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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스토리] ② 마칼루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파상과 치링

1 지난 5월에 찾은 마칼루 베이스캠프, 하염없이 마칼루 남벽을 바라보고 있던 파상 셰르파가 갑자기 뒤돌아 카메라를 응시했다.

지난 5월, 세계 5위봉 마칼루(8463m) 베이스캠프(BC)를 찾았다. 열흘 남짓 걸리는데 힘들기로 유명하다. 해발 400m에서 시작해 4000m까지 줄곧 올라간 후 다시 3000m 계곡으로 떨어진다. 다시 올라가야만 비로소 베이스캠프가 나온다. 탕마르(Tangmar) 베이스캠프로 불리는 4800m 지점은 마칼루 초등을 목표로 한 원정대가 처음으로 캠프를 치는 곳이다.

황량한 사막과 생명의 물이 공존하는 탕마르 BC에는 돌로 만든 움막이 몇 개 있었다. 흔히 ‘티하우스’라고 부르는데, 아랫동네에서 사는 주민들이 올라와서 쌓은 것이다. 대여섯 곳의 움막 중 3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트레킹 시즌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집으로 콜라·사이다·자파티(밀과 잡곡을 섞어 만든 네팔의 전통 빵) 등을 판다.

열흘 동안의 고행을 마치고, 그 중 가장 말끔하게 생긴 치링의 티하우스 앞에서 배낭을 벗었다. 남정네 치링과 처자들인 파상, 펨바는 티하우스 문 앞 통나무 벤치 아래에 매트리스를 깔고 우리를 올려다 보았다. 이상하게도 전혀 손님을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대개 트레커들은 남벽을 한번 올려다 본 다음 이 곳에서 묵지 않고 500m 아래에 있는 랑말레(Langmale)로 되돌아간다. 나는 하룻밤을 묵을 생각이었지만, 로지가 아닌 텐트에서 잘 계획이었다. 세 사람의 심드렁한 표정은 내가 ‘큰 돈이 되지 않는 손님’이란 걸 이미 눈치 챈 듯해 보였다.

오전 내내 걸어 배가 몹시 고픈 나는 치링에게 자파티와 함께 달밧을 주문했다. 달밧은 쌀로 지은 밥과 채소볶음, 볶은 국수 등이 들어간 제법 괜찮은 식사다. 하루에 한 번 밥을 먹는 네팔 사람들이 저녁 메뉴로 즐겨먹는다.

치링은 등반 셰르파(Sherpa)로 며칠 전까지 마칼루 북면에서 유럽의 등반가들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속한 원정대는 이미 마칼루를 등정하고 하산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셰르파보다 먼저 하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생업인 티하우스 주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치링은 능숙한 솜씨로 우리를 대접했다. 달밧은 800루피(약 1만1000원), 자파티는 200루피(3000원)에 받았는데, 카트만두 시내에 비해 두세 배는 비싼 편이다.

치링이 열심히 손님을 받는 사이 파상과 펨바는 밖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치링의 여동생인 줄 알았다. 둘은 문을 연 3곳의 티하우스 중 2곳의 주인장이었다. 잠깐 시간을 내 파상의 티 하우스를 찾았다.

2 베이스캠프 근방에 있는 세토포카리. ‘하얀 호수’라는 뜻이다.
3 우리 일행에게 밥을 지어 준 치링 셰르파(오른쪽)와 함께 기념 촬영.

-이름이 뭐야?
“파상(Pasang).”

-금요일에 태어난 아이군.

셰르파는 아이가 태어나면 남녀 구분 없이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월요일은 다와, 화요일은 밍마, 수요일은 락파, 목요일은 푸르바, 금요일은 파상, 토요일은 펨바, 일요일은 니마 식이다. 근래엔 요일을 안 따르기도 한다.

-몇 살이니?
“열아홉.”

-열아홉이면 네팔에서는 벌써 엄마가 될 나이 아닌가?
“아닌데. 늦게 가는 사람도 있어. 스물아홉까지만 가면 되지 않을까.”

-남자친구 있어?
“없어”

-연애 결혼은 안 되는 건가?
“아니야. 대개 부모님이 정해주지만, 연애 결혼하는 사람도 있어.”

-너는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
“어떤 사람이라니?”

-그러니까 이상형?
“몰라. 한국에서는 어때?”

-한국에서는 첫째도 돈이 많은 남자, 둘째도 돈이 많은 남자, 셋째도 돈이 많은 남자야.
“하하하. 농담하는 거지? 난 첫번 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야. 두번 째는 얼굴이 잘생긴 사람, 그리고 다음이 돈이 많은 사람.”

-돈 많은 남자가 맨 나중이라고? 거짓말쟁이.
“정말이야. 나중에 내가 예뻐보이지 않게 되면…. 돈이 많은 남자는 나를 떠날 수도 있잖아. 그래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가장 좋아.”

열아홉살 처녀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안타까웠다.

하지만 네팔에서는 돈 많은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고산 지역 로지의 주인장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벌게 되면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것이다.

이혼하는 과정도 우리에 비해 간단하다. 남자는 새로운 여자가 생기면 조강지처에게 얼마간의 위로금을 주고 이혼을 신청할 수 있다. 이때 우리처럼 법원에서 ‘위자료로 얼마를 지급하라’ 명하지 않는다. 아내가 수긍할 정도의 돈만 주면 된다.

돈 많은 남자가 미혼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 그러니까 ‘혼인빙자간음죄’를 저질러도 돈으로 보상이 가능하다. 반면, 돈이 없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일은 거의 없다. 또 바람 피운 여자는 남자와 달리 마을 사람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감수해야하기에 그런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커피색 얼굴에 똘망똘망한 눈망울 한 파상은 어딜 봐도 남자에게 버림받을 상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형편이 나은 집의 딸이었다. 네팔 사람들이 돈 주고 사 입기 어려운 유명 아웃도어브랜드의 재킷을 입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국인 원정대나 트레커가 다니는 길에 있는 로지의 주인의 대개 부자들이다. 파상 또한 아랫마을에 있는 한 로지 주인의 딸이었다. 파상은 장작을 하나 더 꺼내 물을 끊여 나에게 차를 대접했다. 물을 팔팔 끓이지 않아 미지근한 홍차였지만, 마음이 훈훈해졌다.

-(마칼루 베이스캠프에 있는)원정대가 너네 집으로 오지 않고 나처럼 치링 집으로 가면 어떻게 할거야. 그러면 너는 돈도 못 벌고 여기서 추위에 떨다가 내려가야 할 텐데. 트레킹 시즌도 끝나가는데, 이제 내려가는 게 어때.

“안 돼. 작년에 (마칼루 원정대가) 열팀이 넘게 왔는데, 올해는 6~7팀 밖에 오지 않았어. 그래서 이번 시즌엔 돈을 많이 못 벌었어. 그들이 우리 집에 오든 안 오든 기다려야 해. 돈을 벌어야지.”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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