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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이 투자 안전벨트라더니 … 1300억 날릴 판

시민들의 개인 투자자금 1000억원이 들어간 서울 도봉구 ‘창동민자(民資)역사’ 개발사업이 기로에 섰다. 사업 주관사에 대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인가 말 것인가다. 창동역사 개발사업을 총괄하는 코레일이 최근 개인 투자자들에게 법정관리 신청에 동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반대다. 법정관리를 하면 파산할 게 불 보듯 뻔하고, 그렇게 되면 개인 투자자 1000여 명은 돈을 전부 날린다는 이유다.



지난 23일 서울 창동민자역사(사진 뒤쪽 철골 건물)에 투자했다 피해를 보게 된 투자자들이 공사가 3년째 중단된 상태인 현장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안성식 기자]


[이슈추적] 서민 투자자 울리는 골칫덩이 민자역사
민자 20곳 중 5곳 문도 못 열어
주관사 대주주 수백억 횡령 등
창동 파산 위기, 노량진 파산 신청

2005년 배포된 창동민자역사 투자 홍보 전단. ‘한국철도공사(현 코레일)가 투자 안전벨트를 매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손실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26일 창동역사 투자자 모임인 ‘창동민자역사계약자총협의회(이하 계약자협)’와 코레일에 따르면 코레일은 지난달 개인 투자자들을 만나 “9~10월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신청을 하지 않으면 결국 파산 처리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개인 투자자들은 “법정관리로 갈 게 아니라 코레일이 책임을 지고 살려놔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창동역사가 법정관리 위기에까지 몰린 것은 사업 주관사 대주주의 횡령·배임 때문이다. 창동역사는 2001년 일찌감치 개발이 추진됐다. 낡은 역사를 상가·대형마트·영화관 등이 들어서는 대형 복합시설로 바꾼다는 계획이었다. 서울역과 영등포역처럼 민자로 추진하는 방식을 택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역사 내 상가 분양대금을 받아 공사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코레일은 사업 주관사를 선정하고 건축허가를 받아 2004년 말 착공에 들어갔다. 개인 투자자도 모았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0년 문제가 터졌다. 사업 주관사 대주주인 김모(46)씨가 개인 투자금을 담보로 310억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데다 투자금 30억원을 빼돌리기까지 한 게 들통 났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길도 막혔다. 결국 시공업체 ㈜효성에 중간 대금 200억원을 주지 못하면서 그해 10월 공사가 중단됐다. 지금 창동역사는 건물 쇠기둥을 드러낸 채 약 3년 전 공사를 멈췄을 때의 모습 그대로 흉물스럽게 방치된 상태다.



 사업이 중단되자 개인 투자자들은 걱정에 휩싸였다. 계약자협을 만들어 코레일과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3년이 다 돼가도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 코레일이 법정관리 카드를 꺼내들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안 될 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코레일이 추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창동역사 사업은 재개가 불가능하다. 결국 법정관리 신청을 하겠다는 건 파산시키고 코레일은 발을 빼겠다는 의미”라는 게 투자자들의 생각이다.



◆장애인 아들 먹고살게 하려 투자했는데=민자역사 중에 문제가 생긴 것은 창동역이 처음이 아니다. 코레일이 추진한 전체 20개 민자역사 중 5개가 아예 문도 못 열고 있다. 서울 노량진역사는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파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엔 시민 200여 명이 300억원을 투자했다. 노량진역사 개발 역시 비리 때문에 좌초됐다.



사업 추진을 위해 만든 노량진민자역사㈜ 대표 김모(64)씨가 개인 투자금 등 350억원을 횡령해 달아났다. 어떻게든 개발 사업을 재개해 보려던 개인 투자자도 결국 포기하고 파산 신청을 내 현재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민자역사 투자자 상당수는 재산을 털고, 빚까지 낸 서민들이다. 1급 시각장애인 이모(42)씨의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그의 어머니가 창동역사에 투자한 건 2008년. 시각장애인 아들과 함께 서울 상계동 10평짜리 전셋집에 살 때였다. 20년간 부은 연금보험을 깨고 전세금을 담보로 2000만원 대출을 받아 5000만원을 마련했다. “상가를 분양받아 30년간 임대료를 받으면 아들 생활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돈은 지금 허공에 뜬 상태다. 게다가 어머니는 급성 백혈병에 걸려 지난해 12월 세상을 떴다. 이씨는 “앞 못 보는 자식 걱정에 어머니가 아직도 이승을 맴돌고 계실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 박모(57)씨도 창동역사 투자 피해자다. 빚을 내 2억원을 투자했다가 지금은 빌린 돈을 갚으려 아파트를 처분하고 연립주택으로 옮긴 상태다. 그는 “당뇨병 때문에 몸이 편치 않지만 원금을 갚으려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50)씨는 10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 모은 돈 7000만원을 노량진역사에 넣었다가 대부분 날리게 됐다.



 재산을 턴 서민 투자자들이 많은 이유는 공공기관인 코레일을 보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민자역사 사업 주관사 측은 홍보전단에 ‘코레일이 투자 안전벨트를 매어 준다’는 문구를 넣어 투자자를 모았다. 이에 대해 코레일 측은 “코레일과 논의 없이 홍보전단에 그런 문구를 넣은 것”이라며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안 뒤 문구 삭제를 요구했다”고 해명했다.



 창동역사 투자자 200여 명은 “얼마 전 또 날벼락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5월 우리은행 창동지점으로부터 “대출 이자가 연체됐으니 얼른 납부하라”는 연락을 받은 것. 중도금 대출이 문제였다. 이들은 아파트 분양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중도금 대출 이자는 사업 주관사 측에서 부담한다’는 말을 믿고 대출을 받았다. 그 와중에 주관사가 무너졌다. 그러자 은행에서 “시행사가 이자를 갚을 능력이 없는 만큼 개인 대출자들이 원채무자로서 이자를 내야 한다”고 나온 것이다.



◆투자자 “코레일 책임” 코레일 “우리도 피해”=민자역사에서 문제가 거듭되자 개인 투자자들은 코레일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노량진역사 투자자 66명은 지난해 코레일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청구소송을 냈다. 창동역사 투자자 220여 명도 지난해 코레일을 상대로 공사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투자자들 입장은 “실질적으로 사업을 주도한 코레일이 주관사를 잘못 선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 역사개발처 심명구 부장은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주관사) 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평가를 거쳐 뽑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오히려 창동에 15억원, 노량진에 5억원을 투자한 코레일도 피해자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투자자들은 특히 능력이 부족한 소규모 업체를 코레일이 주관사로 선정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한다. 롯데·한화 같은 대기업이 나선 민자역사는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 측은 “대기업 위주로 선정하다 보니 특혜 시비가 생겨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도 포함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 차원 문제 해결기구 설치 시급”=코레일은 자체적으로 ‘신용 B등급, 납입자본금 100억원 이상’이라는 주관사 선정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졌을 때 창동·노량진역사는 이런 기준을 어기고 주관사를 선정했다는 게 개인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실제 창동·노량진역사 주관사는 납입자본금이 10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이를 보완하려 창동은 쌍용건설, 노량진은 진흥기업 같은 중대형 건설사와 컨소시엄을 이뤘다. 계약자협 측은 “일종의 편법으로 주관사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이런 식으로 주관사가 됐지만 추후 쌍용건설과 진흥기업이 컨소시엄에서 빠져나가면서 결국 코레일은 자격 미달업체를 주관사로 뽑은 셈이 됐다.



 코레일은 나름대로 감시 시스템을 만들었다. 창동·노량진역사에 감사·이사로 총 4명을 파견한 것. 모두 코레일 퇴직 임원이었다. 그러나 비리는 비리대로 저질러졌고, 결국 코레일은 “감독은 못 하면서 퇴직자 자리만 마련해 줬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창동과 노량진을 합해 1200여 명, 1300억원의 개인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지만 코레일을 관장하는 국토교통부는 아직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 국토부 신광호 철도운영과장은 “민자사업은 코레일과 민간 사업자가 협약을 체결해 추진하는 것으로 정부가 나서 세부적인 것까지 감시·감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승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자사업 추진에 보다 신중을 기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민간과 공공기관이 참여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법제화된 정부 차원의 기구 설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글=권철암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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