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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달리기에 대한 사색 … 내 안의 자유 얻었다

철학자가 달린다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추수밭

276쪽, 1만5000원




장거리 달리기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다니던 학교에서 멀리 이사를 가는 바람에 아침마다 천변을 따라 십리 길을 책가방을 멘 채 달리곤 했다. 일찍 집을 나선 날도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뛰었다.



 집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간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달리기의 조급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달린 목적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십여 년 전 중년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내 몸과 마음속에서 졸고 있던 원시성을 깨우고 싶어서였다. 달리는 나의 가슴 속에서 수렵시대 선조들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다양한 목적에서 출발한 달리기의 모든 도구적 가치를 멀리한다. 특히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개척정신이나 확신 등을 강요하는 미국식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맞선다. 달리기에는 달리기 그 자체만의 본질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달리는 것일까. 미국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달리기의 즐거움은 달리기의 목적이 아니다. 이것은 달리기라는 행위의 핵심적인 부분이다”라고 말한다. [중앙포토]
 롤랜즈는 “삶에서 모든 것의 가치는 항상 미뤄지고,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삶은 신들을 능멸한 죄로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그늘 아래 못 속에 서 있는 형벌에 처한 탄탈로스와 같다. 탄탈로스가 과일을 따먹으려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는 손이 닿을 수 없게 위로 올라가 버린다. 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이면 못의 물은 바닥으로 빠져 버린다. 그 자체에 본질적 가치가 없는 삶은 이처럼 ‘사람을 애태우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이 다른 활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달리기의 본질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달리기를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까지 생각한다. 달리기는 모든 의미나 목적이 멈추는 삶의 장소로서, 바로 원초적 놀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을 숭상하고 놀이를 거부하는, 또한 일은 고결하고 놀이는 천박하다고 여기는 자본주의적 사유를 비판한다.



 베버가 분석한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가 희생시킨 놀이의 원리를 탐색하고 그 원리를 통해 근대사회를 비판한 요한 하위징아의 저서 『호모 루덴스』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호모 파베르(‘제작하는 사람’)의 숭배 열풍에 휩싸여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라톤마저 기업과 국가 경쟁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이때 달리기에 대한 개인적 목적마저 부정하고 달리기를 오로지 놀이로만 보는 롤랜즈의 시각은 얼마나 통쾌한가.



 “일로 가득한 삶은 놀이로만 구원된다. 놀이를 할 때, 우리는 가치를 좇지 않는다. 왜냐하면 놀이의 가치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고 우리는 그 속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호모 파베르의 시간이 끝나는 자유 시간에만 가질 수 있는 호모 루덴스의 놀이는 그 시간과 공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몸과 사유의 놀이가 둘 다 가능한 달리기야말로 짧은 시간에 놀이의 가치에 몰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놀이 중 하나가 아닐까.



 이야기는 중년의 위기를 맞은 롤랜즈가 종아리 근육 파열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2011년 마이애미에서 첫 마라톤을 뛰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분명히 그도 중년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달리기의 도구적 목적을 지니고 출발했다.



 달리면서 그는 어렸을 적부터 항상 개들과 함께 했던 인상 깊은 달리기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삶과 죽음, 나이 듦과 사랑에 대해 성찰해나간다. 특히 늑대(실은 늑대와 개의 잡종일 확률이 높은) 브레인(브레인과 11년간 동거한 이야기는 『철학자와 늑대』라는 그의 전작에 자세히 실려 있다)과 브레인의 가족 니나와 테스, 그리고 또 다른 개 휴고와 함께 달렸던 광경을 떠올리며 그는 달리기의 심장박동에 따라 자유로운 사유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느 새 달리기를 시작한 목적들은 뒷전으로 사라지고 달리기는 놀이로 바뀐다. “육체는 움직이지만 사유는 정신이 있던 그곳에서 놀이를 한다.” “달리기의 심장박동이 나를 꼬옥 끌어안을 때, 나는 인간의 타락 이전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달리기의 리듬이 나를 꼬옥 끌어안을 때, 나는 환희의 들판에서 달린다.”



 아포리아(aporia)는 오늘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철학 용어이지만 본래는 상대에게 풀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그리스인들의 실내 놀이였다고 한다. 롤랜즈의 사유는 2011년의 마라톤으로 다시 돌아와 힘들어하는 육체와 동떨어진 채 혼자서 아포리아 놀이를 즐긴다. 이 책의 압권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허문 스피노자의 자유로부터 출발한 장거리 달리기가 인간을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요소의 결정체로 본 데카르트기(期)로 접어들었다가, 존재하는 자아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는 흄기를 거치는가 하면 ‘나는 내가 아닌 것이고 나인 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사르트르기를 어떻게 맞이하게 되는가. 마침내 5㎞를 남겨두고 사르트르기의 고뇌를 환희라는 놀라운 형태로 만나게 되는 롤랜즈의 사유의 놀이는 풀코스를 그와 함께 달리는 것처럼 숨 가쁘게 읽힌다.



 자, 드디어 결승점을 통과했다. “42.195㎞가 왜 중요한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의미가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 묘미이다.” 어렸을 적, 정신이 아니라 육체로 알았기 때문에 내가 안다는 것을 몰랐던 것, 달리기는 이런 삶의 가치를 다시 정신으로 알게 해주는 기억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롤랜즈. 내 인생의 마라톤은 지금 스피노자기인가 데카르트기인가, 아니 전혀 새로운 기를 맞이하고 있는가.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강맑실 책을 만드는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로 돌아가는 자유시간에는 산에서 달리기를 즐긴다. 2003년 중앙일보 주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10㎞를 완주하면서 마라톤과 인연을 맺었다. ‘맑실’이란 이름은 ‘맑은 골짜기’란 뜻이다.



더 읽을 책들



가을 초입이다. 달리기에 좋은 계절이다. 달리기의 유혹을 다룬 책은 여럿 있지만 그 자체로 감동을 주거나 삶에 대한 성찰을 주는 책은 많지 않다.



 그런데 ‘달리는 소설가’라 불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2009)와 노르웨이의 작가 토르 고타스가 쓴 『러닝: 한 편의 세계사』(책세상·2011)라면 다르다.



 『달리기를 말할 때…』에서만큼 하루키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저작이 또 있을까. 달리기를 축으로 하루키라는 인간, 그의 삶, 글쓰기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러닝』은 달리기의 역사를 살핀 것으로, 달리기의 의미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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