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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어느 페이퍼필의 사연

정혜경
서울대 철학과 4학년
배달된 조간신문을 들추는 것은 늘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이다. “신문은 자고로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신문보기를 벌써 10년. 영화 애호가를 ‘시네필(cinephile)’이라 부른다면 나는 자타공인 종이 신문 애호가, ‘페이퍼필(paper-phile)’이다. 하루치 신문에 실린 글들을 모두 읽고 나면 해당 신문이 그려낸 그날의 풍경이 골격을 갖춘 느낌을 받게 된다.



 지면에 기사들이 배치된 형태를 일컫는 ‘레이아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학보사에서 직접 신문을 만들었던 2년 반 동안의 영향일까. 기사와 그래픽을 배치하는 편집이야말로 한정된 지면에 상상력을 동원해 ‘구도’로 ‘의미’를 창출하는 일종의 예술이라는 점을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지면을 넘길 때의 ‘손맛’과 더불어 읽은 후 차곡차곡 쌓이는 신문을 보는 뿌듯함은 덤이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신문의 위기’는 나에게도 퍽 씁쓸한 말이다. 특히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저스가 법인도 아닌 개인 자격으로 자산의 1할을 들여 워싱턴포스트를 매입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아니,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 당혹감은 활자라는 유구한 인류 인식 패러다임의 몰락 앞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시대 흐름에 뒤처져 그저 종래의 방식을 포기하지 못한 유아적 몽니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신문 기자’라는 직업은 2004년부터 ‘10년 후 없어질 직업’ 순위권 안에 꾸준히 들고 있다. 2010년의 조사에 따르면 3가구 중 1가구는 이제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인쇄 활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활로를 되찾든지, 활자와 함께 몰락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신문 산업이 받게 될 타격이 크리라는 건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언제나 고민의 해답은 ‘독자를 진실로 인도할 바른 통로의 역할’이라는 신문의 본연 그 자체에 있다. 신문이 이 역할을 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권석천 논설위원이 ‘신문은 끝났다?’ 칼럼(시시각각, 8월 28일자 30면)에서 지적한 대로 정치적 이념과 경제적 이해를 초월해 함께 ‘옳은 것’을 지향한다는 언론인들끼리의 ‘유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출구전략을 잃고 끝없이 표류하고 있는 정쟁을 닮은 듯 신문들이 이념 논쟁의 기수로 맞부딪치는 모습이 안타까운 건 이 때문이다. 33년 만에 내란 음모 혐의가 불거졌다. 지금이야말로 ‘동업자 정신’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한 문학평론가는 “몰락은 패배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고 말했다. ‘진실 모의’를 위해 기꺼이 몰락을 선택하는 신문들을 나를 비롯한 ‘페이퍼필’들은 언제나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와 진실을 선택한 신문은 결코 패배하지도, 몰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혜경 서울대 철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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