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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대통령님께 드리는 변정고언(2)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국민행복, 박근혜 대통령이 말은 참 잘 만들었다. 행복 주고, 꿈을 준다는데 항의할 사람은 없다. 공약을 다 합하면 행복한 그림이 나올 터지만, 자기의 짐을 홀로 감당하는 우리의 현실! 모두 피곤에 절어 있는데 행복은 멀고도 멀다. 행복사회? 5000만의 행복이 아니라 하층 1000만 명에 집중해야 실천 가능하다. 임금노동자 중 월수 200만원 이하가 50%, 100만원 이하도 14%에 달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국민행복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차별제거와 복지다. 이것이 현 정부의 과제인 ‘사회민주화’의 요건이다. ‘차별제거’는 소수·취약집단에 기회균등을 증진하는 것으로 고졸, 여성, 지방대 출신 채용비율을 높이고, 임금과 승진에도 차별을 없애는 적극적 조치다. 한국은 아직 천박한 격차사회다. 복지는 공약 때부터 설계가 잘못됐다. 무상보육, 노령연금, 4대 중증질환, 반값 등록금 모두 최하위 1000만 명에서 시작해 조금씩 확대하는 방안을 취했어야 옳았다. 복지는 소득격차를 줄이는 최선의 방안이고, 사회연대력을 높이는 최고의 윤활유다. 조건이 있다. 복지수혜자가 사회에 헌신하겠다는 윤리적 서약이다. 이것 없이는 납세자의 동의를 받을 수가 없다. 정치적 설득이 빠졌으니 지난번 증세 실패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사용설명서 없이 그냥 납부고지서만 발부받을 때 조세저항이 일어난다. 복지 증세를 ‘행복세’로 명명하고 차분히 그 쓰임새와 효과를 설명해보라. 상위층부터 누진세를 매기고, 아래로 갈수록 세율을 대폭 낮춰 ‘행복사회’에의 능동적 참여를 권유해보라. 왜 증세에 반대하겠는가? 복지는 하층민의 소득을 보전한다. 더 나아가, 기업 생산성을 높여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는 것이 복지다. 왜냐고? 복지는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보완재이기 때문이다. ‘복지는 곧 일자리 창출’이라는 등식이 복지국가를 발전시킨 원리다.



 우선 하층민 1000만 명의 행복을 다 같이 책임져야 행복한국이 온다. 행복미래가 온다. 보수든 진보든, 이런 철학이 없는 나라 한국, 우리는 ‘국민행복’이란 피켓을 들고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의정활동이 탁월한 의원에게 수여하는 백봉상이란 게 있다. 정치부 기자들이 투표로 뽑는 백봉상을 3년 내리 받은 김성식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가 쓴 책 『국회의원 뭐 하는 사람이야?』는 정치반성 일기다. 입법활동을 아무리 왕성하게 해도 ‘소인정치’를 벗어날 수 없고, 총선에서 생환하려면 지역적·이해타산적 쟁점에 매달려야 함을 고백했다. 결과는 ‘대인정치’의 실종. 경제성장, 소득분배, 남북문제-소위 한국 정치가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는 항상 뒷전으로 밀리고, 혹여 쟁점화돼도 계파정치에 휘말리는 것이 한국 정치다.



 그 틈을 비집고 관료들의 은근과 끈기가 영토를 확장했다. 5년마다 바뀌는 정치인은 세입자고, 30년 동안 정밀한 규제와 관행의 거미줄을 쳐온 관료들은 집주인이다. 정치권이 ‘큰 정치’를 향한 생태계 조성에 관심이 없고, 지난 정권을 뒤엎는 신노선을 공언할수록 관료들에게는 약진의 기회가 더 생긴다. 아니 박근혜정부처럼 아예 관료정치에 몸을 맡긴 경우라면 표정관리라도 해야 한다. 청와대는 관료, 율사, 장군, 이 3대 직업군이 장악했다. 국무위원 70%가 이들이고, 외곽 요직에도 포진했다. 관료공화국이다. 공통점은 관행과 절차에 대한 과잉 신뢰, 즉 ‘매뉴얼정치’다. 관료의 바다에 뜬 청와대가 실수는 안 하겠지만, 시대를 바꾸는 혁신 또는 소인정치의 틀을 깨는 변법(變法)과 경장(更張)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유능한 민간전문가들도 관료의 단단한 장벽을 깨지 못한다. 미국은 1980년대 초 금융산업을 창조산업으로 키웠다. 한국에서는 불온산업이다. 그래서 관료들이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감사원, 공정위, 금감원의 삼중 감시 아래 금융산업은 난쟁이가 되었고 시장도 망가졌다. 어디 이것뿐이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주역은 아이디어 천재들, 파격을 좇는 괴짜들이다. 천재와 괴짜는 관료정치의 공적이다. 그래서 관료적 창조, 관료적 문화가 전개될 것이고 거기에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성장, 분배, 통일을 향한 대인정치가 실종되면 관료는 약진한다.



 이대로, 법과 원칙, 규제와 관행하에 무사하겠으나 5년 뒤 한국 사회는 아마 복날 닭백숙처럼 푹 데쳐져 있을 것이다. 꿈틀대는 한국의 창조적 에너지를 가둬놓는 규제의 장벽과 관성의 감옥을 과감하게 부술 주인공은 정치지도자다. 큰 정치에 매진할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홀로 다변(多辯)이고, 각료는 받아 적고, 여야 협주는 없다. 빈약한 내치로 가는 지름길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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