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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을 선택한 아버지와 아들의 '희로애락'

부자동행(父子同行). 아버지는 아들이 더 잘났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하고,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만큼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길을 선택한 아버지와 아들의 희로애락.


◆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 패션 디자이너 이청청

이청청 팀장이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함께 일하면서였다. “디자이너는 행복한 직업이지만 창작에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그런 번뇌의 나날을 수십 년 동안 극복하신 아버지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은 아버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고민하고, 치열한 스케줄로 몸이 안 좋을 때는 마음이 짠해서 옆에서 안절부절한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이 브랜드의 제너럴 매니저를 맡았기에 더욱 냉철하게 업무를 평가한다. 아들은 하루라도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엄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봉 컬렉션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같기에 두 사람의 호흡은 찰떡궁합이다. 부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국적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는 아버지의 디테일도 아들이 도전적으로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한국의 미는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아시아 마켓에서도 집중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는 없어요. 다만 감성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요. 나이에 맞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아티스트로서 퇴보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상봉 컬렉션이 패션계를 리드하는 브랜드라고 자부하며, 그런 시도가 나를 늙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들 역시 아버지와 나이 때문에 어긋나는 점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과 달리 클럽 문화를 즐기고 미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훨씬 젊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청청 팀장은 이상봉 컬렉션과 함께 새로 선보인 하우스 브랜드 라이(LIE)의 디렉터도 맡고 있다. 이상봉 컬렉션보다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라이는 이상봉 컬렉션의 아이덴티티와 닮은 새로운 브랜드로, 이청청 팀장의 창의성과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 아들이 전적으로 진행한 라이가 세계 무대에서 호평을 받자 이상봉 디자이너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뻐하는 빛이 역력했다.

◆ 최가철물점 대표 최홍규 + 실장 최진현 + 디자이너 최진범

아버지는 아들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하자 코끝이 찡했다. 아들에게 강요한 적은 없지만 디자인이라는 것이 감성적인 작업이다 보니 가족 비즈니스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는데 이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큰아들은 쇳대박물관을 설립할 정도로 컬렉션을 좋아하는 나처럼 아름다운 물건 수집에 일가견이 있지요. 어린 시절부터 피규어와 코믹 북 등을 수집했으며 꼼꼼하고 체계적입니다. 작은아들은 호방한 기질과 욕심이 나와 닮았습니다. 군 제대하자마자 바로 최가철물점에 출근했을 정도지요.” 최진현 실장은 요즘 최홍규 대표가 오랫동안 모은 수집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업무를 총괄 진행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최가철물점에서 조만간 새롭게 작은 박물관을 설립할 예정인지라 최진현 실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아버지가 요즘도 시장을 오가며 컬렉션하는 모습을 보며 그 열정에 감탄하곤 합니다. 아버지의 수집품은 쇳대를 비롯해 다채로운데 최고의 리스트를 갖추고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최진현 실장은 아버지의 삶과 열정을 존경하며, 아들로서의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그도 자신의 컬렉션으로 언젠가는 박물관을 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최진범 디자이너는 금세 철의 매력에 빠져서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최홍규 대표도 철의 아름다움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최진범 디자이너는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쇠’가 좋다고 했던 것이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쇠는 다루지 않았는데 실제로 접해보니 아름답고 부드러운 물성에 반했다는 것. 역시 부전자전이다. 최진범 디자이너는 젊은 세대답게 파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반면 최홍규 대표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이 작은 차이점이다.


◆ 건축가 이성관 + 건축가 이희재

이성관 건축가 부자를 만난 곳은 ‘수입 777’이다.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건축물이기도 한 이곳은 한울건축 이성관 대표와 hjl 스튜디오 이희재 대표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작품이자 아버지의 집이기도 하다. 인근에서 건축물을 만들던 부자는 강변에 밤나무가 우거진 부지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함께 집을 만들기로 했던 것. 당시 아버지 사무실에서 일하던 아들은 설계를 논의하고 직접 자재를 구입하러 다니면서 인테리어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에 완공했지만 거주하면서 2008년까지 계속 구조를 조정하고 마당과 조경을 손질했지요. 도면과 현장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고 건축가로서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지요.” 몇 년 후 아들은 hjl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독립을 선언했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서운하기보다 든든했다.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며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싶은 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독립함으로써 건축가 대 건축가로 함께 일할 수도 있으니 더욱 좋다고 했다. “아버지는 전쟁기념관, 부산방송국, 데이콤 강남 사옥 등의 대형 작품을 건립하며 알려진 건축가이기에 아들로서 플러스가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멋진 작품을 많이 만드신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지만 이성관 대표의 완벽주의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건축주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완벽한 결과물에 매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비트라 서울 쇼룸, 김영석 신라 호텔 부티크, 제이 로즈로코 뉴욕 플래그십 매장 등 신세대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아들이기에 두 사람의 작품은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니멀하고 담백하며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건축가로서의 철학은 닮아 있다.


◆ 한국프로댄스평의회 회장 박효 + 누에보 대표 박지우

우리나라 댄스 스포츠 1세대인 박효 회장이 춤을 추기 시작한 지 올해로 47년. 그동안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바로 “순리대로 해라!”였다. 한꺼번에 나아가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전진해야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는 아버지가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종군 선생에게 배운 것과 일맥상통한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이며, 순서대로 위로 올라가야 바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댄스 스포츠는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스탠더드와 라틴 댄스 두 종류가 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받게 되었지요.” 과거 춤을 추다 잡혀가서 고초를 당하기도 했던 박효 회장은 척박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전투적으로 댄스 스포츠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은 자연스럽게 댄스 스포츠를 배우게 되었고 발레, 한국무용 등 모든 춤을 섭렵했다. 아버지는 해외에서 댄스 스포츠의 입지가 확고한 것을 지켜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받을 날이 오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아들은 16세이던 1997년 아시아 니카사배에 출전하여 6위를 차지했다. 2004년 동양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댄스 스포츠 대회인 블랙풀에서 12강에 올랐고, 추후 세계 랭킹 7위까지 올라 국내 댄스 스포츠계의 최고 스타가 되었다. “친구처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춤추다 다리를 다쳤을 때도,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워서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아버지는 언제나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며 위로해주셨지요.” 아들은 열정적이고 감성적이라 룸바를 좋아하며, 아버지는 자연스러움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기에 왈츠를 즐겨 춘다. 부자의 춤추는 모습은 묘하게 비슷하다.

글 이소영(프리랜서)
사진 김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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