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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분명 봤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이규연
논설위원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의 핵연료 누출사고.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와 함께 세계 3대 원전참사로 꼽힌다. 전기를 생산한 지 1년도 안 돼 냉각수 공급 펌프에 문제가 생긴다. 곧바로 긴급 냉각장치가 가동돼 과열을 막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운전요원이 잘 돌아가는 냉각장치를 정지시키면서 핵연료가 누출되고 만다. 순간적으로 계기판을 잘못 보고 엉뚱한 조작을 한 것이다.



 며칠 전 일어난 대구역 열차사고를 보며 스리마일 사고가 떠올랐다. KTX 열차 2대와 무궁화호 열차 1대가 부딪힌 대형사고였다. 마침 터진 이석기 사태에 가려졌지만 세계 철도사에 오를 다중(多重)추돌 사고였다. 아직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주 사고원인은 신호인식 착오였다. 무궁화호 열차에 타고 있던 기관사·여객전무가 동시에 정지신호인 빨간불을 파란불로 잘못 보고 출발했다가 KTX를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스리마일의 운전요원처럼 분명히 신호를 봤지만 이를 엉뚱하게 인식했다는 얘기다.



 이들 두고 “원시적인 인재(人災)” “있을 수 없는 사고”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21세기에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우리는 흔히 시스템이 거대화·첨단화할수록 사람의 역할은 줄어든다고 여긴다. 엔진이 나오면서 육체노동자는 급감했고 인터넷 혁명 역시 단순 지식노동자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사회적 시각으로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열차가 시속 300㎞를 돌파하고 하늘에 궁전급 항공기가 등장할수록 대형사고의 위험성은 더 커진다. 이와 함께 기계와 컴퓨터에 의존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역할은 더 커진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공지능이 제 아무리 똑똑해도 종합적·최종적 판단의 길목에는 인간이 배치된다.



 문제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뇌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한번에 신호를 처리할 수 있는 작업기억 용량이 매우 적다. 전화번호만 보자. 6, 7 자리 이상을 한번에 기억하지 못한다. 주의력에도 한계가 있다. 하나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결함 때문에 우리는 어이없는 실수와 착각을 한다. 직장 내 갈등과 가정 불화, 잘못된 작업장 구조와 신호체계, 스트레스와 피로 등이 에러를 부채질한다.



 최근의 국내외 사례는 인간 에러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월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달리던 KTX가 서야 할 영등포역을 그대로 통과했다가 수㎞를 역주행해 되돌아왔다. 숙련된 기관사였는데도 깜빡 다른 생각을 하다가 정차 지점을 놓친 것이다. 유럽 최악의 철도사고로 꼽히는 지난 7월 스페인 열차사고는 또 어떤가. 속도를 줄여야 할 곡선구간에서 시속 180㎞ 이상으로 마구 달려 기차를 탈선시켰다. 최근 5년 새 발생한 국내 철도사고의 60%는 바로 사람의 착오·오인·망각에 의해 일어났다.



 대구역 사고 이후 코레일은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더 이상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무기강을 잡겠다고도 했다. 틀린 조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좀 더 촘촘한 대책을 세우는 편이 현명하다. 주의력·인지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을 찾아내 맞춤 처방을 하는 것이다. 또 비상경영보다는 평소의 교육훈련을 강화해 에러 확률을 줄여줘야 한다. 근무기강 확립도 당장 필요하겠지만 인간심리와 작업환경을 분석해야 한다.



 거대 시스템이 깔릴수록 작은 실수가 재난을 부를 수 있다. 인공지능과 초음속 세상에서 사람은 재난의 종결자이자 결정적 유발자다. 들어도 들리지 않고 봐도 보이지 않는 위험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것이 인간을 좀 더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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