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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촛불 수난시대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연인에게 전구(電球)를 선물로 주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빛을 심으려는 손길은 예쁘게 포장한 양초를 건네는 법이다. 고대 이집트의 궁궐에서는 밀랍이나 동물의 기름에 갈대를 섞어 만든 양초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신라와 고려의 왕궁에서도 금동수정 촛대, 청동쌍사자 촛대 등이 사용됐다. 촛불은 오랜 궁정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전기가 널리 보급된 오늘날에는 양초의 쓰임새가 크게 줄었지만 종교용·축제용·장식용의 촛불은 여전히 밝게 빛난다. 부활절 새벽의 촛불예배는 지금껏 이어져 오는 오랜 전통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맨 처음 촛불 장식을 매달았다. 촛불은 결혼식이나 제사에서도 좀처럼 빠지는 일이 없다. 생일 케이크마다 어김없이 꽂히는 촛불에도 사랑과 소망의 빛이 소곳이 담긴다.

 기껏해야 밀랍이나 파라핀에 실 심지를 꼬아 박은 원시적 조명기구, 그 구닥다리 같은 촛불이 이토록 오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소박한 옛것에 대한 그리움, 실바람에도 가녀리게 흔들리는 순수의 이미지,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희생과 헌신의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예부터 촛불은 고독한 명상과 구도(求道)의 동반자였다. 시인들은 흐릿한 촛불 곁에서 홀로 시상(詩想)에 잠겼고, 깊은 산속 선방(禪房)의 행자들은 사위어가는 촛불과 함께 스스로를 비워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l)의 로고는 ‘철조망에 갇힌 한 자루의 촛불’이다. 양심과 인권을 나타내는 데 굳이 수천, 수만의 촛불이 필요할 까닭이 없다. 양심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촛불을 켤 때가 있는가 하면, 촛불을 끌 때도 있기 마련이다. 깊은 밤, 덕산(德山)에게 촛불을 건네주던 용담(龍潭)은 돌연 촛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덕산은 활연히 깨쳤다. 빛과 어둠, 그 분별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태풍 같은 화두다.

 나룻배에서 촛불을 켜고 책을 읽던 시인 타고르는 촛불과 달빛의 신비한 대조를 경험했다. “촛불을 끄자 신성한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둘러쌌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달빛이 춤추며 흘러 들어와 나룻배 안을 가득 채웠다. … 촛불 때문에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신석정 시인은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읊었다. 이글거리는 불꽃은 명상의 마음결을 흩뜨리기 일쑤다. 하물며 광장을 뒤덮은 촛불 군단일까.

 흥미로운 것은 서양의 대성당과 앰네스티의 촛불이 환히 켜져 있는 반면 우리 시인과 용담과 타고르의 촛불은 아직 켜지지 않았거나 아예 꺼진 불꽃이라는 점이다. 동양적 성찰의 깊이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이즈음, 이 땅의 촛불은 웬일인지 서양의 것들보다 더 밝게, 더 많은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중이다.

 성소(聖所)의 제단을 경건히 비추며 축제의 밤을 우아하게 밝히던 촛불이 오늘의 한국에서는 광장의 시위 도구로 변신했다. 사학법 날치기 통과 규탄 집회,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국정원 개혁을 외치는 정당의 장외투쟁에 이어 내란음모 사건 수사에 대한 항의 데모에까지 촛불이 무리를 이루곤 한다. 시위대의 손에 화염병 대신 촛불을 쥐어준 것은 아마도 평화의 정신일 테지만 광장을 점령한 촛불 군단의 불꽃은 화염병보다 더 섬뜩한 열기를 내뿜고 있다. ‘촛불 문화제’의 정감 어린 이름으로도 그 정치적 노림수를 감추지 못한다.

 촛불 광장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아테네 이래 처음으로 한국에서 다시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했다”는 감격적인 논평을 냈다지만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소규모 도시국가의 민회(民會)가 열리던 광장이었다. 인구 5000만 명의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광장은 더 이상 민회의 아고라가 아니다. 대의민주정치의 아고라는 국회다.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을 나와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뿐인가. ‘북은 모든 것이 애국, 남은 모든 것이 반역’이라는 종북의 무리까지 촛불 들고 광장을 누비며 대한민국을 한껏 능욕하고 있다. 주사파의 손에 들린 촛불…, 순결의 상징인 촛불에 이런 모독이 없다. 양초 시장은 성수기인지 몰라도 촛불에는 치욕의 수난시대다. 연인들에게는 절절한 그리움의 숨결이요 시인과 구도자에게는 내밀한 성찰의 길잡이였던 촛불이 어쩌다가 시대착오적 세습독재를 추종하는 수구(守舊) 광신도들의 선동 노리개가 되고 말았는지…. 골방의 외로운 촛불 하나, 질박한 한 자루 촛불이 그리운 시절이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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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