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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 출신 검사 … "3연속 학사경고 받고 딱 끊었죠"

게이머와 검사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가며 지식재산권과 정보기술(IT) 전담 수사를 하고 있는 조도준 서울서부지검 검사. 그는 “컴퓨터 게임은 인간세계를 네트워크상에 옮겨놓은 거나 마찬가지”라며 “성취감 같은 순기능도 많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클랜(clan)원들한테 얘기 다 들었다.”

검찰 정보지식인대회 우수상 조도준 검사
고교 자퇴, 게임에 미쳐 PC방서 살아
국내대회 우승, 프로팀 제의도 받아
군 시절 동료 병사 자살 사건에 충격
'룰' 중요성 깨달아 사시로 방향 틀어



 지난해 10월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에서 조사를 받던 민모(38)씨는 화들짝 놀랐다. 검사 입에서 ‘클랜(인터넷 게임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단어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 민씨는 윤모(34)씨가 소장하고 있던 로한 게임 아이템 여러 개를 제3자에게 139만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민씨는 이 아이템에 대해 “윤씨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 양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수사한 서대문경찰서도 무혐의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게임 아이디 앞에 붙어 있던 특수 문양을 본 조도준(33·사법연수원 41기) 검사는 이들이 같은 클랜 소속임을 한눈에 간파했다. 클랜원들은 “민씨가 윤씨의 아이디로 이따금씩 게임을 대신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윤씨가 게임 아이템을 양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검사의 추궁에 민씨는 범행을 자백했고 불구속 기소됐다. 게이머와 검사, 쉽사리 매칭되지 않는 두 개의 타이틀을 갖고 두 개의 세계를 오가고 있는 조 검사를 지난 1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건물에서 인터뷰했다.



 -한때 잘나가는 게이머였다고 들었다.



 “1998년 가을부터 3년간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살았다. 당시 대원외고 독문과를 다니다 자퇴했다. 공부보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학교 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여겼던 것 같다. 연이어 24시간 넘게 게임만 한 적도 있고 집에서도 PC방에서도 컴퓨터 앞을 떠나본 적이 없다. 2000년 5월 우연히 참가한 KTF Nazit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나니 KTF 팀에서 프로로 올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오더라. 조건은 월급 80만원에 숙식 제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습생 같은 개념이었다. 왠지 사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안 한다고 했다. 당시는 막 게임이 출시된 시점이어서 프로와 아마추어 게이머의 개념이 명확하진 않았다. 같이 게임을 하던 이재훈은 프로로 전향해 지금은 CJ엔투스의 코치로 있다.”



 -그럼 스타크래프트 좀 하는 수준 아닌가. 게이머라고 할 수 있나.



 “그때 별명이 ‘게임 폐인’이었다. 전 세계에서 100등 이내에만 주는 금딱지도 달았다. 비록 90등대에 그쳤지만. 아이디 앞에 금딱지가 붙어 있으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게이머로 인정받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을 왜 그만뒀나.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99학번인데 입학 후 3학기 연속 학사경고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4학기 연속 학사경고를 맞으면 퇴학이라는 제도까지 생겨버렸다. 그래도 1학년 1학기 때는 게임만 해서 1.0 정도 받았는데 여름방학 때 외국어연극제 연습을 시작하면서 수업을 아예 안 들어갔더니 2학기 때는 0.0이 나왔다. 다급한 마음에 게임을 딱 끊고 수업에 출석하고 과제를 제출했더니 3.0을 넘기더라. 그리고 바로 입대했다.”



 -부모님 속 좀 썩였겠다.



 “사춘기라 말은 못했지만 나중에서야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하시더라. 사실 초등학교 5학년 때도 파이널 환타지 5 게임팩을 사기 위해 부모님 몰래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걸리기도 했다.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 성격이니 잔소리할 시간에 기도하셨다고 하시더라. 밤새워 게임하고 있는데도 밥 먹고 하라며 챙겨주시기도 했다.”



 지난해 4월 검사로 임관한 그에게 게이머는 숨기고 싶은 ‘흑(黑)역사’였다. 검사가 게임을 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색안경을 끼고 볼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신분 세탁’(?)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6월에 열린 전국 검찰 정보지식인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하면서다. 검찰은 정보지식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2011년 객관식·주관식·논술 등으로 대회를 신설했다. 결국 정체가 탄로나 지난해 7월부터 지식재산권 전담을 맡게 됐다. 올 1월엔 정보기술(IT) 전담이 추가됐다.



 -수상 비결은 뭔가.



 “게임을 좋아하면 컴퓨터를 못하려야 못할 수가 없다. 컴퓨터 사양에 따라 최적화된 환경에서 게임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3D 프린터를 수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 3~4시간 내에 수사 보고서를 쓰는 문제들이 출제됐다. 서부지검에서 1등을 해서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간 것이다. 전국 우승은 춘천지청의 한제희(43·사법연수원 30기) 검사가 차지했는데 존경스럽더라.”



조도준 검사가 일과 후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있다. 지금은 하루에 20분만 한다고 말했다.
 -게이머 경력이 검사 생활에 도움이 되나.



 “그렇다. 지식재산권 전담을 맡고 보니 웹하드 관련 저작권 침해 고소 사건이 엄청나게 들어오더라. 지난해부터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에 따라 웹하드 등록제가 전면 시행됐지만 무용지물인 것 같아 올 초 74개 업체, 101개 사이트를 전수 조사했다. 그런데 컴퓨터가 너무 느려져서 봤더니 웹하드에 접속할 때마다 NAT라는 프로그램이 다운로드되더라. 동의한 적도 없는데 지워도 또 생기고…. 임의제출 형식으로 로그 기록을 받아 보니 악성 그리드 프로그램이었다. 그게 무단 설치된 거였다. 이런 방식으로 필터링 업체에 자동 통보되는 걸 차단해 유료 콘텐트 20만 편의 저작권료를 가로채고 음란동영상 9만 편을 불법 유통한 L업체를 적발해 지난달 말 불구속 기소했다.”



 -용어가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첨단수사라고 하지 않나. 서부지검은 대학가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범죄 연령도 점점 더 낮아지고 최신 수법도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드는 컴퓨터 여러 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탄생한 서버화 프로그램이다. 이를 악용해 웹하드 서버 대신 다른 회원 컴퓨터에 접속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게 함으로써 트래픽 부담을 줄이고 월 6000만원 상당의 서버통신비를 절감한 것이다. 자꾸 웹하드를 단속하니까 비밀클럽 형태로 숨어든 거고. IT는 알면 알수록 더 잘 보이는 분야인 것 같다.”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검사로서의 업적을 물을 땐 조목조목 포인트를 짚는 냉철함을 보이다가도, 게임 이야기를 할 때면 무장해제된 무공해 웃음을 비쳤다. 서부지검 동료 검사는 “처음엔 자기 좋아하는 분야만 파고들길래 걱정도 됐지만 이렇게 성과를 내는 걸 보니 결국 다 자기 길이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검사가 된 이유는 뭘까.



 -진로를 급선회했는데.



 “원래는 게임 기획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혼자 노트에다 적어가며 구상한 게임도 있다. 성에 들어가서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 액션 RPG(롤플레잉게임)다. 평소에도 상상하고 창작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특별히 재능이 있단 생각은 안 들더라. 그때는 국내에 이렇다 할 게임 회사도 없었다.”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정한 건 언젠가.



 “군대에 있을 때다. 바로 옆 부대에서 같이 농구하고 어울려 놀던 사람이 음독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많이 맞아서 화장실에서 락스를 먹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규칙과 규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군대 안에도 룰이 있는데, 누군가 이 상황을 통제하거나 보호막이 존재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으니까.”



 -검사가 가장 규칙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얘긴가.



 “누군가 법을 어기면 그걸로 피해를 본 사람과 이득을 보는 사람이 생긴다. 법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니 어긴 사람을 처벌해야 마땅하다. 경찰·법원·검찰 모두 고유의 역할이 있지만 검찰이 가장 적극적으로 관행화된 잘못을 파헤쳐 제재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듣다 보니 살짝 약이 올랐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했단 말이지. 그는 “2차 시험은 네 번 만에 통과했다”고 했다. 타고난 천재는 아니란 거였다.



 -사시 패스의 가장 큰 난관은.



 “구멍 난 학점을 메우는 것도 일이었지만 글씨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 고생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하다 보니 컴퓨터 자판이 훨씬 더 익숙했으니까. 모의고사를 보면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며 채점이 안 된 채로 돌아온 답안지도 수두룩하다.”



 조 검사는 사시와 스타크래프트가 비슷하다고 했다. 평소 연습과 준비를 통해 한순간에 승부가 나기 때문이다. 그는 스타에서 지고 나면 상대방을 꺾기 위해 복기를 하던 것처럼 모의고사 후에도 반드시 복기를 했다. 수사 역시 상대방이 이 타이밍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복기하는 형식으로 접근해 나갔다.



 -앞으로의 계획은.



 “검찰 차원에서 수사력 향상을 위해 전문 분야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지원도 풍부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부지검에서는 다음 학기부터 신촌 일대 대학가에서 관련 수업을 무료로 청강할 수 있게 돼 지식재산권과 IT 관련 강의를 신청해 놨다. 게임 머니 환전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데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접근하고 있다.”



 게임 기기인 패미콤·슈퍼패미콤·메가드라이브·새턴·플레이스테이션을 차례로 석권한 그에게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무언지 넌지시 물었다. 조 검사는 “회사에서 알면 혼날 수도 있는데 퍼즐앤드래곤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한다”며 “일과 마치고 귀가 후 자기 전에 20분 정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세계를 네트워크상에 옮겨놓은 거나 마찬가지”라며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정책적으로 너무 많은 억압을 받고 있지만 성취감 등 순기능도 많다”고 덧붙였다.



글=민경원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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