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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웃고 살았는데 … 가족을 다 잃은 셈”

지난해 7월 수원시 서둔동의 편의점 앞에서 아들을 잃은 김모씨가 밖을 보고 있다. 사고 이후 혼자 살고 있는 김씨는 “넉넉하진 않았어도 가족들이 모여 지냈던 그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에 사는 김모(71·여)씨는 최근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 지난해 7월 편의점 앞에서 자신의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김모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지난 7월 징역 장기 4년, 단기 3년을 선고한 이후부터다. 법원은 “범죄 전력이 없는 만 17세라는 점과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고 하지만 김씨는 재판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 그런데 길어봐야 4년이라니. 하늘이 어쩌면 이리 무심할 수가 있나….”

침 뱉는 고교생 타이르다 참변 … 수원시 서둔동 편의점 사건, 그후 1년

 김씨가 기억하는 지난해 7월 20일은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다. “나는 일이 있어서 그날 집에 없었어. 아들은 세차장 동료들과 회식하고 온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날따라 막내 손자(6)가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를 썼나봐. 내가 있었으면 그냥 다음날 사주라고 하고 못 나가게 했을 텐데, 너무 한스러워.”

 자정이 넘은 시간, 아들 김모(39)씨는 기어코 막내 손자의 손을 잡고 집 근처 편의점을 향했다. 김씨는 “우리 아들은 아이라면 사족을 못 썼어. 물고 빨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지”라고 말했다. 사건은 편의점 앞에서 터졌다. 고등학생 몇 명이 바닥에 마구 침을 뱉었다. 김씨의 아들은 학생들을 향해 “침 함부로 뱉지 말라”고 훈계했다. 그게 시비가 돼 싸움이 벌어졌고 막내 손자 앞에서 아들은 무방비로 폭행당했다. 넘어지며 아스팔트 바닥에 뒤통수를 부딪쳤다. 혼수 상태로 응급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며 김씨는 되뇌었다. ‘딴 사람이 침을 뱉고 욕을 하든 무슨 상관이냐. 이대로 떠나면 절대 용서 안 한다.’ 하지만 아들은 일주일 뒤 뇌출혈로 세상을 등졌다.

 지난 8월 23일 수원지법. 아들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김씨는 가슴이 떨려 법원에 가지 못했다. 대신 딸을 보냈다. 딸이 전해준 선고 결과는 믿기 힘들었다. “피고인을 징역 장기 4년, 단기 3년에 처한다” 짧으면 3년, 길어야 4년. ‘내 아들은 죽었는데. 내 아들은 죽었는데…’ 노모는 속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들 기일 때 만난 손자 모습이 눈에 아른
사건 이후 김씨 가족의 살림살이는 궁핍 그 자체였다. 장례 비용이 부담스러워 사망 석 달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렀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유족구조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들었지만 포기했다. 절차가 복잡하고 요건도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3개월 이상 걸린다고 했다. 범죄피해구조금은 ▶가해자가 친족 관계이거나 ▶범죄피해자가 범죄 행위를 방조하거나 범죄 유발 행위를 한 경우 ▶보복으로 가해자 등의 생명을 해치거나 신체 침해 행위를 한 경우 지급되지 않는다. 또 구조금을 받은 후 피의자로부터 합의금을 받을 경우 다시 국가가 환수한다고 해 결국 합의를 기다리기로 했다. 잘될 줄 알았던 합의는 지지부진했다. 수입이 끊기자 생활은 힘들어졌다. 요금을 내지 못해 가스도 끊겼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김씨 가족의 사연이 외부에 알려졌다. 며느리 계좌로 후원금이 들어왔다.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됐다. 어느 날 아들의 부인 유모(33)씨가 김씨에게 말했다. “네 식구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원해 준다고 하니 세 아들과 함께 나가 살겠다.” 야속했지만 유씨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같이 지내면 아들의 빈자리만 더 크게 느껴지겠지’. 그렇게 지난해 12월, 유씨는 떠났다. 후원금의 일부를 남겼다. ‘아이 세 명을 기르니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이사 간 이후 유씨와의 연락은 자연히 뜸해졌다. 같은 수원이지만 이사 간 유씨의 집은 찾아가기에 심적으로 너무 먼 곳이었다. 결국 지난 7월 아들의 기일에 맞춰 유씨가 손자를 데리고 와 이사 후 처음으로 손자를 만났다고 한다. 이후 “뿌잉 뿌잉” 손짓하며 엉덩이 흔들던 막내 손자의 모습이 더욱 아른거렸다. 적적함을 달래려 키우던 화분을 보다가도 죽은 아들 생각에 담배를 들었다. ‘아들이 살아있을 때는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살맛 났었는데…’. TV 위에 걸어둔 가족 사진을 하염없이 지켜보기도 했다. 노모는 사건 이후 잃은 건 아들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힘들어도 웃으며 살았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전혀 없어요. 가족 전체를 잃은 거예요. 인생살이가 이렇게 덧없던가요.”

 수원시 서둔동 편의점 사건 이후 1년. 취재진이 만나본 김씨 가족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요건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유족구조금’ 대신 민간 후원금을 받았지만 화목했던 가정을 돌보기엔 한계가 있었다. 김씨는 숨진 아들이 살던 집에서 홀로 지냈다. 취재진이 처음 본 김씨의 모습도 누워서 혼자 TV를 보는 모습이었다. 부인 유씨는 취재진의 수소문에도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이사를 가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제는 조용히 살고 싶다. 절대 새집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복지 아닌 변상 개념으로 범죄피해 돌봐야”
김씨 가족처럼 범죄를 당한 후 기존의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7년 11만2000여 건이었던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성폭력·상해) 발생 건수는 2011년 12만 9000여 건으로 증가했다. 범죄 피해자 수 또한 이에 비례해 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민간단체인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이상욱 회장은 “범죄 순간부터 조력인이 붙어 지원 방안을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한다”며 “범죄피해자가 늘고 있는데도 경찰에서 검찰 단계로 가야만 법무부 관할 범죄피해자지원센터로부터 안내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범죄피해자들에 대해 구조금과 치료비, 임시주거, 긴급 생계비 등의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미비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광민 교수는 “범죄 피해자지원센터를 58개로 늘리는 등 외형상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예산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실시된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의해 현재 벌금 수납금의 5%가 지원 예산으로 편성되고 있다. 한 해 600억~700억원 규모다. 하지만 이 중 약 70%는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보호 지원금으로 쓰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석구 박사는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성폭력 범죄에 비해 일반 범죄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며 “추가 예산 확보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예산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성폭력범죄 피해자 지원금과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피해자 지원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릉원주대 오경식(법학) 교수는 “범죄 방지 의무는 국가에 있기 때문에 범죄로 인해 피해를 봤을 경우 국가가 변상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런데 현재는 일종의 복지 개념으로 보고 있어 변상의 개념이 아니다”고 말했다. 법무부 인권구조과 이유선 검사는 “일반 강력범죄 피해자 지원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이라며 “이들에 대한 직접 지원책을 늘리고 예산을 확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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