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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파생의 추락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누구도 집을 사려 하지 않는 지금, 전세난은 당연한 일이다.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데 소소한 정부 대책 몇 개로 주택 매매가 살아나긴 어렵다.



 자, 집은 갖고 싶지만 주택가격이 내릴 것으로 본다면?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발품 팔아 전셋집 구하러 다니는 것만이 최선일까. 그렇다. 그런데 부동산 관련 선물·옵션 시장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집을 산 뒤 5% 이상 부동산 지수가 떨어지면 돈을 벌 수 있는 옵션 거래가 가능하다고 하자. 주택 구매자는 이 옵션을 롱(매수)해 집값 하락을 어느 정도 헤징할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구조상 집값 5% 이상 하락은 어렵다고 보고 이 옵션을 숏(매도)할 것이다. 부동산 거래를 절벽으로 몰아넣는 요인이 제거되는 셈이다.



 현물시장을 보완해주는 파생시장이란 이런 묘한 매력이 있다. 현물시장의 가격 변동 리스크만을 떼어내 거래하자는 어느 머리 좋은 사람의 아이디어는 이제 세계 금융시장 규모의 세 배에 해당하는 600조 달러 시장으로 컸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 외국인들이 ‘피 같은’ 돈을 하루에도 수천억원씩 쏟아 부을 수 있는 것도 코스피200 선물·옵션의 덕이기도 하다. 파생시장을 이용해 헤징할 수 있고,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주요국 증시가 곧 무너질 것 같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는 것도 파생시장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파생시장은 ‘절대악’이란 인식이 뿌리깊게 깔려 있다. 원죄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위험한 장외파생상품에 발을 담그다 무너진 2008년 금융위기,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11·11옵션 쇼크’ 같은 일련의 사건은 탐욕자본주의의 치부를 드러냈다. 중소기업의 피를 빤 악덕 상품이 된 통화옵션 키코, 무속인에 빠져 선물투자를 하다 거액을 날리고 쇠고랑까지 찬 어느 대기업 총수의 모습은 이런 생각에 힘을 싣는다.



 여론을 등에 업은 정부는 파생상품에 대한 옥죄기에 나섰다. 강도 높은 규제 폭탄이 지난해 투하되자 10년간 거래량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코스피200 옵션은 거래량이 급추락 중이다. 색안경을 낀 정부의 결기에 놀라 업계는 새 파생상품 도입을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도 금융위기 이후 파생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위험성 큰 장외 상품이 타깃이지 우리처럼 장내 상품을 잡은 건 못 들어봤다. 아시아 금융허브는 차치하더라도 파생시장의 지나친 위축이 현물시장 위축으로 연결된다는 점은 잊어선 안 된다. 월급쟁이들도 즐겨 찾는 ELS도 코스피200 선물·옵션이 없다면 활성화되기 어렵다.



 파생이 위험한 건 맞다. 아무 준비 없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개인들에게 위험성을 알리고, 시장에서 일어나는 불공정 행위를 때려잡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그렇다 해도 시장 자체를 죽이는 식의 규제로 일관하기에는 파생시장의 발전이 너무 무궁무진하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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