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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경계선상의 대북정책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박근혜정부 6개월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흥미롭다. 한마디로 ‘인사로 까먹고 북한으로 만회했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이 엄청난 여론의 반전을 가져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대북정책의 전망은 암울했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도발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출범도 하기 전에 설 땅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은 대화할 공통의 언어마저 상실한 듯했다. 이런 남북이 대결과 대화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 북한이 어느 정도 실질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게임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



 북한이 어떻게 대화모드로 돌아섰을까? 박 대통령의 ‘확고한 원칙’이 통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원칙과 군사적 응징을 내세운 박 대통령의 하드파워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하드파워의 모습만은 아니다. 소프트파워의 이미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북한전문가인 고려대 유호열 교수의 말이다. ‘원칙에 대화의 시그널을 교묘하게 결합시키는’ 박근혜 특유의 소프트파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실제 박근혜 하면 떠오르는 것은 원칙과 교양이 결합된 세련미의 이미지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잘 배합된 스마트파워의 모습이다. 모두 궁금해한다. 타고난 성품 탓일까, 아니면 제왕교육의 산물일까 하고. 그동안 박 대통령을 관찰해온 인사는 말한다. 이보다는 박 대통령의 정치역정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고. 지난 정부 시절 반(半)여당이며 반(半)야당이기도 했던 박근혜 의원. 마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과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힘은 없지만 친이(親李·친이명박) 세력과 야당 사이에서 원칙과 소프트파워를 엮어가며 자신의 정치공간을 넓혀가지 않을 수 없었던 정치역정이 그런 모습을 만들어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소프트파워 외교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자주적 공간을 보다 넓히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교·안보 하면 으레 ‘한·미 동맹 강화’였다. 누구도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은 증가하고 미국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의 전략환경이 이제 ‘한·미 동맹 안보체제’에서 ‘다자안보체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동맹 강화론’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는 멀티파트너십의 현실인 것이다. 이런 때에 한반도 냉전의 퍼즐을 푸는 주역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소프트파워의 역량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막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는 남북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통치만 있고 정치는 없다’는 박근혜 내치(內治)의 하드파워가 남북관계로 전이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외교관 출신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소프트파워에 의한 정치 선진화의 포석이 남북관계에도 전이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적지 않다.



 물론 북한과의 대화는 우여곡절의 연속일 것이다. 레이건의 말을 빌리면 ‘대화는 하되, 아직 믿지는 못하고, 검증을 해야 할’ 북한이기 때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지적처럼 지금 ‘김정은 기관설’이 유포되고 있는 북한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권위는 있으나 권력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누구를 상대로 대화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소프트파워적 접근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소 봉쇄정책을 고안한 조지 케넌이 말했다. 군비경쟁과 같은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에 집중했더라면 소련은 보다 일찍 변했을 거라고. 곱씹어 볼 말이다. 지나친 하드파워로 투서기기(投鼠忌器·쥐를 잡으려다 그릇을 깨는)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비전이나 정책은 고안한 사람보다 실행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론은 ‘까먹은’ 것을 만회할 수 있는 인사를 기대하고 있다. 남의 나라 얘기지만 눈여겨볼 사례가 있다. 전후 미국적 세계질서를 설계한 주역들인 매클로이 세계은행 총재와 로비트 국방장관. 자신들이 민주당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상기시키자 대통령은 능청거리며 말했다. “제기랄, 나는 언제나 그걸 잊어버리고 있단 말이야”라고.



 무엇이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원칙을 넘어선 초당파적 실용과 중용, 그리고 레알 폴리티크였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경계선상에 있는 우리 국정에 주는 메시지가 분명해 보인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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