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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상법 개정안,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해야

먼저 두 사례를 비교해 보자. 얼마 전 한 대기업 부회장이 벤츠 버스를 타다 얻어맞았다. “출퇴근 시간을 1시간 아낄 수 있다”는 해명은 소용 없었다. 매서운 사회적 비난에 결국 버스 출퇴근을 단념했다. 이에 비해 미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번호판 없는 벤츠를 고집했다. 이유는 ‘사생활 보호’였다. 잡스의 기행은 신규 차량은 최대 6개월간 번호판을 부착하지 않아도 되는 캘리포니아 법률을 교묘히 악용했다. 6개월마다 똑같은 사양의 벤츠로 바꿔 타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가 한국 경영자라면 순식간에 매장됐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대기업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 아예 ‘대기업 죽이기’로 치닫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행임원제 ▶집중투표제 등이다. 대주주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근사하다. 하지만 사법(私法)인 상법으로 기업 지배구조까지 획일화시키는 것은 무리다. 무차별 경쟁시대에 기업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정반대다.



 우선 상법 개정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실제로 소액주주보다 외국 헤지펀드들이 더 환영할 일이다. 10여 년 전 SK와 KT&G에서 뭉칫돈을 뜯어간 소버린과 칼 아이칸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대주주는 3% 룰에 묶여 의결권이 제한되고, 이들은 대여섯 개의 헤지펀드로 지분을 3% 미만씩 분산해 경영권을 위협했다. 만약 상법 개정안이 그렇게 좋은 법률이라면 왜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로 묶는지도 의문이다. 소액주주 보호라면 오히려 소액주주 비중이 압도적인 자산 2조원 이하로 제한하는 게 맞을 듯싶다. 이미 대기업 지분은 외국자본과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대주주 횡포에는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과연 지금이 적기(適期)인지 따져봐야 한다. 대기업들은 골목상권 보호, 동반성장, 귀족노조 파업 등으로 피로현상을 보이고 있다. 돈을 벌면 쌓아두고, 투자를 하더라도 외국으로 눈을 돌린다. 또한 상법 개정안은 잠재성장률 제고와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 박근혜정부의 국정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상법 개정은 유예기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정치 논리와 반(反) 대기업 정서에 편승해 무리하게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상법보다 형법 개정이 훨씬 시급하다. 최근 대기업 오너들이 배임죄로 잇따라 사법처리되면서 중소기업까지 몸을 사리고 있다. 업무상 배임인지, 아니면 경영상 판단인지 애매해 법원의 자의적 판단에 오락가락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배임보다 경영상의 판단을 폭넓게 인정한 지 오래다. 우리만 배임죄를 확대 해석하는 쪽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 하루빨리 배임죄를 명확하게 교통정리해야 한다. 만약 기업들이 애매한 법률을 의식해 공격적인 경영을 포기한다면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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