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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그들은 왜, 말기 암 환자 아버지를 죽였을까?

[앵커]

추석을 앞두고 경기도 포천에서 일가족이 말기 암 환자인 아버지를 목졸라 죽인 패륜 범죄가 발생했었죠. 네, 이 사건은 아들의 고백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요, 가족들은 아버지 유언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가족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박소연, 신혜원 두 기자가 추적했습니다.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아침.

고개를 숙인 남성이 유치장에서 나옵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유언 남기셨어요? 직접 들으셨나요?]

지난 8일, 가족들과 합의해 뇌암 말기인 아버지를 살해한 27살 이모씨입니다.

그는 말이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이씨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큰 누나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큰 누나를 통해 "너무 고통스러우니 목숨 좀 끊어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전해 들었다는 겁니다.

[경찰 관계자 : 처음에 아들이 안 하겠다고 했다는 거야. 나는 못 한다, 자식이 어떻게 그러냐고… ]

하지만 다음 날, 이씨는 어머니와 큰 누나 앞에서 아버지의 목을 눌렀습니다.

[경찰 관계자 : 아버지 가실 때 되셨으니 잘 가십쇼.
자기 말로 그래, 그리고 나서 목을 졸랐다고…. ]

아버지가 숨진 며칠 뒤 집에선 고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웃 주민 : 아버지를 묻고 왔는지 버리고 왔는지도 몰라. 그날도 떠들고 ㅇㅇ하더라니까.]

이씨는 작은 누나에게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나도 죽겠다'는 문자를 보냅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숨진 줄만 알았던 작은 누나는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 관계자 : 우리가 잡아서 네가 아버지를 죽인 게 맞냐고 (물었더니) 내가 죽인 게 맞다고…]

아버지가 뇌 암 진단으로 최대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건 지난해 말.

고통이 점점 심해져 사건 당일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씨 어머니 : 아빠 죄송해요. 아빠 유언대로 해드린다고. 편하게 가시라고, 그냥 갈 거면. 슬그머니 지압하듯이…]

작은 누나 증언도 비슷합니다.

[이씨 작은누나 : 아빠가 저한테도 부탁을 그렇게 많이 했고. 언니는 8개월 동안 아빠를 모시고 있었으니까 저보다 많이 들어 왔겠죠.]

그런데 일부 이웃들 사이에서 석연찮은 얘기가 흘러 나옵니다.

56살인 아버지가 최근까지도 거동이 꽤 활발했다는 겁니다.

[이웃 주민 : 기저귀 채워서 6개월 동안 똥오줌 다 받아냈다는 것, 다 거짓말이야. 걸어 다니고 운전도 했어.]

더 충격적인 증언도 있습니다.

[이웃 주민 :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이런 얘길 했어요. 딸이 날 죽이려 했다. 합의하는 걸 들었다. 무섭다….]

이런 의문에 대해 가족들은 어떤 얘기를 할까.

취재진은 다시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이씨 큰 누나 : 마음 아파 죽겠는데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거든요.]

이씨 어머니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이씨 어머니 : 가라고!]

[앵커]

네, 참 비극적인 이야기인데요, 취재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소연 기자, 그런데 주민들이 왜 이상하다고 의심을 하는 건가요?

[기자]

우선 숨진 이씨 나이가 이제 56살 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27살입니다.

정말 세상을 등지고 싶다면 굳이 앞길이 창창한 아들을 살인범으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앵커]

아버지가 정말로 아들에게 죽여달라고 한 건지 저 또한 의구심이 드는데, 경찰도 조사하고 있죠?

[기자]

네, 경찰은 유언장 같은 증거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생각했다면 유서나 음성 녹음을 남길 법도 한데 그런 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금융감독원에 이씨 가족의 보험 가입 여부를 조사하는 등 여러가지 가능성을 수사 중입니다.

취재 내용 좀 더 보시죠.

+++

숨진 이씨의 아버지가 올 초까지 혼자 살던 집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큰 딸 집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유리문이 깨져 있고 가재 도구가 나뒹굽니다. 우편함에 쌓인 체납 고지서는 어려운 형편을 보여줍니다.

가족과 떨어져 이 집에서 살던 이씨는 암선고를 받은 뒤, 큰 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신상철/주민 : 이런 환경에서 살았으니까, 보면 알 거 아니야. 엉망이거든.]

폐허처럼 변한 집. 한때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가족에게 지난해 말 엄청난 시련이 닥친 겁니다.

취재진은 당시 이씨의 큰 딸이 포천시의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찾아냈습니다.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는데, 배당금과 정부지원금 한푼도 못 받고 추운 겨울 길 바닥에 나앉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집 주인 : 그분이 보증금 3500만원인가 얼마를 다 뜯기셔서, 돈이 없다고 그러셔서. 보증금 백만원에 월세로 살아라…]

거기에 뇌암 선고까지 겹쳤습니다.

병원비가 감당이 안돼 입원 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 관계자 : 돈이 없잖아 돈이. 돈 있으면 병원에다 모시지.]

둘째 딸이 호스피스 시설에서 일했지만 막상 아버지는 그곳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큰 딸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상철/주민 : 애들이 잘했지. 아버지 말이라면 쩔쩔매는 애들이었지.]

언어 구사에 어려움이 있어 일을 하지 못하는 큰 딸 역시 사면초가였다고 합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은 남편이 공장에서 벌어오는 월급 1백여만원이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포천시 관계자 : (남편이) 지적장애 3급에, 지체 하지관절 장애 6급이세요. (장애연금이) 한달에 11만2800원, (딸은) 언어장애 4급…]

이들의 처지는 딱했지만 마땅히 손 벌릴 곳도 없었습니다.

[신현호/변호사 : 가족이 병원에 가고 싶어도 본인이 치료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게 된 이런 사회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죽게 했고, 과연 고인이 진짜로 죽여 달라는 부탁을 했느냐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경찰 관계자 : 노인네들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데, 그 말을 믿고 죽인다면 살아 남을 노인이 어딨겠냐고.]

이번 사건은 자칫 완전범죄로 묻힐 뻔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죄책감에 자살소동을 벌이면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앵커]

박 기자,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아들의 문자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겁니까?

[기자]

예, 이미 시신도 화장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죽였다'는 아들의 문자가 없었다면 사건이 은폐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병원에서 작성한 검안서에도 '말기암에 따른 병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앵커]

처음부터 사인 규명이 제대로 안됐었군요. 이번 사건 때문에 존엄사 논란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고 하죠?

[기자]

예. 가족들은 아버지가 너무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요. 실제 숨진 이씨처럼 집에서 임종을 맞는 말기암 환자들은 아무런 건강 보험이나 의료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관련 내용도 함께 보시죠.

+++

말기암 환자의 가족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할까.

[김선희/말기암 환자 보호자 :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건 이해되지만. 최후까지 있어줘야 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이번 사건이 보도되자 존엄사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존엄사와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신현호/변호사 : 이번 사건은 시기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비의학적으로 비윤리적으로 사망시켰기에 전형적인 존엄사로 보기 어렵습니다.]

국내에 존엄사가 처음 시행된 건 2009년.

연명 치료를 중단해도 좋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77살의 김모 할머니가 첫 사례였습니다.

지난 7월에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권고안까지 내놓았습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연명 치료 중단을 원하면 가족과 의료진에 결정권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반발도 큽니다.

[이동익 신부/한국 천주교 생명윤리위원회 :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지 못하는 가치가 있다면 생명입니다. 생명을 없앤다는 논의는 결국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겁니다.]

문제는 생명 포기의 이유가 의료비 부담 때문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겁니다.

병원 치료를 못받은 이씨가 전형적 사례입니다.

[허대석/서울대 종양내과센터 교수 :무의미한 연명 의료는 끝 없이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반면, 집에서 임종하는 말기암 환자에 대해선 건강보험이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일학/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사회적으로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환자에게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의료제도를 개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말기 암을 앓다 56살 나이에 아들 손에 숨진 아버지.

아들과 딸, 그리고 부인은 패륜 살인범으로 전락한 사건.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무얼 해야 하는 건지, 함께 답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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