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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속' 채워주고 '통속' 속시원한 두남자의'시집살이'

[머니투데이 신혜선정보미디어과학부장 saint@]


['밥상' 오인태시인 vs '삼류' 류근시인 페북서 '남인태-북류근' 신드롬 형성]

'공동체 삶의 복원'을 노래하는 오인태 시인(오른쪽)과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허기로 배고픔과 외로움'에 우는 류근 시인.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최근 페이스북(페북)에서 회자되는 용어 중 하나가 '남인태 북류근'이다.

남쪽 시인은 '정통 민족문학시인의 계보를 잇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페북에선 '밥상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페북과 본지에 연재하고 있는 '詩가 있는 밥상'의 주인공 오인태 시인이다.

북쪽 시인은 2010년 '상처적 체질'이란 시집을 내며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1992년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18년간 침묵했다. 페북에서 '조낸 시바'를 외치며 스스로 '삼류통속연애'를 노래하는 싸구려 시인을 자처한다.

최근 출간한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라는 산문집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류근 신드롬'이 형성됐다.

이 두 사람에 대해 한 페북 이용자(페친)는 '양반시인 vs 시바시인'이라고 칭한다(류근 시인은 자신이 스스로 시바시인이라고 칭하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남들이 양반에 빗대 시바를 말하니 진짜 자기 인생이 시바인생이 된 거 같아 찜찜하다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한다). 하지만 류 시인은 곧바로 '표리동동(表裏同同) 시인-오인태 vs 표리부동(表裏不同) 시인-류근'이라고 한술 더 뜬다.

얼핏 보면 너무도 다른 두 시인이 지난 8월 24일 서울 통인동 '푸른역사(출판사)' 한옥 마당에서 만났다.

◇ '공동체 삶의 복원'을 꿈꾸는 시인 vs
'삼류통속연애'에 빠져 스스로 '삼류'라 지칭하는 시인


'공동체 삶의 복원'을 노래하는 오 시인과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허기로 배고픔과 외로움'에 우는 류 시인의 언어는 얼마나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틀렸다. 내심 두 시인의 뼈있는 설전을 기대한 기획자의 생각은 두 시간여 대화 속에(그리고 이후 뒤풀이까지 포함해) 산산조각 났다. 이들은 옛 만담꾼처럼 주거니 받거니 시와 삶을 얘기하며 공통분모를 형성해 나갔다.

오 시인은 "류근과 나는 누가 하나 죽어야하는 경쟁관계가 아닌, 경제학 용어로는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라고 딱 잘라 말했다. 보완관계의 시인이라.

두 시인이 다르게 보이는 이미지에는 '시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인식이 있다. 오 시인은 정치적 발언을 소신있게 해온 전력 때문에 '현실참여 시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에 비해 류 시인은 '삼류통속연애'에 빠져 사랑과 상처, 가난과 외로움을 얘기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이미지다.

▲오인태 시인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시의 대상이 곧 세계다)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고 존재이유"라고 말한다.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이 시대를 사는 시인은 어디까지 사회적 발언을 하고 참여해야하는가. 오 시인은 "시인이 사회적 문제에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른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시의 대상이 곧 세계다)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고 존재이유다.

더불어 오 시인은 '반성문'을 쓴다. "얼마 전 페북에서 '한줄 성명'이 있었다. 그일을 주도한 분들은 소위 '문학주의' 경향이 짙은 시인들이었다. 과거 현실 참여했던(실천문학) 시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감회도 새롭고. 젊은 시인들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무뎌진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류 시인 역시 동감한다. "사회적 발언을 혹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발언으로만 국한해 해석하지는 않나. 세상사는 일이 사회적 문제가 아닌게 없는데 편협한 인식이다." '싸구려 사랑'을 노래한다지만 류 시인 역시 핵문제부터 북한, 노동, 여성, 가난한 이웃, 일베. 사회 정치 전반에 걸친 여러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견해를 밝힌다(실제 류 시인 페북 담벼락에 즐비하다).

하지만 페북에선 정치발언에 피곤해하는 독자들도 상당수다. 류 시인은 "불특정 다수가 페북에서 글을 보는데 정치얘기를 한마디 하면 페친이 우루루 사라지고, 아예 발언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쇄도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오 시인은 "세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류 시인이나 나나 똑같다"고 말한다. 다만, 오 시인도 직접적인 정치적 발언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살핌이 있다. 오 시인이 자타 '정치논객 시인'에서 밥상 차리는 시인으로 '우회'한 이유도 이런 현실이 작용했다.

◇"사회발언, 정치발언이 다가 아냐"···시인의 사회참여는 시대적 소명

시인의 삶과 시의 불일치성에 대한 문제는 어떨까. 18년만에 세상에 나온 류 시인은 "당신은 진짜 가난하고 외로운가. 시와 삶이 불일치한다면 시인의 시는 거짓이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류 시인은 서울 모처 문인들이 기거하는 곳에서 짧지 않은 기간 끼니와 연탄불을 걱정하면서 살았다. "정말 외롭다. 쓸쓸하다. 가난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구. 그건 장애가 있는 거다. 계급이 바뀌어도 영혼의 코드가 바뀌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너는 부자니까 부자 얘기를 써라? 민감하게 생각하는 나의 더듬이는 가난과 외로움에 경도돼 있다."

류 시인이 말하는 '영혼의 빈곤'에 대해 이번엔 오 시인이 공감했다. "소설가는 작중인물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주인공을 가공된 인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에서는 시적 자아와 시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지고 보면 시도 허구다. 문학적 진실은 다른 문제다."

오 시인도 한때는 삶과 시의 일치를 생각했다. 오 시인은 장학사다. 유림의 자손이다. 스스로 '규범적 특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마흔이 넘어 생각을 수정했다. "창작하는 사람은 상투성을 경계해야한다. 거기 빠지면, 규범화되면 끝난다. 시인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해야한다. 영혼의 허기, 그것을 갖고 있어야 창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일탈의 모습, 일탈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이해한다. 서면 굳어버리는 레미콘처럼, 시인도 멈추면 끝이다."

오 시인이 류 시인에 대해 "이해의 눈이 필요하다. (류근을) 흔들면 안된다"라고 말하는 실질적 근거는 페북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독자들의 열광이다.

규범적 얘기를 하면 누가 듣겠는가. 류 시인의 말이 규범적이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이 반응한다는 게 오 시인의 해석이다. 스스로 삼류를 선언하며 망가짐을 주저하지 않는 시인, 나도 욕설을 하고 싶은데 대신 뱉어주는데 대한 대리만족. 더군다나 독자들은 시 자체에도 열광하지만 시인, 자연인의 삶에 대해 더욱 반응하고 있다. 페북에서 시인의 속살을 봤기 때문이다.

▲ 류 시인은 "오 시인의 시에는 공격성, 적의가 없다. 너무나 순정한 시를 쓰고 있다. 선량하다.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이거다. 서정적이고 따뜻한 시가 위로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사진 홍봉진기자
이번엔 오 시인의 '밥상 인문학'에 대해 류 시인이 입을 열었다. "오 시인의 시에는 공격성, 적의가 없다. 너무나 순정한 시를 쓰고 있다. 선량하다.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이거다. 서정적이고 따뜻한 시가 위로되는 세상. '반 홀아비(오 시인은 가족과 떨어져 관사생활을 하고 있다)' 신세임에도 꼬박꼬박 정갈한 밥상을 차리고, 시와 에세이를 곁들여 대중들과 공유하는 자세. 대단한 가치다."

오 시인은 현대 사회, 한국사회 위기의 본질을 일상성의 파괴로 본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깨졌다. 믿었던 가치관도 흔들린다. 시가 있는 (저녁)밥상을 차리는 이유는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울타리로 모여들 때, 그때만이라도 우리의 일상성,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런 면에서 오 시인은 최근 딜레마에 빠졌다. 밥상을 페북에 연재하는 일은 편한 일상의 공개였는데, 본지에 '시가 있는 밥상' 연재를 하면서 밥상을 제대로 차려야한다는, 오히려 일상성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오 시인은 "페북의 밥상은 즉시성이었는데 언론 연재는 또 다른 형식을 갖추어야하니 내 일상성을 유보하면서 다소 훼손하는 상황이 됐다"며 "(시가 있는 밥상)이 사회성을 갖는 순간 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공적 책임이 부여되면서 예상치 못한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라고 말했다.)

◇ 오 시인 "영혼의 허기, 상투성에 빠지지 않는 류 시인 이해"
류 시인 "정갈한 밥상과 시고 세상을 위로하는 오 시인의 가치 존중"


밥상에 '끼워넣은' 시와 스스로의 상처를 '까발리는' 시. 이쯤 되면 서로 방법이 다를 뿐 이들의 언어는 사람에 대한 위로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류 시인은 "모든 예술가는 자기 위안이 먼저겠지만 세계 인간에 대한 위로와 위안을 궁극적 목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시인은 18년간 침묵했다. 그리고 전작시집과 산문집을 내놨다. 오 시인은 다섯 권의 시집을 내고 (시로서는) 침묵하고(?) 있다. 오 시인의 시집들은 모두 절판됐다. 시를 계속 쓰는가, 쓸 것인가, 이후 계획에 대해 다소 거칠게 질문을 던졌다.

오 시인은 동시의 세계를 말한다. 이미 다섯 번째 시집을 낸 후 동시 평론을 쓰고 있기도 하다. 동시도 시지만, 시와 달리 동시는 좀 더 특수한 걸 요구한다고 본다. 오 시인은 "어린이들에게 시를 읽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아이들이 시인"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이어 동화도 쓸 예정이다.

류 시인은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아직도 문인 세계로 들어간 거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18년전부터 지금까지, 시집을 내든 안내든 류 시인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일 밖에 없다. "시는 살아지는 거다. 쓴다 안 쓴다가 아니다."

시에서 은퇴는 없다. 죽어도 쓴다. 다만,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시를 쓰지 못한다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이미 그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동료 시인을 향한 두 시인의 공통된 구호. "시인이라면 어깨에 힘을 주고, 남의 텍스트를 빌리는 짓은 하지 말자. 독자는 없고 평론가에만 잘 보이는 시도 쓰지 말자. 물러설 때도 알자."

두 시인에게 페북은 결코 얕볼 공간이 아니다. 오 시인의 시 밥상에 대한 호응이나 류 시인의 산문집 출간 이후 자발적으로 형성된 마케팅에 두 시인은 물론 출판계조차 화들짝 놀랐다.

오 시인은 '온라인 문학'에 일찍 눈을 떴다. 개인 홈페이지에서 카페, 블로그까지 '온라인 문학'의 색다른 맛을 일찌감치 경험한 오 시인이 페북에 입문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하지만 오 시인도 시작은 정치적 동질성을 가진 그룹 활동 수준이었다. 지금처럼 대중적 친구를 맺고 활동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독자직거래 삼류트로트연애 시인'을 표방했던 류 시인도 페북은 그저 벗들과 노는 놀이터였다. 선후배 문인들과 일상을 얘기하고 '조낸 시바'를 외치던 공간이었다. 2011년 10월 페북을 처음 시작한 류 시인 글에 대한 '좋아요' 숫자가 서너 개 그치던 시절이 꽤 길었다.

지금 페북에서 두 시인이 올리는 글에는 좋아요가 평균 600∼700개씩 붙는다. 1000개를 넘을 때도 있다.

▲오 시인이 류 시인을 대변했다. 오 시인은 "창작하는 사람은 상투성을 경계해야한다. 거기 빠지면, 규범화되면 끝난다. 시인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해야한다. 영혼의 허기, 그것을 갖고 있어야 창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일탈의 모습, 일탈하고자 하는 모습(류근 시인)들을 이해한다."/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그렇지만 두 시인 모두 '페북 피로감'이 없는 건 아니다. 하나는 베끼기. 두 시인 모두 미발표 시를 페북에 공개하지 않는다. 류 시인의 경우 어떤 '시인'이 자신의 시를 조합해 시집을 출간한 상황을 겪었다.

◇"페북 독자 반응에 놀라움, '좋아요' 너무 의식하면 시인으로 할 말 못해"

수백 개의 댓글에 일일이 답하지 않아 건방지다는 말을 듣는 것도 곤혹스럽다. 두 시인 모두 "그렇게 매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을 못한다"고 애로사항을 말했다.

시인으로서는 시가 '24시간 시'로 취급받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다. 담벼락서 '흘러가는 시'를 생각하면 페북은 새로운 장르이기 전에 '소모의 매체'다. 시인의 담벼락을 일일이 찾아들어가 읽어주는 독자들이 얼마나 되느냐, 이에 대한 고민도 있는 셈이다.

오 시인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페북과 페북의 독자들을 의식하면서 '좋아요' 숫자에 연연하기 시작하면 눈치를 보게 되는 것. "적절히 안배할 수밖에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페북 활용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시인들이 말하는 팁. 좋아요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자기 얘기만 일방적으로 하면 누가 듣겠냐는 기본적 인식이 필요하다. '온라인 문학'의 대가답게 오 시인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콘텐츠 경쟁력과 친구관리, 그리고 친구가 아닌 사람의 호응도 끌어낼 수 있는 '이슈 파이팅'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인들이 독자들을 직접 만나고, 독자가 나서 마케팅을 지원하는 새로운 전형이 창출된 페북. 시도 팔리지만 시인들의 삶도 함께 팔리는 페북. 21세기 대한민국 페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현상이지만 그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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