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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사 교과서 논쟁, 역사 인식 발전의 계기 돼야

지난달 30일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 심의를 최종 통과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 중심으로 기술하고 북핵 문제를 상세히 소개하고 북한을 세계 최악의 인권 위반국이라고 적시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 좌파 진영이 “안중근·김구를 테러리스트라고 썼다”고 앞질러 비난했지만 그것이 근거 없는 주장이었음이 드러났다.

한국사 교과서는 그동안 진보·보수 이념의 대리전이 펼쳐지는 장(場)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 기술 문제로 불붙은 논쟁은 쉽사리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현대사를 놓고 진보 진영은 ‘역사의 정치화’를 꾀해 온 게 사실이다. 교과서 문제는 아니지만 벌써 진보 진영 일각에선 한국사 수능 필수화 방침과 관련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관(史觀)을 강요하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교과서 논쟁의 핵심은 한국 현대사의 주체와 목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있다.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는 민족을 주체로, 통일을 목표로 설정한다. 우편향 교과서는 산업화·민주화를 이뤄낸 국민을 주체로, 선진화를 주 목표로 삼는다. 전자에 분단은 원죄이며 대한민국 탄생은 비극이다. 반면에 후자에 대한민국의 성공은 후세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다. 양측의 시각 차이는 이런 식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사실 역사 다툼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1994~96년 역사 논쟁의 몸살을 앓았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새 미국사 교과서 제작 지침에 맞춰 91년 국가평의회가 만들어졌다. 28명의 평의원엔 8개 학회 회장, 저명 교수, 역사 교육 관련자들이 임명됐다. 2년 넘게 6000여 명이 열띤 논의를 벌이며 단어 하나하나를 검토했다. 그런데도 결국 격렬한 논쟁의 제물이 됐다. 새 표준 교과서가 ‘남북전쟁 전에 노예 탈주를 도운 흑인 이름을 여섯 번 언급하면서도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을 어렴풋하게 기술했다’는 시비에 걸렸기 때문이다. 미국판 보수·진보의 대립이었다.

한국에서도 좌우 진영은 늘 역사전쟁을 벌일 준비가 돼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한국역사연구회에선 벌써 보수 성향 교과서를 ‘역사 퇴행’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힘으로 교과서 유통을 막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그런 관점에서 21세기 한국사 교과서의 화두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느냐’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이데올로기보다 실사구시 관점에서 역사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진보와 보수, 중도가 공개적으로 역사 논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역사 인식의 지평은 그런 정·반·합 과정에서 더욱 넓어질 수 있다. 남북 분단도 억울한데 역사의 좌우 분단이 계속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사 교과서 논쟁이 역사 인식 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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