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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어느 낙천주의자의 비밀 노트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집안도 부유하고 사회적 명성까지 있는, 태어날 때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친구가 한 명 있다. 1970년대 말. 졸업하자마자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난 지 1년 후, 서울에 다니러 온 그 친구. 며칠 후에 유학길에 오를 우리 부부는, 그곳 생활이 어떤지 궁금해 그녀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고생스럽고 고달프단다. ‘외국 가면 행복 끝 불행 시작이야. 여기 있을 때 행복한 줄 알고 잘 즐겨. 가면 고생바가지인걸.’ 우리 둘은 불안에 떨며 우울한 마음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글쎄다. 살아보니 정신적으로는 많이 외로웠지만 육체적으로는 그다지 괴롭고 고생스럽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서울에 다니러 온 우리는 곱창집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내가 또 물었다. 난 외국 생활이 그다지 고생바가지도 아니고 괴롭지도 않던데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를.



 ‘일일이 빨래도 다 혼자 해야 하고, 시장도 혼자 봐야 하고, 외식할 곳도 마땅치 않고, 집안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유학생이라면 당연히 직접 해야 하는 그런 일들. 친구와 난, 받아들이는 게 많이 달랐나 보다. 그 당시 내게 미국 생활은 천국과도 같이 편한 곳이었기에 말이다.



 서울에서의 빨래와 청소와 시장 보기. 그 시절의 세탁기는 모두 수동이었던 탓에, 옆에 지켜 서서 물도 틀었다 잠갔다 해야 했고 세탁이 끝나면 뒤죽박죽 세탁물이 엉켜 옷이 다 구겨지는 까닭에, 수건이나 속옷 빨래만 세탁기를 사용할 때였다. 진공청소기는 나오기도 전이라서 일일이 방마다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아야 했고, 시장이라 해봐야 지금의 재래시장이 전부였으니 가게마다 구비해 놓은 게 달라서 여러 곳을 모두 걸어 다녀야 다 살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에 비해 미국에서는 ‘큼직한 전자동 세탁기가 빨래를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어서 빨래하자마자 신기하게도 금방 입을 수도 있고, 청소는 손으로 가볍게 밀기만 하면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여 깨끗하게 해주고, 시장은 24시간 열려 있는, 창고만큼이나 커다란 수퍼마켓에 가면 없는 게 없고 값도 저렴하고, 외식은 서울에서 구경도 못해 본 피자며 바비큐며 고기를 싸게 먹을 수도 있으니 행복하고…’.



 내겐 큰 행복이었던 이런 것들도, 일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줄줄이 있던 그녀에겐, 아무리 기계가 다 빨아주고 청소해 주고 물건들이 넘쳐나는 24시간 열리는 시장이 있더라도, 낯선 나라에서 혼자 직접 해야 했다는 것 자체가 다 ‘고생바가지’였던 거다.



 찬란했던 과거와 비교하면서 외국 생활이 불행하고 힘들다던 그녀와, 평범했던 과거와 비교하면서 편해진 살림살이 덕분에 행복하다 했던 나. 무엇과 비교했느냐에 따라 이렇게 행복과 불행으로 나뉜다는 걸 그때 새삼 알았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연봉은 2만5000유로인데 당신의 연봉은 5만 유로인 경우가 1번이고, 주변 사람들은 20만 유로인데 당신은 10만 유로인 경우가 2번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느 경우를 더 좋아하는지를 물었단다. 실험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이 1번을 택했다고 한다. 절대적인 수입과는 상관없이, 적은 연봉이라 할지라도 그 돈이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라면 훨씬 더 좋아하고 만족해한다는 결론이다.



 좋아하고 만족해한다는 건 행복하다는 뜻이다. 내가 얼마를 받든 상관없이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받아야 행복하고 남보다 적게 받으면 불행하다? 나보다 더 받는 사람과 비교한다고 해서 나의 연봉이 오를 것도 아니라면, 나보다 적게 받는 사람과 비교해서 스스로 행복해지면 더 좋지 않을까.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더 힘들었던 과거와 비교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이제껏 살아왔더니, 어느새 나 자신이 낙천주의자가 된 것 같다. 비교대상이 낮으면 낮을수록 나 자신은 더 행복해진다는 진리까지 덤으로 얻었다.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현재를 비관하거나, 잘나가는 사람과 끝없이 비교해 가며 자신을 좌절시키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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