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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타령은 헛소리 … 불행에 대한 면역력 키워라

비교정신분석 전문의 이나미 박사는 “정신치료의 목적은 상담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우리의 성장을 위한 큰 자양분임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동서양의 고전과 철학을 관통하는 단어 중 하나는 마음이다. 이 과녁을 정면으로 겨누는 학문이 있다. 심리학(心理學)이다. 고장 난 차를 끌고서 카센터에 가는 심정이었다. ‘마음 엔지니어’의 진단은 어떤 걸까.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지름길은 어떤 걸까.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③ 심리학의 역설 -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23일 서울 강남에서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52) 박사를 만났다. 그는 심리학 중에서도 칼 구스타프 융 계열의 분석심리학 전문가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따로 없었던 프로이트와 달리 융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 박사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심리학은 물론 노자와 장자, 주역 등의 동양철학과 세계 종교에 대한 내공도 탄탄했다. 그는 “할아버지께서 한학자셨다.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 대신 책꽂이에 꽂힌 『논어』를 꺼내서 읽곤 했다. 뭔지 모르지만 재미있었다. 내게 큰 자양분이 됐다. 동양철학을 알수록 서구 심리학의 숲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다.





이 박사는 상담 경험이 풍부하다. 대형병원에 있었을 때는 입원 환자만 100여 명, 개인병원을 연 뒤에도 하루 30~40명씩 봤다. 그걸 27년째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상처 전문가’다. 찌그러진 범퍼만 봐도 치유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에게 ‘마음 심(心)’자를 물었다. 글자에 담긴 아픔과 생채기, 그리고 행복의 코드를 함께 물었다.



 - 다들 자신의 마음을 운전한다. 수시로 접촉 사고가 생긴다. 어떡하면 상처를 피할 수 있나.



 “나도 허덕이며 애쓰고 있다.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있나. 없다. 마찬가지다. 상처를 안 받는 사람은 없다. ‘나는 지금껏 상처를 받은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 왜 그게 심각한가.



 “사람은 다 다르다. 어차피 갈등이 있다.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건 갈등 상황에서 양보를 안 했다는 얘기다. 그럼 상처받을 일이 없다. 대신 주위에 상처를 많이 줬다는 얘기가 된다.”



 잠시 생각에 잠긴 이 박사는 “상처를 받아야 인간이다”고 말했다. 의외였다. 다들 피하려고 난리니까. 특히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학교에서, 놀이터에서, 학원에서 행여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나. 그런데 이 박사는 “그래야 사람이다”고 했다.



 - 자식의 상처를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은 찢어지지 않나.



 “아이들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크면서 장난감을 계속 끼고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는 그걸 버려야 한다. 그럼 그게 아이한테 상처일 수 있다. 그렇다고 30세, 40세까지 장난감을 안고 살 건가. 그럼 어른이 안 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통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박사는 그걸 성장통이라 했다. 작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통(痛·아픔)’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아프다”고 소리치며 피하려 한다. 그는 달랐다. ‘통’이 아니라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반장 선거철이다. 부모는 대개 아이가 반장이 되길 바란다. 떨어지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꼭 될 거야’라고 위로한다. 이번이든, 다음이든 반장이 되는 것에 중심을 둔다. 그게 아니다. 반장에서 떨어진 아이가 받는 실망과 상처에도 큰 의미가 있다. 그걸 아이가 이겨낼 때 얼마나 대견한가. 그런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아이가 성장하는 거다. 그걸 부모가 알아야 한다.”



 - 그걸 아는 게 왜 중요한가.



 “가령 몸에 종기가 났다고 하자. 어떤 이는 면역세포가 종기를 잡아먹어서 저절로 없어진다. 어떤 사람은 수술을 해서 없앤다. 또 어떤 사람은 종기 때문에 패혈증이 와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 차이가 생긴다.”



 - 왜 그런 차이가 생기나.



 “면역력 때문이다.”



 - 어떡해야 면역력을 키울 수 있나.



 “예방주사 맞는 거랑 똑같다. 결국 항원이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필요하다. 그게 항체를 키우는 원인이다. 몸에도 항원이 필요하지만 마음에도 항원이 필요하다.”



 - 그 항원이 뭔가.



 “자잘한 상처들이다. 우리가 삶의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를 겪고, 이겨낼 때 항체가 생겨난다. 그건 다음에 닥쳐올 더 큰 상처를 이겨내는 항체가 된다. 이게 핵심이다. 그러니까 상처가 그저 상처만은 아니다. 고통 자체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큰 자양분임을 진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박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종갓집 맏며느리다. “시집을 갔는데 제사가 1년에 12번이었다. 매달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다 보면 진이 다 빠졌다. 가장 큰 고통은 퇴근해서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는 것이었다. 일하는 아줌마도 부르지 않았다. 병원일보다 집안일이 더 힘들었다. 쓰러질 지경이었다.”



 하소연을 했더니 친정 어머니는 “걸레가 도 닦는 도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 박사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걸레질이 내겐 수행이다. 이걸 통해 내가 성장한다.” 그랬더니 달라졌다. 쌓인 빨랫감을 봐도 예전처럼 짜증이 나지 않았다. 집안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러나 고통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는 확신이 들자 고맙게 느껴졌다. 고통을 대하는 눈이 달라진 거다. “지금은 제사음식 전문가가 됐다. 웬만한 집안일은 스트레스 없이 해치운다. 내가 그렇게 성장한 거다.”



 사람들은 대개 나무의 상처 없는 성장에만 매달린다. 게다가 더 높이 키우지 못해 안달이다. 그런데 융 학파는 성장보다 깊이를 중시한다. “땅 위의 나무는 아름답다. 잎도 있고, 꽃도 피고, 새가 둥지도 튼다. 그런데 땅 속은 캄캄하다. 벌레도 많고, 바위투성이에, 공기도 희박하다. 그래도 뿌리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뿌리로 내려간 만큼 위도 자라는 거다. 그래야 나무가 건강해진다.”



 - 외적인 성장보다 내적인 깊이를 중시한다. 융 심리학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런데 끝이자 다시 시작이라는 거다. 융 심리학은 삶을 나선형의 순환이라고 본다. A라는 상처가 치유됐다. 그게 끝인가. 아니다. B라는 상처가 다시 온다. 아니면 A2라는 상처가 오든지.”



 - 예를 들면.



 “가령 내가 애인이랑 헤어졌다. ‘이게 끝인가? 그럼 나는 죽어야 하나?’가 아니다. 그 애인이랑 한 채프터(章) 가 끝난 거다. 그리고 또다시 한 채프터가 시작하는 거다. ‘난 다시는 연애를 안 해’라든지, ‘다른 애인을 찾을 거야’라든지. 엄청난 성공을 해도 마찬가지고, 어마어마한 실패를 해도 똑같다. 삶의 한 채프터가 끝날 뿐이다. 그럼 굉장한 성취를 한 뒤에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힘이 생긴다. 그게 회복력이다. 이걸 모르면 우울증이 온다.”



 - 그럼 융은 무엇이 행복이라고 했나.



 “영어로 얘기하면 더 명쾌하다. 플레저(Pleasure)와 해피니스(Happiness), 그리고 조이(Joy)가 있다. ‘플레저’는 감각적인 쾌락이고, ‘해피니스’는 정신적으로 기분이 좋은 거다. 그리고 ‘조이’는 깊은 깨달음의 즐거움이다.”



 - 셋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플레저’는 케이크를 먹는 것과 같다. 첫 한 입은 정말 맛있다. 그런데 열 입쯤 먹으면 질린다. 케이크 열 개를 먹으라면 다들 죽을 거다. 섹스도 그렇고, 마약도 그렇다. 모든 즐거움이 다 그렇다. ‘해피니스’를 강조하려면 코미디를 많이 보면 된다. 그런데 ‘조이’는 전제가 있다. 바로 고통이다. 깊은 고통을 통과해야 조이를 얻는다. 그래서 조이는 흔들리지 않는다. 기쁨이 나의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럼 어떡해야 행복해지냐?”는 물음에 이 박사는 답을 했다. “사람들은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헛소리라고 본다. 우리는 행복한 동시에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둘 다 가질 수 밖에 없다. 그게 우리의 운명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거다. 불행이 없으면 행복이란 개념도 없는 거다. 관건은 어떡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가 아니다. 내 안에 이미 있는 행복과 불행을 얼마나 잘 볼 수 있느냐, 잘 꾸려갈 수 있느냐다. 그게 핵심이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나미 박사=서울대 의대 박사.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를 취득했다. 뉴욕 신학대학원 목회신학 강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외래 부교수, 한국 융 연구소 교수, 이나미 라이프 코칭 대표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오십후애사전』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등이 있다.



이나미 박사의 추천서



“상담자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주로 뭔가?”라고 물었다. 이나미 박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상담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전체를 못 본다. 그 안에 빠져서 일부만 본다. 분석가는 상담자의 뒤, 다시 말해 그림자를 보게 해주는 거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어땠나, 그 사람과 과거의 남자친구는 어떻게 다른가, 또 부모님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이렇게 묻다 보면 그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개의 문이 마구 생겨난다. 상담자는 그런 문들을 통해 다시 사건을 바라보고,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성과 감정, 동양과 서양, 불교와 기독교 등 과학과 종교의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준 책들”이라며 추천서 세 권을 꼽았다.



◆노자와 융(이부영 지음, 한길사)=형식과 출세, 문명과 지식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자와, 역시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을 중시한 융을 함께 공부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에 매여 진짜 자기의 행복을 억압하곤 한다. 이런 태도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파도가 바다다(빌리기스 예거 지음, 양태자 옮김, 이랑출판사)=저자는 독일의 신부이자 참선 마이스터다. 가톨릭의 신비주의적 전통과 동양의 선불교를 깊이 공부했다. 지금은 독일 뮌스터에서 명상센터를 열고 있다. 그의 사상을 요약한 책이다. 자아와 욕망을 붙들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아우성치는 한국인에게 권하고 싶다.



◆과학과 종교 : 과연 무엇이 다른가(알리스터 맥그레스 지음, 정성희·김주현 옮김, 도서출판 린)=과학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도그마에 빠진 교파적 종교를 극복하는 데 큰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관점의 종교성과 과학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한다. 내가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좁은 견해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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