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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성직자 특권을 내려놓을 때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먼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성직자 세금 문제에 대한 현재의 논의가 교회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외부의 강요에 의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외부로부터의 요구에는 성직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종교인들은 세금을 내지 않느냐?” “종교인들이 내야 할 세금을 우리가 대신 내고 있는 것 아니냐?” “종교인들이 세금을 면제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성직자들은 오랫동안 사회에서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성직자들의 선한 영향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었으며, 가난에 기초한 성직자들의 삶을 돈의 가치로 평가한다는 게 오히려 불경스럽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직자에 대한 평가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성직자들의 선한 영향력이 줄어든 건 물론이고 그들의 많고 적은 개인적 재산 형성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성직자와 관련한 재정 문제는 교회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직자 과세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니고 신학적인 문제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교회의 본질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고 나서 가는 천당도 아니고, 이 세상과 별도로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 빛과 소금처럼 세상을 새롭게 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영역을 새롭게 하십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포함될 것입니다. 특별히 경제가 포함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성직자 세금 문제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교회는 당연히 재정적인 면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의로움을 드러내야 하고 평화와 기쁨을 구현해야 합니다.

성직자의 사명은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명자가 되도록 돕고 섬기는 일입니다. 자신이 본이 되면서 성도들에게 ‘의와 평화와 기쁨’(롬 14:17)의 정신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게 성직자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소망은 자체의 성장에 있지 않고 세상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성장하더라도 지역 사회로부터 사랑 받지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성직자의 세금 납부는 교회 공동체가 결코 특혜의 공동체나 세상과 분리된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과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신앙고백을 확증하는 한 방편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세금을 내는 게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어떻게 자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모든 특권을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과 함께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결코 가이사의 권세에 굴복하는 게 아니고, 도리어 세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길입니다.

성직자들의 세금 납부는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르게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는 거룩한 동행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드린 헌금이 투명하고 올바른 절차를 거쳐 사용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본질은 상처를 입게 되고 세상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지만, 그 사실이 이 땅에서의 책임을 면제시키거나 소홀하게 만드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성직자가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는 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박원호 장신대 교수와 미국 디트로이트 한인 연합장로교회 담임목사 등을 지냈다. 현재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한 주님의 교회 담임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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