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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 벤처’ 보여준 특급 흥행사

광고 제작자에서 영화·방송 제작자로 변신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제리 브룩하이머.
과학수사물 CSI 시리즈로 TV드라마 새 지평 … ‘캐리비안의 해적’ 등 블록버스터 제조기



글로벌 파워피플 ⑭ 영화·방송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

6월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불러바드 6838번지 엘 캡틴 극장 앞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할리우드 상공회의소 회장인 레런 거벌러의 연설이 한창이다.



“전 세계 수천 만명의 관객과 시청자가 그의 영화와 드라마를 즐겼습니다. 그의 블록버스터 작품은 전 세계 관객을 매력적인 제작의 세계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런 분을 전설적 명예의 거리에 모시게 돼 자랑스럽습니다.”



영화·방송 등 분야에서 활약한 스타가 명예롭게 흔적을 남기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날 2501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사람이 있었다.



할리우드 상공회의소는 매년 24명 내외의 스타를 선정해 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명패 제작과 개막식, 보존을 책임진다. 이날의 주인공은 제리 브룩하이머(70). 그는 배우나 감독이 아니다. 제작자다. 제작자는 영화·방송의 최고경영자(CEO)나 다름없다.



영화·방송을 기획하고 투자금을 모은 뒤 이를 바탕으로 감독·배우·작가·스태프를 섭외·조직·가동해 작품을 만든다. 이를 영화관이나 방송국에서 상영 또는 방영되도록 만드는 예술 경영인이다. 브룩하이머는 영화 제작 40년의 업적을 인정받아 이날 명예의 거리에 입성할 수 있었다.



방송으로도 입성할 수 있지만 그는 영화 부분으로 이곳에 입성했다. 이날 그는 동석한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패를 제막했다. 존 보이트, 톰 크루즈 등 유명배우도 축하객으로 대거 참석했다.



1970년대 초에 광고업계에서 펩시 등의 광고를 제작하던 그는 1972년부터 40년 동안 40편 넘는 영화를 제작했다. 그가 제작한 영화로 벌어들인 수입은 자그마치 160억 달러(한화 17조9000억원)가 넘는다.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전설의 할리우드 배우 겸 프로듀서 돈 심슨과 함께 ‘플래시댄스’ ‘탑건’ ‘배드보이즈’ ‘크림슨타이드’ ‘더록’ 등을 제작했다. 1996년 심슨이 세상을 떠난 뒤 ‘콘에어’ ‘아마겟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진주만’ ‘블랙호크 다운’ 등을 제작했다. 한결 같이 눈에 익은 히트작품이다.



특히 2003·2006·2007·2011년 연속으로 내놓은 총 4편의 ‘카리브해의 해적’ 시리즈에서 약 9억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모두 37억277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야말로 ‘할리우드의 미다스 손’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고부가가치의 거대 기업을 운영하는 회장이나 다름없다. 2003년 브룩하이머는 한 주말에 흥행 1위와 2위 영화를 동시에 내놓은 사상 최초의 제작자로 기록됐다. 바로 ‘카리브해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와 ‘배드 보이즈2’였다.



영화제작 공로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성공과 인기에는 돈이 따르게 마련이다. 2006년 ‘카리브해의 해적-망자의 가슴’을 제작할 때 그는 기본 500만 달러에 일정 이상의 수입을 올릴 경우 수익 배분까지 약속 받았다. 2010년 ‘마술사의 제자’를 만들 때는 1000만 달러를 받았다. 할리우드 스타도 10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은 가운데 그는 ‘1000만 달러 제작자’가 된 것이다. 물론 흥행 성공 때 수익 배분은 별도였으나 이 작품은 그가 제작한 작품으로는 드물게 큰 돈은 벌지 못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브룩하이머는 지난해 1억1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재산은 6억5000만 달러다.



돈뿐만 아니라 명예도 얻었다. 아카데미 상에 41차례 후보에 올라 6개의 상을 받았다. 그래미 상엔 8차례 후보에 올라 5번 수상했으며 골든 글로브 상에 23차례 후보로 지명돼 4차례 상을 받았다. 에미 상에도 113차례 후보에 올라 22번 상을 탔다. 그가 제작한 작품들이 흥행성은 물론 작품성과 완성도까지 인정 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1997년 방송 드라마 제작에 뛰어든 그는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영화 못지 않은 명성을 얻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과학 수사물 CSI 3종 세트가 그의 작품이다. 2000년 10월6일 미국 CBS 방송에서 첫 전파를 탄 오리지널 작품 CSI-라스베이거스(원제는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를 비롯해 자매시리즈인 CSI-마이애미와 CSI-뉴욕을 제작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CSI는 이전 범죄 드라마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구성과 설정이 독특하고 신선한데다 과학 수사라는 강한 개성을 가진 특유의 아이템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른 범죄 드라마처럼 액션과 플롯·추리도 가미했으나 이 장르에서 이전까지는 보기 힘든 물증과 과학 수사를 드라마의 중심에 배치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CSI에서는 모든 범죄가 물증을 중심으로 해결된다는 공식이 있다. 물증과 관련한 현란한 그래픽도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도입부에서 범죄 장면을 시청자에게 과감하게 공개한다는 특징도 있었다. 이를 토대로 시청자들은 연역법이 아닌 귀납법으로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이에 따라 드라마는 극적인 반전과 기막힌 배경을 수반했다. 시청자들이 반하고 몰입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성이다. 어떤 범죄극·스릴러물에서도 이렇게까지 과감한 혁신은 드물었다.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에 대한 철학적이고 품위 있는 접근도 시리즈의 인기 요인이 됐다.



이에 따라 3종의 시리즈는 모두 엄청난 ‘중독성’을 자랑했다. 전세계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일반 관객은 물론 두터운 매니어층, 심지어 상당한 ‘폐인층’까지 거느렸다. 이 작품들은 전 세계에 CSI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과학 수사에 대한 관심과 엄청난 붐을 일으켰으며 특히 DNA 검사에 의한 증거 확인에 대한 신뢰는 물론 과도한 의존증까지 불러왔다.



특히 부검과 해부를 생생하게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얻은 증거의 유용성을 강조해 일반인의 거부감을 크게 완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실제 과학 수사에선 이렇게까지 다양하고 수준 높은 기기를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게 미국 일선 경찰의 볼멘 소리다. 엄청난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선 현실에서 예산 때문에 도입되지 않거나 과학적으로 초기 실험 단계에 있는 최신 분석기기까지 소개했다.



오리지널 작품인 CSI-라스베이거스는 TV 역사상 가장 성공한 ‘벤처’로 평가 받는다. 브룩하이머의 과감한 혁신과 도전이 미국 드라마 역사를 바꿔놓은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지난 7년 중 5년에 걸쳐 가장 많이 본 TV 쇼로도 기록됐다.





CSI 3종세트로 ‘미드’의 제왕 군림



자매 시리즈까지 나와서 3종이 동시에 방영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운 것은 오리지널의 엄청난 인기에 따른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서로 다른 자매 시리즈에 대한 캐릭터들의 합동 출연도 이뤄져 화제를 모았다.



다른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도시로 출장을 가는 식으로 서로 다른 드라마 속 주인공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자매 시리즈들은 각각 9~10 시즌으로 종료됐으나 오리지널은 올해 3월 CBS에 의해 시즌 14 방영까지 결정됐다.



CSI의 인기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CSI 자매 시리즈는 전 세계로 수출됐다. 2009년 전 세계에서 7380만명이 CSI를 즐긴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CSI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방송 드라마로 기록됐다. 지난 7년 새 5번째 있는 일이다. 서로 문화권이 다른 지역을 관통해 이룬 기록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브룩하이머는 제작자로선 드물게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드라마가 극적으로 최고조에 이른 순간 끝나면서 곧바로 ‘제작: 제리브룩하이머’라는 자막이 뜨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전 세계 시청자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됐으며 인기의 보증수표가 됐다.



CSI는 다양한 부가 수입도 올렸다. 미국 시카고의 과학산업발물관에서 CSI전시회가 열려 큰 인기를 누렸다. 일련의 관련 책자도 나와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비디오 게임도 여러 종류 출시됐다. 드라마·책·비디오게임이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수출됐다.



브룩하이머는 CSI는 물론 또 다른 스릴러물도 여럿 제작했다. 특히 미국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장기 미제(未濟)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들을 그린 ‘콜드 케이스’는 미국 현대사의 질곡과 과학 수사를 결합시킨 독특한 작품으로 인기를 모았다. 9차례(이 가운데 8차례는 연속) 에미 상을 수상한 ‘어메이징 레이스’와 ‘위다웃 어 트레이스’도 인기몰이 중이다. 올 가을에 그는 새로운 스릴러물인 호스티지를 첫 방영할 예정이다.



유대계 독일인의 후손으로 미국의 자동차 공업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브룩하이머는 강한 자기 철학을 가진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내가 평론가나 다른 사람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면 지금쯤 할리우드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소수 평론가의 구미가 아닌 다수 대중의 취향과 요구를 존중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고집스레 제작해왔다는 의미다. 이는 곧 흥행 비결이 됐다. 하지만 단순하게 대중의 취향을 뒤따라가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니까 관객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제작해왔으며 이 둘은 늘 일치해왔다. 하지만 나는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나 스스로 보고 싶어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그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영화는 운송업에 속한다. 관객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니까 말이다”라는 독특한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브룩하이머는 아버지의 충고대로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을 즐기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늘 일을 하면서 그 일을 즐기려고 했다. 일에 아무리 매진해도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인생을 즐겁게 살지 못하며 하는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내 아버지는 일생동안 세일즈맨으로 일했으나 이는 그분이 진짜로 좋아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매년 2주간의 휴가를 기다렸으며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네가 뭘 하든 네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해라. 매년 휴가나 기다리지 말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일을 좋아한다.” 그에게 아버지는 삶의 지표였다. “나는 아버지가 산 것과 비교하면 내가 일을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발이 닳도록 걸어 다녔다.”



하지만 그는 진지한 사람이다. 모든 일에 비장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내 성공은 단 하나의 두려움에서 비롯했다.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영화 제작 때마다 이게 마지막 작품이라고, 아무도 보러 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며 만든다. 나는 그러다 죽을까 겁이 났다”는 말도 했다.



죽은 장르 되살린 창의와 도전정신



오늘날 그를 만든 것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인 사고 방식이다. 다음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혁신성을 짐작할 수 있다. “탑건과 카리브해의 해적은 서로 다르지 않다. 사실 매우 비슷하다. 왜냐하면, 둘 다 죽은 장르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조종사 영화는 모두 실패했으며 해적 영화는 오랫동안 죽었다. 우리는 이들에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오늘날 제리 브룩하이머를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는 말이다.



한때 잘 나가던 자동차 도시였으나 굴뚝 산업의 몰락으로 지난 7월 시청이 파산한 디트로이트 출신이란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산업을 계속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리 부자 나라라도 국부가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미국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로 닷컴 산업뿐 아니라 항상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50대 후반의 나이에 젊고 창의적인 CSI의 제작에 나선 브룩하이머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나게 된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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