지 못했다’며 푸념했다.



 “어디 다녀오는가?”



 영감은 내 얼굴과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호리호리하고 큰 키에 안정된 자세며 시원한 걸음걸이만으로는 그를 칠순 노인이라고 보기 힘들다. 영감네도 빈 방이 있을 테니 아침부터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중개인들을 채근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 뭐 참견할 일 없는지 동네를 샅샅이 뒤지는 게 그의 일과다. 나는 영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건물주는 늘 심심함과 싸워야 하는 직업이다.



 “네. 어르신. 학생 하나가 형광등 불이 안 들어온다기에 봤더니 안정기가 나갔네요. 사람을 쓰면 몇 만 원은 부를 것 같아서 제가 그냥 사왔어요.”



 “젊은 사람이 저렇게 부지런하니 성공할 만도 하지. 근데 너무 그러지 마. 그런 건 세입자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주인이 그렇게 팔 걷고 나선다고 애들이 어디 눈곱만큼이라도 고마워하는 줄 아나. 그리고 나 같은 늙은이는 그런 걸 못 해주니까 서비스가 어떠네, 저떠네 허잖은가. 좀 봐줘 젊은 사장.”



 “이해해 주십시오. 제가 아파트나 굴려봤지 원룸은 아직 익숙지가 않아서요. 3년이나 해먹고 있는데 도통 모르겠네요. 요령이 없으니 몸으로라도 때워야죠.”



 영감은 내가 한마디도 안 지려 하는 기색을 느끼곤 입술을 굳게 다문다. 목례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생각났다는 듯 불러세운다.



 “그런데 집에 무슨 일 있나? 못 보던 남자가 들락날락 하는 것 같던데. 혹시 공무원 아니야? 그 쥐새끼들이 왜? 아, 나도 저번에 구청 놈들이 찾아와서는 싹 훑고 가더니 뭐가 불법 건축에 들어간다면서 강제이행금인지 뭔지를 육백이나 뜯어내더군. 신고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대나 뭐래나. 사람들이 말이야. 늙은이가 먹고살겠다고 이 고생이면 안쓰럽다 생각해야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 지랄들을 한다니까. 피땀 흘려서 이만큼 이룬 걸 존경은 못 해줄망정…… 하여간 이 나라는 좀 산다 싶으면 그저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있는 게 죄면 어디 겁나서 땀 흘려 일하겠느냐고. 안 그래 젊은 사장?”



조사하는 태도로 봐선 여차하면 나를 철창 안으로 …



그림=화가 김태헌
황 영감은 테라스에 천장을 치고 창문을 둘러 불법으로 전용면적을 확장했다. 교묘한 공사였지만 아는 사람 눈엔 설계도면과 분명 다를 것이 빤히 보이는 일이었다. 황 영감은 아직 누가 신고했는지 모르는 눈치다. 사람을 자꾸 집적대는 게 꼴 보기 싫어 맛 좀 보라고 내가 한 일이었다. 당시엔 심심한데 할 일이 생겨 잘됐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그만 영감의 신고 정신에 불을 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영감의 무차별 신고로 한동안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시공업체들은 자재가 남았다며 대단한 선심을 쓰듯 건축법이 그다지 엄격하게 닿지 않는 선에서 건축허가를 받을 때의 도면과 아주 약간 다르게 지어주곤 했다. 건물주들이야 시공업체의 말만 믿었을 테고 불법인 걸 알았다고 한들 은근히 바라기도 했을 것이다. 그건 술집에서 서비스 안주를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야말로 구청의 세금 공무원들만 신난 셈이 돼버렸다. 보나마나 황 영감이 나도 신고했을 테고 실제로 구청에서 한 번 찾아오긴 했다. 그러나 나로선 걸릴 게 없었다. 아파트를 거래하면서 웬만큼 공무원들을 상대해보니 그들에게는 자그마한 것이라도 책잡힐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형사들이 드나든 걸 황 영감이 알았다면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다. 피부에 와 닿지 않던 전복이의 실종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전복이가 어서 나타나든지 아니면 적어도 내 집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음이 증명돼야 할 것이다.



 “부모님은 지방에 급매로 나온 건물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복이의 실종이 90시간을 넘기고 있다. 나는 105호에 가서 형광등을 고쳐주고 돌아서는 길에 참고인으로서 경찰서로 불려나왔다. 순순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 역시 공무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처음 탐문 수사 때 입주 학생들의 인적사항과 CCTV 녹화 영상 파일을 가져간 형사가 조사를 시작했다. 형사는 여대생의 실종보다는 나의 재산 형성 과정이 더 궁금한 눈치였다. 나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그러나 영원히 잊을 수 없을 15년을 압축해서 얘기해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겨우 설득해 나선 길이었다. 아침 일찍 그쪽 중개업자와 약속돼 있었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에 차를 움직였다. 그날 밤, 목적지까지 절반도 가지 못하고 사고가 났다. 고속도로에서 저속으로 운행하던 덤프트럭 밑으로 아버지의 차가 기어들어간 것이었다. 당시 경찰은 피곤한 상태에서 야간운전을 하면 앞쪽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감을 혼동할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속도를 줄이지 못했고 그대로 덤프트럭 밑으로 돌진했다. 차의 상판부가 말끔히 날아가버렸고 두 분은 즉사했다. 장례를 치른 후 나는 부모님의 목숨을 앗아간 그 일이 증오스러우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따라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작심했기에 실패는 두렵지 않았다. 곧바로 아파트를 처분해 고시원을 잡고 확보된 현금으로 일을 시작했다. 평소에 아버지로부터 들어온 얘기들이 굉장히 전문적인 수준의 이론과 관련법규란 것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차근차근 승률을 올리는 동안 입고 먹는 것에 소홀해 몇 번 쓰러진 적도 있었다.



 형사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내 말을 타이핑하며 듣고 있었다. 나는 내 이력이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웠다. 그가 공무원이라는 걸 생각하자 이해가 되긴 했다. 형사가 톤을 바꾸어 다른 질문을 시작했다.



 “평소에 주무시는 시간이 그리 이르지 않은 것 같더군요. 임혜슬 양 잘 아시죠? 그 학생 말로는 그 시각에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왔는데 직접 문을 열어주셨다고요. 왜 자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조사하는 태도로 봐서 여차하면 나를 철창 안으로 밀어 넣을 기세다. 괜한 거짓말을 한 걸 후회하는 순간 임혜슬이 초인종을 두 번 누른 게 기억났다.



 “자다 일어난 겁니다. 초인종 소리가 자꾸 들려 나와 봤더니 그 친구가 문을 못 열고 있더군요.”



 형사가 입꼬리를 슬쩍 당겨 웃는다.



 “임혜슬 양은 선생 댁의 거실 창문에 불빛이 비치는 걸 보고 초인종을 눌렀다던데요? 불이 다 꺼져 있었으면 그냥 카드키를 대고 열었을 거라고 했어요. 그 친구, 사실은 카드키를 늘 잘 가지고 다녔답니다. 카드키가 있으면서 왜 굳이 초인종을 눌렀는지는 얘기 안 하더군요. 단순한 장난이든 선생을 좋아해서 그랬든 그건 이 일과 무관하겠죠. 근데 어쩌면 아실 수도 있겠네요. 선생은 세입자들에게 관심이 많으니까요. CCTV 말입니다. 저희가 가져간 녹화 영상을 분석해보니 최종 재생 시간이 좀 재밌더군요. 젊은 남자분이시니, 신영주 같은 여학생이 그런 데서 그러는 걸 보면서 혼자 야릇해지기도 했겠죠? 안 그렇습니까?”



 형사가 표정과 어조를 바꿀 때마다 어딘가 조금씩 옥죄는 기분이 든다. 테이블을 뛰어넘어 형사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다. 그러나 형사는 끈질기게 내게서 뭔가를 도발하려 한다.



 “혹시 저희에게 알려줄 게 있지 않았습니까? 이를테면 신영주 양이 화면에서 사라진 다음의 상황을 말이죠. 반대편 길가의 보안용 CCTV를 봤더니 댁네 주차장에서 화면 밖으로 사라진 시간과 길가에 나타난 시간이 좀 많이 차이나더라고요. 그 어두운 데서 둘이 뭘 했겠습니까. 15분 동안 말이죠. 솔직히 말씀해보시죠. 아셨습니까 모르셨습니까.”



 전복이의 방을 보러 내려가기 전에 알게 된 사실이다. CCTV 영상을 다시 오랫동안 돌려보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나 역시 그들이 출입문 쪽의 인기척만으로 그렇게 도망치듯 건물 사이 통로로 사라진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둘이 사라진 화면 상단의 어두운 부분을 주시했다. 그랬더니 눈여겨보지 않았더라면 쉽게 놓쳤을 것이 보였다. 희끗희끗한 게 규칙적으로 보였다 안 보였다 했는데 그건 아직 그들이 거기 머물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디선가 동료 형사가 다가와 테이블 건너편에서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표정들이 애매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전복이 소식이라는 걸 알았다. 나를 조사하던 형사가 뭔가 미진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말한다.



 “그만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찾긴 찾았는데…… 고향 바다에서 시체를 건졌답니다.”



누가 자꾸 내 집 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이다. 침입자는 오류를 알리는 기계음이 반복되는데도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인터폰을 들어 담뱃갑만 한 화면으로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한 남자가 여자애를 업은 채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중이다.



 “누굽니까. 왜 남의 집 문을 열려고 그래요?”



 남자는 깜짝 놀라 키패드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선다. 본인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코믹하다.



 “여기 혜슬이 집 아닌가요? 301호라고 그러던데. 비밀번호도 가르쳐줬어요. 0629요. 야, 임혜슬 정신 좀 차려봐. 여기 아니야? 301호?”



남자애가 등에 업힌 혜슬에게 고개를 돌려 고함친다. 남자애의 목소리가 인터폰에서와 동시에 통로를 울리며 거실 문을 통과한다. 그러나 여자애는 축 늘어진 채 미동도 없다.



"누가 문을 열어주는 집이었으면 했어요 …"



“106호로 내려가세요. 거기 사는 학생입니다.”



 “아, 그래요? 어째 좀 이상하다 했어요. 감사합니다. 얘가 고향집이랑 헷갈렸나 봐요. 엄마 보고 싶다고 한참 그러다가 취해버려서…… 아무튼 죄송했습니다.”



 0629는 임혜슬의 생일이다. 계약서의 주민번호를 보고는 ‘6.29 선언’을 연상하며 입력해놨더니 다른 학생들 것보다 기억에 선명하게 오래간다. 주의를 줬건만 버젓이 생일로 비밀번호를 설정해놓은 걸 보면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여자애다. 나는 뭔가 불편한 기분에 조급해진다. 저녁때의 일이 자꾸 떠올라서인 것도 같다.



 경찰서에서 돌아온 뒤부터 내내 TV 화면을 출입문 쪽 CCTV에 맞춰놓고 있었다. 임혜슬이 나타나길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임혜슬은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길가에서 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평소에는 조용한 이쪽 블록에서 흔치 않은 일이기에 생각해보니 오늘부터 대학에서 축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어쩌면 오늘만은 임혜슬이 늦게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부디 좀 그러면서 지내길 바란 것도 같다.



 현장을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느슨해질 때쯤 임혜슬이 화면에 나타났다. 여전히 도서관 책 냄새가 풀풀 풍기는 차림이었다. 경찰의 말 대로 임혜슬은 문 앞에 서서 출입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네, 무슨 일이에요?”



 “죄송해요. 카드키를 또 방에 두고 나왔나 봐요.”



 “잘 챙겨 다니세요.”



 나는 열림 버튼을 눌러주고 재빨리 집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임혜슬을 층계참에서 맞닥뜨렸다. 나를 보자마자 한껏 당황한 얼굴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학생. 지금 키 갖고 있는 거 알아요. 매번 왜 그러는 거죠?”



 나는 내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걸 깨달았고 그게 여자애를 겁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궁금해서 그래요. 키가 고장 났나요? 얘길 하면 바꿔줄 수 있어요.”



 임혜슬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말을 안 하고는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꽉 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가 문을 열어주는 집이었으면 했어요. 여긴,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아무도 없는 집 같아요. 빈집…… 같은 거 말예요. 죄송해요. 앞으론 안 그럴게요.”



 말끝에서 살짝 울먹임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곧장 뒤를 돌아 왔던 길로 나가버렸다. 나는 내가 뭔가를 단단히 잘못했다는 기분이 들어 그 자리에 오랫동안 붙박인 채 움직이질 못했다.



 임혜슬의 방으로 내려가 문을 두드린다. 인기척이 없다. 그러나 둘은 분명 방 안에 있을 것이다. 계속 두드리자 한참 만에 문이 열리고 임혜슬을 업고 왔던 남자애가 얼굴을 내민다. 나는 재빨리 문 안쪽을 살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남자애의 꼴로 봐선 다행히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다. 남자애는 짜증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나를 쏘아본다.



 “뭐죠?”



 “학생도 오늘밤 여기 있을 건가?”



 “네? 뭐……”



 됐다. 어른의 반말 한 방에 쉽게 기가 꺾이는 꼴이 역시 몸만 크지 어린애다.



 “가줬으면 좋겠어.”



 “네? 왜요?”



 “저 학생이 원치 않을 거야.”



 “아저씨, 저흰 성인이고요, 저 애가 먼저 전화를 해서 절 불러낸 거예요. 그리고 제 앞에서 저렇게 취했고요. 그럼 얘기 끝난 거 아니에요?”



 한 발짝도 밀리지 않겠다는 결기가 제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날을 세워봤자 내게는 스무한두 살짜리의 설익은 오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보니 남자애에게서도 도서관의 책 냄새가 풀풀 나고 있다. 세상을 책으로 배운 치들처럼 만만한 상대는 없다.



 “주취 상태에서는 강간이 성립돼. 학생 얼굴은 이 집에 들어서기 직전부터 다 찍혀 있고. 내가 저 학생 부모에게 당부를 받은 게 있으니 괜한 소란 떨지 말고 이만 가줘. 인생 선배로서 조언 하나 하자면, 오늘은 그냥 가는 게 저 앨 꼬시는 데 더 도움될 거야.”



 남자애는 뭔가 할 말이 더 남은 듯 입술을 달싹이더니 자기 재킷을 들고 나온다. 나는 임혜슬의 방 문이 제대로 잠기는 걸 확인하고 남자애를 배웅한다. 어깨가 축 쳐진 것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남자애가 계단을 내려가려다 말고 돌아섰다.



 “절 좋아해줄까요? 사실 오늘 좀 놀랐거든요. 그렇게 만나달라고 해도 차갑기만 하던 애가……”



 남자애의 눈빛이 아까와는 다르게 눅눅해져 있다. 아마 둘을 그냥 뒀더라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따라와.”



 나는 남자애를 내 집 앞으로 데려와 잠시 세워두고는 냉동실에서 아이스박스째 얼어 있는 전복을 쇼핑백에 담아 내온다.



 “전화 한 통 받고 곧장 나왔다면 학생도 이 근처 어디에서 자취하나 보네. 객지에서 공부하려면 잘 먹어야지. 이거 라면에라도 넣어봐. 기막힐 거야. 나갈 때 문 잘 닫아주고.”



 남자애를 보내고 돌아서니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형사는 이 거실을 보고 자기 집보다 넓겠다고 했다. 문득, 내가 빈집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서에 따르면 신양은 “완전한 사랑을 찾은 이 순간을 영원히 지키고 싶어서”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며칠 뒤,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뒤져 지역 신문에서 전복이 사건 기사를 겨우 찾았다. ‘신모 양’은 동갑내기 ‘권모 군’과 고향 인근 바닷가로 밀월여행을 왔다가 권군을 먼저 올려보낸 뒤 일을 저질렀다. 신양은 자살 직전 권군에게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아닌 보통우편으로 유서를 부쳤는데 그 내용의 일부가 공개됐다. 유서에 따르면 신양은 “완전한 사랑을 찾은 이 순간을 영원히 지키고 싶어서”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기사는 신양이 파트리스 르꽁트 감독의 영화 ‘이발사의 남편’(번역된 제목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모방한 것이라고 했다. 말미에 영화를 언급한 데서는 기자의 먹물스러운 허세가 느껴지기도 했다. 장례가 끝나야 방을 비우겠지? 어디선가 갑자기 “아저씨 최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 컴퓨터를 꺼버린다.



 소파에 누운 채 TV를 보다가 깜빡 잠들었던 모양이다. 주방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깼다. 시계는 새벽 네 시를 넘기고 있다. 몸을 일으키는데 사지가 뻣뻣한 게 내 몸이 아닌 것만 같다. 주방의 광경을 보고 잠시 머릿속이 하얘진다. 냉장고 냉동실의 문이 열려 있고 그 안에 작은 아이스박스에서 수많은 전복들이 언 몸을 비틀어 얼음을 떨궈 내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며칠 전에 분명히 임혜슬을 데리고 온 남학생에게 줘버렸는데 언제 다시 돌아와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전복은 다섯 마리가 아니라 어림잡아 오십 마리도 넘어 보인다. 그러고도 아이스박스에서 계속해서 기어 나오고 있다. 전복들의 행진은 느리고 매끄럽지만 완강하다. 나는 어느새 발 아래에 닿은 선두에게 길을 비켜준다. 거실 문에서 다시 막히는 걸 보고는 달려가 문을 열어준다. 계단을 따라 부드럽게, 꾸준히 전복의 물결이 흘러내린다. 나는 1층까지 따라 내려간다. 전복의 흐름은 건물 출입문 앞에서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이어진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더 이상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길 저편으로 이어지는 대열을 바라본다. 조가비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끝-



소설 당선 소감

두들겨 맞은 듯 ‘당선의 통증’

문득 아련한 부모님 생각에 …




김덕희
당선 통보를 받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이는 설렘만큼 통증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의 관절이 어그러지는 느낌과 함께 속이 쓰라려오는데,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낯선 통증이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중에 사지를 주무르며 버티다가 결국 약국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투고를 해오며 참 많이도 상상했던 순간이었고 의연하게, 심드렁하게 대응할 것 같았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진정되길 기다리며 대체 이게 뭘까 하고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괜찮아진 지금도 그 원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히, 이 지독한 통증을 기억하며 써야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나를 낳으실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싶어 긴 한숨을 내쉬고 맙니다. 곁에 계신 아버지께 두고두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저놈을 내 배로 키워 낳았잖능교!”



 아버지께서도 가만히 계실 수 없지요. “자가 내를 닮아서 인물이라니까.”



 부모님을 대신해 저희 형제를 돌봐주신 친지들께 감사 드립니다. 김덕영·김이음. 이 둘은 지금 제가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이들의 이름을 온 산하가 뒤흔들리도록 불러봅니다.



장영우 선생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크고 귀한 지도를 베풀어주시는데도 워낙 아둔한 제자라 너무 오래 속을 태워드렸네요. 처음부터 함께 걷고 있는 강수호·정영효·고은주(윤고은)·박경아의 손을 오랫동안 맞잡고 싶습니다.



 소설 쓰라고 줄기차게 부추긴 신현대형과 유희경, 당사자보다 더 확신해준 박광호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더 늦어졌을 것도 인정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결정에 확신을 실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덕희=1979년 경북 포항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



소설 심사평

‘나’의 권태와 대비되는 원룸 여대생

생생한 인물 묘사 … 세태소설로 묘미




소설 본심 심사 중인 소설가 성석제(왼쪽)·권여선씨. 김성룡 기자
본심에 올라온 11편 중 소재에 기댄 작품이 많았다.



 암을 유발하는 숯가루를 소재로 한 ‘블랙푸드’, 영화 속 영웅을 다룬 ‘브루스 웨인에 관한 회고’, 체스 로봇을 소재로 한 ‘프리츠’, 이상한 가족과 오리의 방문을 다룬 ‘오늘의 초대손님’, 개그맨 김병만에 슬쩍 얹힌 ‘모두에게 김병만이 필요해’, 의인화된 흑백 텔레비전이 등장하는 ‘텔레비전을 좋아하세요’ 등이 그러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들 여섯 편 모두 한결같이 문장이 거칠고 진행이 억지스러웠다. 아이디어만으로는 결코 소설이 되지 않는다. ‘한나, 누나’는 장난으로 친구를 죽게 한 소년과 그 친구의 누나, 둘의 관계가 주요 내용이었지만 정작 그 관계의 미묘함이 돋보이지 않았다. ‘등’은 ‘너’라는 이인칭 화법과 등에 무언가가 자라는 과정이 호응하여 끈질긴 이물감을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물 간의 관계가 요령부득이었다.



 결국 본격적인 심사의 대상이 된 작품은 ‘누구세요’ ‘상영’ ‘전복’ 세 편이었다. ‘누구세요’는 아파트에서 발생한 여성의 투신자살에 대한 중년 여인의 감정이입 과정을 매끄럽게 서술했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기존 주부소설의 불안 틀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었다.



 ‘상영’은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성의 시각에서 상영관에서 일어난 자살사건과 그 이후의 자잘한 사건들을 긴장감 있게 풀어나갔다. 이 긴장 또한 알바생을 주인공으로 한 청년소설과 무엇이 한 치라도 다르단 말인가.



 ‘전복’은 대학가 원룸 건물의 주인 남자인 ‘나’의 관점에서 입주한 여대생들을 관찰하는 소설이다. 뭐 뻔하다면 뻔한 얘기다. 그런데 구구한 설명 없이 ‘나’의 시선만으로 중년 남자의 권태와 고독을 배경으로 깔고, 그 위로 여대생들이 벌이는 이런저런 사건을 흘러가게 만드는 솜씨가, 소설에 안정감과 깊이를 만들어냈다.



 인물들도 하나하나 생생했다. 전복으로 상징되는 중산층 유학생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변질되는지를 산뜻하게 묘파한 세태소설적 덕목까지 더해,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본심 심사위원=권여선·성석제(대표집필 권여선)

◆예심 심사위원=김숨·박성원·박형서·이수형



사진 김성룡 기자



소설 본심 진출작(11편)



● 곽유경 : 등

● 김덕희 : 전복

● 김동연 : 텔레비전을 좋아하세요

● 김은혜 : 오늘의 초대 손님

● 류기성 : 프리츠

● 이현승 : 블랙푸드

● 장보은 : 상영

● 전서율 : 브루스 웨인에 관한 회고

● 정재이 : 한나, 누나

● 조기운 : 누구세요

● 최지웅 : 모두에게 김병만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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