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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싫어도 만나냐 안 만나냐의 차이

고정애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이 정치인과의 만남을 즐긴다고 쓰면 오류일 게다.



 “그래 나를 파멸시키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보시오. 대통령의 위신이 곤두박질치고 있소. 닥치시오. 좋아, 좋다고. 그게 원하는 바라면 어디 한 번 해 보시오.”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전화기 너머 상대는 존 케리 국무장관, 당시 상원의원이었다. 케리는 클린턴의 핵심 법안에 반대했다. 클린턴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통화 후에도 둘 사이 대화는 이어졌다. ‘자리’ 얘기도 오갔다.



 케리는 막판 이같이 통보했다. “이번엔 공짜로 하지요.” 딱히 공짜는 아니었다. 의회에서 클린턴을 “풋내기에다 경험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찬성표를 던졌으니 말이다. 결국 법안은 통과됐고 축배를 든 건 클린턴이었다. (『너무나 인간적인』)



 태평양 이쪽저쪽이라고 대통령의 심리가 다르겠는가. 싫어도 만나느냐 혹 만나야 하느냐, 싫으면 안 만나거나 안 만날 수 있느냐의 차이일 뿐 심리 흐름은 대체로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청와대 출신 A의 증언이다.



 “처음엔 다 만나고 싶어 한다. 인사청문회도 있고 법안도 처리해야 하니까. 그러다 점차 마음이 꼬인다.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잘하고 싶은데 국회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이 다음부터 갈라지는데 우린 이렇다.



 “이슈를 풀려면 대통령이 정치인, 특히 야당과 만나야 하는데 집권여당이 반대한다. ‘이번에 만나면 다음에 또 봐야 한다. 여당이 힘을 잃는다’는 논리다. 가뜩이나 만나고 싶지 않았을 대통령이 솔깃할 얘기다. 참모들도 ‘대통령이 정쟁의 당사자가 되는 건 불가하다’고 한다.”



 우리 대통령과 야당의 만남이 어렵고도 귀한 이유다. 사실 역대 만남을 결산해 보면 대통령에게 과히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더 이상 “왜 회담을 안 하느냐”는 채근을 듣지 않게 되니까 말이다. 오히려 부담을 갖는 건 야당 지도자들이었다. 대통령급으로 보인다는 만족감은 잠시였다. 당내 강경파로부터 “유화적”이란 비판을 듣기 일쑤였다. 회담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 게 안전했다.



 야당 시절 YS만 봐도 알 수 있다. 75년 월남 패망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자 박정희 대통령과 만났고 정작 어려워진 건 YS였다. YS 주변에선 “박 대통령이 회동을 최대한 활용해 YS를 흠집 냈다”고 기억한다. 87년 6월 항쟁 중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회동 후 YS가 “결렬됐다”고 선수 쳤다.



 한 세대 전이라고? 천만의 말씀. 2008년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회동한 이후 궁지로 몰린 건 정세균 민주당 대표였다. 2년여 후엔 손학규 대표가 이 대통령 앞에서 A4용지 12장을 읽었다. 일방 통보였다. 2006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손 대표처럼 행동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 사이의 2자→3자→5자→2자→3자→5자→2자 후 5자 회담 공방을 보면서 여전히 다들 ‘경험의 포로’란 생각이 든다. 제의만 할 뿐 정작 회담은 꺼린다는 의구심이 들어서다. 양측이 그러나 간과하는 게 있다. 달라진 정치환경 때문에 경험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말이다. 국회선진화법에다 중진(重鎭)의 부재가 맞물렸다. 과거엔 중진들이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물밑 중재했다. 이젠 대통령의 의지와 야당의 ‘반(反)의지’가 직접 충돌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외면해도 야당은 계속 대통령을 노려볼 수밖에 없다. 야당이 노려보는 한 딱히 되는 일도 없다. 대통령도 야도, 결국 국민도 지는 악순환이다.



 “(전임인) 존 F 케네디가 아이들에게 키스하는 동안 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할 정도로 입법 능력이 탁월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이 밝힌 노하우다. “대통령이 의회를 다루는 유일한 방식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중단 없이 (접촉)하는 거다.” 우리도 다를 바 없어졌는데 딱 두 곳만 모르는 것 같다.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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