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J Report] '여름 추석' 때문에 … 속상한 과일





과수농가·유통업체 ‘과일 비상’ 폭염·가뭄에 제대로 여물지 못해
사과밭엔 햇빛 반사 필름 깔고 배나무엔 한 병 10만원 영양제 놔
이렇게 해도 선물용 턱없이 부족 이마트, 고산지대 사과 확보 나서
추석 전에 태풍까지 오면 '재앙'

26일 전북 장수군 장수읍 노곡리 서정호(42)씨의 사과농장에는 고랑마다 은색 반사 필름이 빼곡하게 덮여 있었다. 사과는 꼭지의 반대쪽인 아랫부분까지 불그스름하게 익어야 수확을 할 수 있다. 서씨는 추석 대목을 겨냥해 사과를 재배해 왔는데 올해 추석이 예년보다 보름 이상 빠르다 보니 일조량이 부족했다. 서씨는 “아래쪽을 빨리 익혀 추석 대목에 맞춰 출하하기 위해 햇빛을 반사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가을 사과는 주로 부사와 홍로가 생산된다. 이 중 부사의 출시 시기가 조금 더 늦다. 추석이 10월 중·하순일 경우엔 제수용·선물용으로 부사를 출시하기도 하지만 올해의 경우 추석이 일러 홍로를 대체할 상품이 없다. 서씨는 “부사의 경우 꼭지 부분이 튼튼해서 사과를 이리저리 돌려 놓으면 아래쪽도 익힐 수 있는데 홍로는 꼭지 부분이 약해 손을 대면 떨어지기 십상이다. 열매에 손을 안 대고 아래쪽을 익히기 위해 필름으로 태양광을 반사시킨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이어 “올해의 경우 다음 달 5일에서 15일 사이에 출하해야 가장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며 “추석용으로 출시 시기가 딱 정해진 홍로는 한마디로 ‘만들어내는 사과’여서 손이 많이 간다”고 설명했다.



"이만큼은 커야 할 텐데…." 26일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소내리에 있는 배 과수원에서 농민 이용곤씨가 한파와 폭염으로 잘 못 자란 배를 정상 크기의 배와 비교해 보고 있다. [사진 이마트]
 예년보다 보름 이상 빨리 찾아온 ‘여름 추석’에 과수농가·유통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추석 대목은 과수농가와 유통업체의 한 해 실적을 좌우한다. 이마트가 지난해 판매한 사과 700억원어치 가운데 26%가 추석 선물용·제수용으로 판매됐다. 배는 연 매출 400억원 가운데 33%가 추석 대목 때 팔렸다. 이 때문에 ‘여름 추석’을 맞아 과수농가는 ‘과일 빨리 키우기’에, 유통업체는 ‘과일 물량 조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외국산 과일은 평소 20~30%의 성장세를 보이며 국산 과일을 대체해 왔다. 그러나 수입과일은 조상께 바치고 이웃과 나누는 명절용 과일로는 사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산 사과·배의 수요가 명절이면 급증한다는 얘기다.



 유통업체는 그래서 품질 좋은 국산 사과를 확보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마트의 경우 직접 구입하는 추석 선물용 사과를 해발 4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생산된 사과로 전량 채우기로 했다. 사과나무는 여름철 한낮 고온에서 광합성을 한 뒤 밤에 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면 영양분을 열매로 보낸다. 일교차가 적당히 있어야 열매의 경도와 당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밤 기온이 25도가 넘는 열대야가 많아 열매가 자라는 속도가 더뎠다. 이 때문에 밤 기온이 25도를 넘지 않는 해발 400m 이상 지역 상품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이마트 과일 바이어들은 스마트폰에 ‘트레커를 위한 고도계’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놓고 과수 농가를 찾아가면 고도 측정부터 한다. 고도를 통해 사과의 상태를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하는 것이다. 이마트 신선식품 바이어 최지윤(39)씨는 “홍로는 경도가 낮아 푸석푸석하게 씹히면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단단하고 아삭아삭하게 여무는 고산지방 홍로가 상품성이 상대적으로 좋다”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지난해에도 저지대에서 사오던 포도를 전북 남원 산간지방 포도로 확대했다. 열대야에 저지대 포도가 물러져 상품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유통업계에서 날이 더워지면 과일 담당 바이어가 산으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사과에 비해 빨리 익히기에 한계가 있는 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6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소내리에 있는 3만3060㎡(약 1만 평) 규모의 배 과수원 ‘호연농원’에서 이용곤(50)씨는 열매를 만져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야구공만 하게 익은 배를 쥐고 “배 농사 30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맘때면 배에 씌워놓은 종이 봉지가 빵빵할 정도로 차올라야 추석 선물세트를 만들 수가 있는데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다. 이 사장이 봉지를 손으로 쥐자 ‘바삭’ 소리가 나면서 찌그러질 정도였다. 배가 덜 커 빈 공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성인남자 주먹만 한 배를 보여주면서 “추석이 3주 앞이면 적어도 이 정도 크기로 자란 상품이 20%는 돼야 하는데 현재 5%밖에 안 된다”며 “그나마 단맛도 덜해 큰일”이라고 말했다. 배도 일교차가 커야 당도가 높아지는데 열대야 때문에 단맛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배 농가에는 한파·폭염·가뭄에 이른 추석까지 사중고(四重苦)가 겹쳤다. 첫 시련은 봄 한파였다. 4월 하순이면 피던 배꽃이 5월 중순에야 폈다. 꽃이 핀 것도 늦었는데 빨리 지지도 않고 보름 넘게 버텨서 배 농사꾼들의 애를 태웠다. 그나마 뒤늦게 열매가 많이 열리고 병충해를 무사히 넘겨 대풍(大<8C50>)을 꿈꿨지만 폭염이 찾아왔다. 이씨는 “오늘도 새벽 6시부터 일꾼들이 배밭에 나왔다. 원래 오전 8시부터 작업인데 해가 뜨고 나면 너무 더워 일을 못해 새벽녘에 잠깐씩 일을 한다”고 했다. 이씨는 “올여름처럼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가 오래 이어지고 열대야도 심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한 병에 5만~10만원 하는 영양제를 다섯 번이나 줬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호연농원은 다음 달 5일에 첫 수확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러나 상품 가치가 있을 만한 배는 20%가 안 될 전망이다. 이씨는 “9월 하순까지 기다리면 열매가 제대로 자라긴 하겠지만 배는 추석 선물세트로 내놓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10월 들어 한꺼번에 배가 출하되면 가격도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씨는 올해의 경우 예년보다 수익이 30%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제수·선물용 사과·배 출하에는 막판 변수가 하나 더 있다. 가을 태풍이다. 태풍이 산지를 휩쓸면 다 키워놓은 열매들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진다. 농가는 그나마 지은 한 해 농사마저 망치게 되고, 소비자들은 한 알에 5000~1만원을 오가는 ‘금 배, 금 사과’를 사먹어야 한다. 실제로 2010년에 태풍 ‘곤파스’, 지난해엔 ‘볼라벤’이 휩쓸고 가면서 추석 사과·배 가격이 급등했다. 이렇다 보니 유통업체들은 현재 추석 선물용 카탈로그에 과일 가격을 정확히 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마트 카탈로그에는 사과 선물세트 가격이 7만9000~9만4000원으로 적혀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명확한 숫자 대신 범위로 표시해 혹시 있을지 모를 막판 태풍 변수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수(전북)=박태희 기자, 안성(경기)=구희령 기자





관련기사

▶ 과일 뺀 제수용품 5만7000원 예상…한우값 내릴듯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