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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여름의 문장

여름의 문장
- 김나영(1967~ )

공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곁에서 서성거리던 바람이 가끔씩 책장을 넘긴다.

길고 지루하던 산문(散文)의 여름날도 책장을 넘기듯

고요하게 익어가고

오구나무 가지 사이에 투명한 매미의 허물이 붙어 있다.

소리 하나로 여름을 휘어잡던 눈과 배와 뒷다리의 힘,

저 솜털의 미세한 촉수까지도 생생하게 붙들고 있다.

매미의 허물 속으로 입김을 불어넣어 주면

다시 한번 여름을 공명통처럼 부풀려놓을 것만 같다.

한 떼의 불량한 바람이 공원을 지나고

내 머리 위로 뚝 떨어지는

저 텅 빈 기호 하나,

정수리에서부터 등까지 북 내려 그은

예리한 저 상처.

왜 그런 날이 있지요. 잠이 안 오는 밤이거나 자다 깬 새벽, 책장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이 책 저 책 꺼내보며 어떤 상념에 빠질 때, 밀려드는 이 감정 저 감정이 뭔가 싶어 원두를 갈고 천천히 커피나 내릴 때…. 애써 토로하니 한 선배가 제 머리를 쥐어박더군요. 야, 궁상 떨지 말고 글이나 써. 마감 지난 청탁서 뒤로 감춘 채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 운운했던 저는 못내 속내를 들킨 부끄러움으로 빽빽한 책들 가운데 하나를 고르고 섰는데요, 매번 참 이 책 아니면 저 책인 거예요. 책, 책처럼 무서운 얼굴이 또 있을까요. 볼 때마다 새 사람인 척 안면을 바꾸는 고전들 얼마나 많던가요. 책, 책처럼 안쓰러운 얼굴이 또 있을까요. 보자마자 쉽게 돌아서는 변덕스러운 독자들 얼마나 부지기수던가요. 한 줄도 너무 길다고는 했다지만 의미심장한 한 문장을 건지기 위해 오늘도 밤을 새우는 작가들에게 그나저나 아침은 왜 그렇게 일찍 들이닥치나 몰라요. 
<김민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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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