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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정부의 밀어주기만 믿다가 … 추석에 우는 온누리상품권

올해 온누리상품권 판매 예상 금액은 5000억원이다. 하지만 대기업과 공공기관 구매 비율이 70%에 이른다. 그림은 온누리상품권 1만원권을 각색한 것이다.
대기업 과장 A씨(40)는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회사에서 온누리상품권을 받았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 전통시장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이다. A씨와 그의 가족은 집 근처 대형마트를 즐겨 찾는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은 선물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전통시장을 둘러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주차장이 마땅찮아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야 했다. 상품권으로 구입한 약 10만원어치의 물건을 든 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A씨는 “올 추석에는 회사가 차라리 예전처럼 주유상품권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요즘 사회에서 경제민주화 하라는 목소리가 크니까 회사가 눈치를 보느라 온누리상품권을 사서 나눠주는 것 같다”며 “결국 반기업 정서에 따른 희생을 회사가 아닌 월급쟁이 직원들이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A씨 회사는 복리후생비 지출분으로 3년 전부터 온누리상품권을 구입해 나눠주고 있다.



전통시장 활성화 취지 5년간 7777억원어치 팔렸지만 …
"억지로 장보기" 강제 구매 논란
대기업, 판매액 절반 책임져
공공기관엔 경영평가 반영
시장 매출은 당장 늘었지만
기업엔 부담, 개인은 무관심

 2009년 7월 발행을 시작한 온누리상품권이 올해 5번째 추석을 맞는다. 추석연휴는 온누리상품권 연간 전체 판매액의 50%가 팔리는 대목이다. 정부는 올해도 추석연휴를 앞두고 2500억원어치의 온누리상품권이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이 사실상 강제 구매를 한다는 논란이 생기면서, A씨와 같이 “억지로 전통시장에서 장보기를 해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온누리상품권의 첫해 판매액은 104억6000만원이었다. 이후 판매액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엔 4257억7000만원으로 최고액을 기록했다. 올해는 7월까지 1196억5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연말까지 판매 목표치는 5000억원이다. 정부는 누적 판매액(8536억4000만원) 대비 상품권 사용액이 91.1%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동안 전국 전통시장에 7777억5000만원이 풀린 셈이다.



 그래서 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서울 망원동 월드컵시장 상인 홍지광(48)씨는 “온누리상품권 도입 초기엔 약간의 혼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덕분에 매출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진병호 서울상인연합회장도 “요즘처럼 명절을 앞둔 시기엔 온누리상품권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이 크게 늘어난다”며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자식한테서 선물받은 온누리상품권을 들고 시장에 나타나는 어르신들이 많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성과에는 역대 총판매액의 49.8%를 구입한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기여가 크다. 대기업은 지금까지 온누리상품권 3333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전체 판매액의 39.2%다. 대기업은 지난해엔 2063억원어치를 사들여 지난해 판매액의 48.4%를 차지했다. 대기업이 이처럼 많은 양의 온누리상품권을 사들인 데는 경제민주화·상생·동반성장 등 사회분위기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산다고 얘기하는지 몰라도 실제론 억지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우리도 직원들이 백화점·주유상품권을 더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굳이 온누리상품권을 사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요즘같이 경제민주화라는 명분으로 대기업을 옥죄면 무조건 정의로워지는 분위기에서 우리가 정부 시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또 어떤 규제를 추가로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통업계에서 경쟁력을 잃은 전통시장을 지원하기보다 차라리 재활 불가능 상태에 있는 극빈층을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면 부당하다는 느낌을 덜 받을 것 같다”고 했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온누리상품권 구입 비중도 10.6%에 이른다. 2009년부터 905억7000만원어치를 구입한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온누리상품권 구입 실적을 0.3% 반영해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매년 말 각 공공기관이 재무 사정에 따른 온누리상품권 구입 목표치를 제시하면, 다음해 정부가 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해 해당 부문에 대한 점수를 주는 것이다. 공공기관들은 구입한 온누리상품권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거나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취지의 장점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는 각 부처마다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복지비의 10%를 온누리상품권으로 줘야 한다. 안전행정부 지침으로 강제돼 있는 사안이다. 이 같은 규정의 영향으로 정부의 지난해 온누리상품권 구입액은 147억7000만원에 이른다. 올해도 7월까지 119억1000만원어치를 사들였다. 총 정부 구입액은 422억1000만원으로 전체의 4.9%를 차지한다.



 정부·공공기관·기업이 아닌 일반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사는 비중은 30.6%다. 정부도 대기업·공공기관에 크게 의존하는 온누리상품권 판매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기업이 상생 노력 차원에서 온누리상품권 사업을 많이 도와준 게 사실”이라며 “일반 소비자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구입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정부의 숙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삼성그룹이 올 추석에는 온누리상품권 구입 규모를 지난해보다 대폭 줄인다는 소문이 돌면서 판매를 독려하고 있는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삼성은 지난해 추석 때 내수 활성화와 전통시장과의 상생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온누리상품권 약 1000억원어치를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추석에는 비정규직 직원에게만 300억원어치의 상품권만 지급한다는 것이다. 삼성이 이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정부는 올해 판매 목표치의 14%를 채우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1일부터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상품권 할인을 시작했다. 월 30만원 한도까지 온누리상품권 구입액의 3%를 깎아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전통시장의 최대 취약점인 주차공간 부족 등 기반시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온누리상품권만으로는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경남 마산어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상인들은 “주차장 증설과 현대화 시설을 확충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매년 국비를 2000억원씩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에 지원하고 있다”며 “정이 넘치는 전통시장만의 서민적인 장점을 살린다면 경쟁력 있는 장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 온누리상품권

전통시장 수요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적으로 2009년 7월 발행됐다. 1만원권과 5000원권 두 종류가 있다. 전국 가맹시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5만·10만원짜리 상품권은 종이가 아닌 카드로 발급된다. 부족한 잔액을 충전해 쓸 수 있는 멤버십 카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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