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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강남 김여사' 들의 은밀한 괴담

이철호
논설위원
요즘 돈 많은 강남 주부들 사이에 괴상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다. 우선 “백화점에서 한꺼번에 100만원 이상 신용카드를 긁으면 세무조사 나온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국세청은 “말도 안 되는 뜬소문”이라 펄쩍 뛴다. 이강태 비씨카드 사장도 같은 의견이다. “한 해 카드 결제 건수가 100억 건이 넘는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분석”이란 것이다. 그럼에도 괴담의 기세는 맹렬하다. 올 상반기 신용카드 결제는 전년 동기 대비 2.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율 기준으로 4년 만에 최저치다. 백화점에선 “신용카드 대신 5만원권을 내는 VIP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부자들의 금융 거래 내역을 다 뒤진다”는 이야기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세무조사는 1600건이나 줄었다. 하지만 방식이 문제다. 예전에는 금융기관을 조사할 때 영업장부만 유심히 살폈다. 지금은 자산가들의 프라이빗뱅킹(PB) 거래장부까지 영치(領置)하는 분위기다. PB의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란 고객들은 일단 돈부터 빼고 본다. 4대 시중은행의 거액 정기예금(5억원 이상)은 올 들어 6.8%나 줄었다. 증여세를 우려하는 배우자나 자녀 명의의 계좌가 썰물처럼 빠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강남 김여사’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처럼 실제 돈줄을 쥔 주인공이다. 이들이 몸을 사리면서 돈 가뭄이 극심해지고 있다. 올 들어 유독 급증한 것은 5만원권과 가정용 금고뿐이다. 올 상반기에 5만원권은 4조3894억원이나 늘었고, 홈쇼핑에서 금고는 ‘완판’ 기록을 쏟아냈다. 이렇게 화폐가 퇴장하면서 소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분기 실질경제성장률(1.1%)에 비해 민간소비증가율은 절반 정도에 그쳤다.



 ‘근혜노믹스’가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다. 슬그머니 창조경제는 증발되고 복지·세수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이쯤에서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아베노믹스의 양 날개는 양적완화와 엔약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몸통은 바로 심리다. 인플레를 부추기는 아베노믹스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에 비해 근혜노믹스엔 근사한 표현이 다 담겨 있다. 경제민주화, 경제 활성화, 복지 확대, 일자리 창출…. 그래서 더 알쏭달쏭하고,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우왕좌왕한다.



 근혜노믹스는 두 개의 물꼬부터 터야 할 듯싶다. 우선 313조원의 기업 내부 현금을 국내 투자로 돌리는 것이다. 가계부채에 짓눌린 민간소비를 자극하는 일도 중요하다. 모두 심리에 크게 좌우되는 문제다. 근혜노믹스는 이런 심리 관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어쩌면 기업 유보금이 자꾸 쌓이고, 상반기 설비투자가 8.5%나 쪼그라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강남 김여사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민간소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재정투자를 늘린들 반짝 효과뿐이다.



 만약 근혜노믹스가 성공한다면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해지고, ‘잠재성장률 아래서도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기적이 이뤄진다. 마법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신기루일 뿐이다. 이런 상식을 뒤집고 근혜노믹스가 성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근혜노믹스를 다시 짜는 수밖에 없다.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부터 구체적이고 단순하게 정리해야 한다. 꾸준한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대통령의 취임 6개월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남북 관계와 외교 분야의 업적이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경제 문제다. 지금처럼 혼선이 이어지면 지지율 하락은 시간문제다. 꼭 해야 할 수술이라면 지금처럼 체력이 뒷받침될 때 하는 게 좋다. 첫 구조조정 대상은 복지 공약과 혼란된 경제 정책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강남 김여사들의 반란은 근혜노믹스의 위기를 예고하는지 모른다. 예로부터 괴담은 정책 혼선과 불신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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