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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문화융성 감당할 시스템 있나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세상 모든 일이, 예컨대 은행 적금처럼 돈을 꼬박꼬박 넣으면 알아서 새끼 쳐 목돈으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알기 쉬울까. 그렇지 않은 동네가 얼마든지 있다. 연애편지 3년 내내 보냈더니 집배원과 결혼하더라고, 기대를 뒤집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문화예술 투자도 마찬가지다. 돈을 퍼부어 황석영이나 고은, 셰익스피어를 만들 수만 있다면 부잣집은 자녀 진로를 걱정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 투자도 하지 않고 자녀가 문호·거장으로 크길 바라는 건 사기꾼 심보다. 가수 싸이가 부모 몰래 보스턴대 경영학과를 중퇴하고 음악으로 돌지 않았다면 오늘의 싸이는 없었다. 반면 천막 치고 국밥 장사를 하면서도 피아노를 외상으로 들여와 아이들 레슨 시키고, 한국전쟁 피란길에도 피아노를 갖고 갔던 고 이원숙 여사의 열성이 없었다면 정명훈·명화·경화 삼남매는 음악가가 될 수 없었다.



 누구나 정명화처럼 첼로를 켤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정명화가 연주하는 하이든을 듣고, 가끔은 연주회도 갈 수 있어야 한다. 국회에 상정돼 있는 문화기본법의 제정 취지가 바로 이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화기본법안은 ‘문화적 권리’, 즉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못박았다. 단군 이래 처음이다. 소질이 뛰어나면 프로 예술가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감상할 능력과 여건은 제공해주어야 한다. 자라나는 어린이·청소년과 저소득층·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지원해야 할 이유다. 그게 문화복지고 문화융성, 문화가 있는 삶이다.



 현실은 어떨까. 2017년까지 문화 재정을 2%로 키운다는 박근혜정부의 약속에 따라 예산은 지속적으로 늘게 돼 있다. 반면 시스템은 뒤처져 있다. 기초수급자 가정의 초등학생 A군을 가정해보자. A군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방과후 학교 제도에 따라 피리 연주 강좌에 참여한다. 토요일엔 문화이용권(바우처)을 이용해 아동극을 감상한다. 오는 일요일엔 집 근처 도서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들을 예정이다. 어제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오케스트라를 만들려 하니 너도 참가하렴”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본떠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 어린이 위주로 구성되는 관현악단이란다.



 A군으로서는 방과후 학교 예산, 강사 수당, 문화이용권 재원, 인문학 강의 비용, 오케스트라 악기 구입비가 누구의 어느 주머니에서 나오는지 따질 이유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인지, 교육부인지, 지방자치단체인지, 교육청인지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어른들이 낸 세금이라는 것을 고마워하고, 훌륭한 문화시민으로 잘 자라주면 그뿐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문화복지 예산은 정부 부처별로, 부처 내에서도 실·국이나 산하단체별로 촘촘히 나뉘고 갈라져 집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복·과잉 투자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학교 자유수강권이 남아돈다. 만일 A군이 다문화가정 자녀라면 더 많은 부처가 문어발처럼 손길을 줄 것이다. 지원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진정 문화융성을 원한다면 피 같은 예산을 제대로 효과적으로 쓰자는 얘기다. 문화융성은 예산융성과 동의어가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가야 옳다.



 일반 복지 예산은 이미 3년 전에 ‘사회복지 통합관리망’이란 것을 만들어 중복·누수를 막고자 했다. 그런데도 감사원이 지난달 발표한 ‘복지전달체계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허술한 구석투성이다. 이미 돌아가신 116만 명이 멀쩡히 살아있었고,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등 바우처 사업도 375억원이나 잘못 지급됐다. 문화복지를 비롯한 문화서비스 분야는 아직 통합관리는커녕 전달체계 모델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문화융성 원년’이라 어쩔 수 없다고 이해는 하지만, 남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호되게 비판받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각 부처의 중복·과잉 지원 사례를 문화까지 답습해서야 되겠는가.



 정답은 박근혜 대통령이 늘 말하는 것처럼 ‘현장’에 있다고 본다. 초등학생 수혜자 A군의 입장에서 정책을 짜고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문체부·교육부·지자체 등이 칸막이를 부수고 머리를 맞대라. 부처 업무분장 위주, 예산항목 집행 위주에서 벗어나 수혜자 개인에서 출발하는 상향식 발상이 특히 중요하다. 이런 발상의 전환을 바탕으로 정교한 문화서비스 전달체계부터 구축하기 바란다. 어제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문화융성위원회 설치·운영 규정 개정령안을 보니, 기존의 문체부 장관 외에 미래창조과학부·교육부·안전행정부 장관도 문화융성위원회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가게 돼 있었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일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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