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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카레향의 자극 … 잃었던 나를 찾다

소설 속 영은이는 가난이 두려운지 자주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하성란 작가는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라며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만약 작가로서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지금 멈추고 싶어요. 연륜이란게 생기니까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에서야 깨닫는 게 있어요. 제가 느낀 것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된 거죠.”

제1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⑩·끝
소설 - 하성란 '카레 온 더 보더'



 하성란(46) 작가는 지금 늦여름의 어느 길목에 서 있다. 무더위를 견뎌내고 가을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 복잡미묘한 인생의 질감을 구현해 낼 수 있다. 등단 17년차, 그는 “앞으로 10년 동안은 제일 많이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경험에서 길어 올린 감정을 맑은 감각으로 쓰겠다는 다짐이다.



 올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카레 온 더 보더’에도 휘청대는 젊음과 꺼져가는 늙음이 작가의 오롯한 감정으로 되살아난다. 예심위원들은 “하성란은 사물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탐구로 출발한 작가인데 이제는 자신의 현실과 경험을 질료로 삼고 과거의 기억과 조우하면서 집중적으로 분투하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소설의 주인공 ‘그녀’는 한 때 영화판에서 ‘가께모찌’ ‘구다리’ 같은 일본식 은어를 쓰며 일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언어순화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지원한 상태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선배 ‘김’으로 내정되어 있다. 선배의 들러리를 서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갑갑함을 느낀다.



 그때 그녀를 구원한 것은 식당에서 배어 나오는 카레 향이다. 함박스테이크 위에 카레 소스를 얹고, 숙주나물을 곁들인 퓨전 메뉴 ‘카레 온 더 보더(curry on the border)’다. 10여 년 전 친구 영은이의 허름한 빌라에서 맡았던 것과 같은 향이다. 밤새 노래방 도우미를 하고 번 돈으로 영은이는 카레를 만들어 노인 다섯을 봉양했다.



 “카레는 온갖 비린내를 가려주는 음식이자 향신료예요. 재료가 나빠도 카레에 섞으면 숨길 수 있어요.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기도 하고요. 죽음이나 궁핍함을 가려주는, 강한 살균력을 갖고 있는거죠.”



 영은이는 카레 냄새에 기대 그 엄혹한 시절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그녀’ 자신도 영은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그 카레 냄새에 기대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선배 ‘김’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고종석 작가는 ‘한 개인의 사회적 자아는 그 개인의 언어에 깊은 자국을 낸다’고 했어요. 언어 속에는 사회적 배경과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언어순화에 반대합니다.”



 어찌 보면 카레의 강렬한 향과 삶을 꿰뚫는 날것의 언어는 일맥상통한다. 그녀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강력한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예심위원인 백지연 문학평론가는 “과거나 현재나 부조리한 삶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날카로운 기억을 냉엄하게 들여다보면서 현실을 딛고 서는 발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두 아이를 둔 주부 하성란에게 카레는 지겨운 음식이라고 했다.



 “예전엔 주부작가란 말이 내 문학을 폄훼하는 것 같아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게 사실이잖아요. 전처럼 낮에 살림하고 밤을 새서 쓸 정도의 체력은 안되지만 사회 속 개인의 상처, 소소한 개인의 기록에 대해서 꾸준히 쓰고 싶어요.”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성란=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옆집 여자』 『웨하스』, 장편 『삿뽀로 여인숙』 『A』 등. 동인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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