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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딱 하루 가봤어요, 나에겐 안 맞던걸요"

서울고 인왕관(독서실) 최주훈군의 자리. 인왕관에는 최군의 자리를 비롯해 총 250석의 고정석이 있다. 수학·과학 공식을 써놓은 포스트잇과 책장을 가득 매운 문제집·참고서가 눈에 띈다. 최군은 고교에 올라와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서울 서초구의 서울고 3학년 최주훈(18?자연계열)군은 학교에서 ‘독한 놈’으로 통한다. 유난히 찜통더위가 이어진 올여름, 방학 자율학습 쉬는 시간에도 조각 잠 한 번 잔 적 없다. “1분이 아깝다”며 교과서만 파고든다. 최군의 고교 3년 평균 내신 성적은 1.1등급.

[열려라 공부] 서울고 3학년 전교 1등 최주훈군



수능 모의고사에서도 1등급을 놓친 적이 없다. 반포중 시절에도 늘 전교 3등 안에 들었다. 얼마나 학원 ‘뺑뺑이’를 돌았을까 싶지만 정작 최군은 중?고교 6년 내내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최군은 “어려운 문제를 낑낑대며 혼자 힘으로 풀었을 때 기분이 좋다”며 “문제집은 최소 3번에서 많게는 7번까지 반복해 푼다”고 말했다. 반복의 달인 최군의 책상을 들여다봤다.



서울고 인왕관(독서실) 2층 귀퉁이에 있는 책상. 지난 3년 동안 최군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책상에 앉아 정면에 보이는 벽면엔 ‘서울대 의예과 2014학번 최주훈’ ‘백 마디 말보다 진실된 행동’ 등 자신을 담금질하는 글귀를 붙여놨다. 왼쪽엔 수학·과학 공식을 적은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최군은 학교에서 저녁 식사 후 곧바로 이곳에 온다. 교과서는 물론 문제집·참고서도 모두 여기 둔다. 이유가 있다. 최군은 “저녁 식사 후 2~3시간은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시간대”라며 “교실·식당에서 곧바로 학교 독서실로 가면 이동 시간을 줄여 시간을 아낄 수 있고 긴장감 유지에도 좋다”고 말했다.



 최군은 친구들 사이에서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쉬는 시간 10분도 아깝다며 교과서를 꺼내 드는 데다 모르는 건 바로 짚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공부 방식에도 이런 성격이 묻어난다.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할 때까지 복습한다. 최군은 “난 원래 똑똑하거나 이해가 빠른 편은 아니다”며 “오래 앉아 집중할 수 있는 끈기가 내 유일한 무기”라고 설명했다.



 EBS 교재로 공부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로 이해가 됐다. 최군은 “EBS 수학 문제집은 5번, 과학은 3번, 국어는 2번, 그리고 영어 문제집은 최대 7번까지 반복해 푼다”고 했다. 최군이 활용하는 EBS 문제집은 국어·영어·수학·과학 4과목을 합해 총 23권이다. 최군 말대로 반복해 푼 횟수를 계산하니 무려 99회다. 여기에 과목별로 기출문제집 자이스토리(수경출판)에다 수학의 정석(성지출판)·완자(비상교육)처럼 개념 설명용 참고서까지 매일 필요한 부분을 골라 본다.



 문제집을 풀 때 최군만의 순서가 있다. 문제 분류하기→핵심 문제 반복 풀기→문제 풀이에 필요한 키워드 확인 순이다. 이렇게 하면 반복할 때 중요한 순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점점 속도를 붙일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문제집을 처음 펼쳐 순서대로 문제를 푼다. 이때 세 가지로 문제를 구분해 체크한다. 크게 어렵지 않은 기본 개념 문제는 빗금(/) 표시, 실수로 틀렸거나 오답을 유도하는 함정이 있는 문제는 브이(V)자 표시, 어려워 시간이 오래 걸렸거나 손도 못 댄 문제는 별(☆)표를 달아둔다. 그리고 문제집을 다시 풀 때 ‘☆->V->/’ 표시 순으로 중요도를 달리한다. 별표 문제는 4~5번, 브이가 표시된 문제는 2~3번, 빗금이 달린 문제는 확인 차원에서 한 번만 더 푼다.



 최군은 “이때 중요한 게 문제의 핵심 개념과 풀이 키워드를 문제 옆에 함께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원과 삼각형을 다룬 삼각함수 문제=고1 때 배우는 사인·코사인 법칙 활용’과 같은 식이다. 최군은 “이렇게 적어두면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문제집을 다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개념 정리와 응용문제 풀이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지레 조용한 공부벌레라고 짐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격은 활달하다. 지난해 학교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을 맡아 다른 학교 공연까지 다닐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초·중·고 내내 전교 부회장을 지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해외 자매학교 교류 프로그램이라든가 R&E(대학·연구소 등 외부 연구기관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등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많은 학습량을 소화하면서 어떻게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있을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예·복습에 답이 있다. 한 교시가 끝나고 나면 쉬는 시간 10분 중 5분은 이전 수업을 복습하는 데 투자한다. 야간 자율학습 때도 매일 30분은 그날 수업 내용을 점검하고, 일요일 취침 전엔 일주일치의 공부를 다시 훑어본다. 예습도 빼놓지 않는다. 매일 취침 전과 아침 등교 직후 그날 수업을 점검하고 중요한 대목을 미리 체크해둔다. 최군은 “쉬는 시간, 등교 후 20~30분, 취침 전 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많은 시간을 안 들이고 예·복습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효과는 투자 대비 몇 배로 돌아온다. 예·복습을 철저히 해두면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고 목표한 공부량을 더 빨리 소화할 수 있다.



 최군의 이런 절제력은 어머니 박선희(50)씨 영향이 컸다. 박씨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몇 시간씩 손에서 안 놓을 정도로 집중력과 끈기는 원래 대단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하기 싫은 걸 시키면 금방 흥미를 잃고 자신감까지 떨어졌다. 결국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 박씨는 억지로 공부를 강요할 게 아니라 공부를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씨는 학부모 대상 자기주도학습 교실에 다니며 공부법에 대해 배웠다.



 “공부하라는 말 대신 ‘주훈이는 어떻게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라고 자주 물었어요. 그리고 ‘엄마는 이런 방법이 좋을 거 같은데’라며 내 의견도 말해줬죠. 그랬더니 아이와 자연스레 공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어요.”



 박씨는 이런 식으로 최군과 공부 계획을 함께 짰다. 초등학교 때는 박씨가 일주일 공부 계획의 기본 뼈대를 짜면 최군이 수정·보완해 어떻게 공부할지 결정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선 최군이 먼저 뼈대를 짜고 박씨가 부족한 부분을 꼼꼼하게 짚어줬다. 고교 때는 최군에게 일임했다. 박씨는 최군 학년이 올라가면서 엄마 역할을 줄이고 최군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최군이 중3 때 “학원은 나하곤 안 맞다”며 난생처음 학원에 간 지 하루 만에 관두겠다고 했을 때도 한마디 잔소리 없이 의견을 받아들였다. 아버지 최운옥(49·회사원)씨도 언제나 든든한 조력자였다. 최군은 “아빠는 항상 ‘네가 원하는 대로 해보라’며 응원해준다”며 “지금도 어떤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님이 날 얼마나 믿고 응원해주는지 항상 느낀다”며 “그래서 작은 계획 하나도, 수업 끝난 뒤 5분의 짧은 복습 시간 하나도 허투루 써선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최군이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박씨는 “흥미를 못 느끼는 학원보단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도록 한 게 집중력과 끈기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학교와 도서관 추천도서 목록을 참고해 어릴 때부터 최군에게 책을 선물했다. 대여는 가급적 안했다. 그렇게 쌓인 책이 1000권이 넘는다. 고3인 지금도 일주일에 1~2권씩은 꼭 책을 읽는다. 지난해부터 의예과를 목표로 삼으면서 최근엔 의사 이야기를 다룬 책이나 생물 관련 과학책을 즐겨 읽는다. 최군은 “중·고교에 올라와서도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며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인지 국어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글=정현진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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