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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사범 묵비권, 법정 반격 노린 수사방해 전략

“지난 5월 12일 회합에서 전쟁에 대비해 ‘물질적·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연한 게 맞습니까?” (국가정보원 수사관)

 “….” (이석기 의원)

 8일 오전 9시 국정원 경기지부 조사실. 황토색 미결수 수의를 입은 통합진보당 이석기(51·비례대표) 의원이 수원구치소에서 불려와 수사관들과 마주 앉았다. 지난 5일 내란음모·선동 혐의로 구속 수감된 뒤 사흘째 조사지만 이 의원은 이날도 모든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마치 진술 거부 투쟁을 벌이는 듯한 광경이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의 묵비권 행사는 처음이 아니다.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던 2002년에도 이 의원은 수사기관 추궁에 한 마디도 진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수사 과정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당시 이정희(44) 통진당 대표도 경찰과 검찰 소환조사에서 묵비로 일관했다. 이 대표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국정원 구속수사 기한(10일)이 끝나 지난 6일 수원지검에 송치된 홍순석(49)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RO(Revolution Organization) 핵심 조직원 3명도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석기 의원 등 RO조직원들이 기본적인 신상 외에는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하는 이유는 뭘까. 당사자들은 “국정원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없는 내란음모를 덮어씌우기 하고 있어 이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공안 사건 피의자들의 묵비권 행사는 2000년대 초부터 관례처럼 여겨질 정도가 됐다. 공안사범들이 수사기관에서 대부분 방어권으로서 묵비권을 행사하면서다.

 2008년 적발된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사건 때도 김승교(45) 상임공동대표 등 피의자들은 조사 과정 내내 묵비권을 행사했다. 2011년 ‘왕재산’ 사건 때 구속기소된 김덕용(50)씨 등 6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컴퓨터와 USB메모리 등에서 북한에 보낸 보고서와 지령문 등이 발견됐지만 이들은 법정에서도 ‘왜 그게 내 컴퓨터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공안당국은 이 같은 묵비권 행사를 일종의 ‘수사 방해 전략’으로 보고 있다.

 대공수사 전문가인 한 부장검사는 “1990년대 이후 북한에서 ‘법정투쟁지침’ 지령을 내려보냈다”며 “수사기관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법정에서는 위증, 증거물 조작 등의 전략을 쓰라는 게 핵심 내용”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묵비 전략이 반드시 법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검 공안부장 출신인 노환균(56) 변호사는 “증거가 확실한 경우 묵비권 행사는 적극적으로 변소하거나 뉘우치는 것에 비해 높은 형량을 받을 수 있어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김기환 기자

◆묵비권(默?權)=피고인이나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조사나 공판의 심문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수 있는 권리. 대한민국 헌법(12조 2항)에
보장돼 있다. 1641년 불리한 진술을 거부한 ‘수평파(Levellers)’의 당수 존 릴번에게 내려진 태형 선고를 영국 의회가 위법하다고 선언한 뒤, 영미법계에서 일반적인 권리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수정헌법 5조에 묵비권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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