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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원 주고 라디오 산 그 기쁨이란 … " 50년간 하루도 안 빼고 일기 쓴 농부

1963년 1월 1일부터 매일 일기를 쓴 김진환씨. 그는 “일기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스승”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아이구, 이게 얘기가 되능교. 그냥 하루하루 생활을 적은 것뿐인데….”



경주 외동읍 김진환씨
흑백TV 첫 구경 등 담아 한 편의 농촌 서민 생활사
"후회없이 살려면 일기써라"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의 김진환(77)씨는 자신의 방 책장에서 노트 한 묶음을 꺼내 놓으며 멋쩍게 웃었다. 그가 50년간 쓴 일기장이다. 빛바랜 얇은 공책에서 두꺼운 고급 비닐 장정까지 모두 36권. 팔순을 앞둔 그의 자세는 꼿꼿했고 기억력도 또렷했다. 김씨는 이 마을에서 줄곧 살았다. 중학교 졸업 뒤 평생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27세 때인 1963년 1월 1일이다. 하루도 빼지 않았다. ‘종일 놈(놀았음)’이라고만 쓴 일기에서부터 두 쪽을 빽빽하게 채운 것까지 분량도 천차만별이다. 김씨는 “하루 일을 돌아보고 살면 인생을 더 진지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일기에는 그의 인생 50년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의류비·식사비·쌀값 등 물가와 축제·동물원 모습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한 편의 ‘농촌 서민 생활사’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63년 1월 30일 일기에는 라디오를 산 내용이 기록돼 있다. ‘친구 김윤택이에게 1350원을 주고 라디오를 샀다. 물건이 나의 손으로 옮겨오자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김씨는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7만원 정도”라며 “조그마한 물건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듬해 1월 24일 일기엔 울산에서 자전거 1대를 3600원에 샀다는 내용도 있다. 김씨는 “당시 마을에서 자전거를 가진 집은 한 집뿐이었다. 요즘 고급승용차와 마찬가지일 정도로 값진 물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동면사무소(현 외동읍사무소)에 계약직 공무원(9급)으로 취직해 4년간 일하기도 했다. 공무원 생활 중인 71년 4월 23일 일기 내용이 눈길을 끈다. ‘출근해 종잠검사를 하고 정오에 귀가하여 투표통지표 배부(아침 조회석에서 선거자금 1만3000원을 면장으로부터 받았다. 각 반에 1000원씩을 배부하며 25일에 반회를 개최하여 酒肴(주효)를 나누라는 지시).’ 김씨는 “대통령 선거를 4일 앞두고 선거자금을 돌렸다”며 “지금 같으면 큰일나겠지만 당시엔 공공연히 여당 후보를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효(술과 안주)라는 표현이 웃기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흑백TV를 본 사실을 꼽았다. 그는 67년 9월 울산에 사는 종고모(아버지의 사촌 누이)댁에 다니러 가 처음 흑백TV를 봤다. 유리상자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저 안에 귀신이 들어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일기에는 ‘종고모댁에서 테레비를 처음 구경하였다’라고만 써 놓았다. 그는 우리 나이로 일흔에 운전면허증을 땄다. 처음 응시해 한 번에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통과했다고 한다.



 김씨는 일기를 쓰면서 생각이 깊어졌고 할 일을 미리 챙기는 습관도 생겼다고 한다. 5남매인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낸 것도 일기를 쓴 덕이라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면 일기를 써 보소. 일기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스승이니까.”



경주=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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