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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반딧불을 보셨나요?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 금곡과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가 만나는 곳에 세심원과 휴림이란 곳이 있다. 세심원(洗心園)은 말 그대로 ‘마음을 씻는 곳’이고 휴림은 쉴 휴(休)자, 수풀 림(林)자를 쓴 바대로 ‘쉼이 있는 숲’이다. 휴림의 지번이 고창군 고수면 은사(隱士)리 1번지이니 숨어 사는 은둔거사의 거처란 의미가 본래부터 있었던 듯싶다. 또한 이곳은 비록 첩첩산중이지만 해풍과 산풍이 만나는 곳이다. 남쪽 바다 영광 법성포에서 몰려오는 따뜻한 해풍과 노령산맥 내장산 백양사 쪽에서 넘어오는 서늘한 산풍이 고갯마루에서 딱 마주친다. 그래서 비나 눈이 내리면 참으로 대차게 내린다.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마주치기 때문이리라.



 # 사실 요즘 도시는 해가 떨어져도 각종의 인공불빛 때문에 완전히 어둡지 않다. 하지만 주변에 외딴 민가조차 따로 없는 이곳은 해가 떨어지면 진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다. 그런데 그 어둠 사이를 가르는 색다른 불빛이 공중을 떠돈다. 도깨비불이 아니라 반딧불이다. 요즘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물론 시골에서도 여간해선 반딧불 보기가 쉽지 않다. 반딧불이와 그 서식지까지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된 것도 그런 맥락이리라. 사실 반딧불이는 개똥벌레의 다른 이름이다. 낮에 보면 개똥벌레지만 밤에 보면 반딧불이인 게다. 왠지 개똥벌레라고 하면 우습지만 반딧불이라고 하면 정겹지 않은가.



 # 옛말에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이 있다. 형(螢)은 개똥벌레 형자다. 불 화(火)가 두 개 든 만큼 환하게 빛을 발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반딧불을 한자로 쓰면 ‘형화(螢火)’라고 하는데 불 화가 세 개다. 그만큼 밝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 진(晉)나라에 손강(孫康)과 차윤(車胤)이란 이가 있었다. 손강은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그 환한 눈빛에 비춰 책을 읽었고, 차윤은 여름에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면 이것들을 잡아 주머니에 넣어 그 빛으로 책을 읽어 입신에 성공했다는 고사다. 물론 조금 과장된 측면도 없진 않다. 실제로 반딧불로 책을 보려면 족히 200여 마리 정도는 잡아서 모아놓아야 가능할지 모른다. 형설지공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반딧불이가 인생의 나아갈 방향을 잡아준 사례도 있다. 평생 빛을 주제로 추상의 세계를 구축해온 우제길 화백은 어린 시절 반딧불을 봤던 기억이 자신을 이제껏 이끌고 있다고 고백할 정도다.



 # 반딧불이는 배 말단에 있는 발광기로 빛을 낸다. 사실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것은 교미를 하기 위한 신호다. 루시페린(luciferin)이라는 물질이 산화되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화학에너지가 빛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발광원리는 미래의 광(光)산업에서 매우 중요하게 주목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반딧불이의 발광방식은 발열이 거의 없는 냉광(冷光, cold light)이기 때문이다. 고작 전기에너지의 10% 정도가 가시광선으로 바뀌고 나머지는 열로 빠져나가는 백열전구에 비하면 반딧불이의 발광은 에너지전환효율이 아주 높아 열로 손실되는 것이 거의 없이 90% 이상이 가시광선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 풀섶 속의 작디작은 꼬마전구 같은 반딧불과 하늘의 유난히 반짝이는 별빛이 어우러지고 해풍과 산풍이 뒤섞인 묘한 바람과 그 내음 속에서 풀벌레들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정겹다. 잔인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던 폭염의 나날도 지나고 이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이제 우리도 각자의 반딧불을 켤 때다. 단지 형설지공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둡고 어둔 내 마음의 갈 길을 밝히기 위해 말이다. 물론 요즘 세태가 워낙 가지가지로 발광(發光) 아닌 발광(發狂)을 하고 있으니 어디 반딧불이 얘기가 귀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마는 그래도 마음의 반딧불을 켜고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에도 귀기울이는 9월이 돼 보자!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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