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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사생활이 요격 미사일인가

권석천
논설위원
문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를 야만 상태로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에게 문명은 존재하는가.



 트위터와 카카오톡을 보라. 아이들 사진이 굴러다니고 있다. “저 사진에 있는 아이들 중 누가 닮았을까요?” “채동욱 아이로 추정되는 아이 사진.” “채OO군 육필원고….” 초등학생 얼굴들을 들여다보며 히히덕거리는 건 어른들이 할 짓이 아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婚外) 아들’ 의혹과 관련이 있든 없든, 전쟁이 나도 자라나는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 얼굴 없는 손들은 죄의식마저 잃은 것인가.



 그제 채 총장은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유전자 검사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공은 다시 의혹을 보도한 신문사로 넘어갔다. 모두들 해당 신문사가 어떤 추가근거를 쥐고 있는지 주목하고 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엔 공인(公人)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 무엇이 공익인지에 관한 오랜 논쟁이 도사리고 있다.



 “혼외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가 검찰총장 직무와 무슨 상관이 냐. 채 총장 부인과 고등학생 딸은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R 변호사)



 “검찰 수사를 지휘하는 총장은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공직 생활은 절대 사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C 변호사)



 대학에서 법을 가르치는 한 교수의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고위공직자는 어항 속에 사는 물고기와 같다. 사생활 보호 기준이 일반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 사생활 의혹이 어떤 맥락과 상황 속에서 무슨 의도로 제기됐느냐다.”



 인터넷 포털 검색에서 ‘채동욱’을 치면 다음과 같은 연관검색어가 뜬다. 전라도, 박근혜, 국정원, 민주당, 청문회…. 물론 “국정원이 댓글 수사에 대해 반격에 나선 것”이란 시나리오는 채 총장 의혹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물증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추측일 뿐이다.



  분명한 건 여론의 흐름이 정확히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가 잘못됐다고 믿는 이들은 채 총장에게 적대적이다. 국정원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은 채 총장을 옹호한다. 의혹이 격발된 총구가 어딜 향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국정원 수사 갈등과 맞물려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현 상황이 사회 전반에 “까불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걸핏하면 불거지는 표절 의혹이 상대진영 인사를 쓰러뜨리는 지뢰라면, 사생활 의혹은 존립 기반까지 궤멸시키는 요격 미사일이다. 한 법조인 출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개인의 사생활이 언제든 까발려질 수 있다는 건 공포스러운 일이다. 가정의 행복과 명예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아닌가. 예전의 총칼이나 감옥보다 훨씬 폭력적이다. 그땐 ‘민주화를 위해 핍박받는다’고 할 수라도 있었는데….”



 불완전한 인간 앞에 과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맞든 틀리든 위축되기 마련이다. 당장 가까이 있는 이들의 눈빛이 무섭고, 인터넷의 ‘홍위병’들이 두렵다. 결론은 출구 없는 자기검열이다. 정치권력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말문을 닫고 소시민의 생활로 망명하게 된다. 검찰 조직도, 공직 사회도 정보가 모이는 기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채 총장 의혹의 진위는 어떤 식으로든 가려질 것이다. 다만 세금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정원 개입설만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공직자를 임명할 때도, 내보낼 때도 원칙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잘못이 있다고 판단되면 별건(別件)을 들이밀지 말고 그 문제 자체를 지적하라. 그래야 공조직이 살고, 소통이 숨 쉬고, 토론이 치졸해지지 않는다. 그런 걸 우린 ‘정상적인 정부’ ‘정상적인 사회’라고 부른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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