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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인턴, 금턴 … 쏟아지는 청탁에 기업들 몸살

지난 3월 부산 부경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우수기업 채용박람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몰린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 송봉근 기자
#지난 7월 A증권사 인턴 직원으로 선발돼 근무를 시작한 김성호(21·가명)씨. 그는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 소개로 인턴 자리를 얻었다. 올 들어 두 번째 인턴 근무다. 6월엔 국회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A증권은 증권업계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바람에 평소 40명 정도 뽑던 신입사원을 10명으로 줄인 상태다. 지난해까진 인턴을 공개 채용했지만 올해는 아직 인턴 채용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처럼 연줄을 통해 들어온 인턴은 3명이라고 한다.

청년 취업난이 부른 인턴 시장 풍속도

 #지난해 여름 B광고기획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여대생 이민지(25·가명)씨에게도 의외의 기억이 있다. 이씨는 서류·필기·면접 전형 등 대졸자 공채 선발 못지않은 단계를 거쳐 인턴으로 채용됐다. 하지만 인턴 근무 한 달 만에 S씨(22)가 새로 인턴으로 들어왔다. 회사 직원들에게 물어 보니 이 회사 단골 광고주 기업의 임원 자녀라고 답했다. 이씨는 “연줄로 들어왔다는 그를 대하는 게 마음 편치 않았다”며 “회사 일에도 관심이 없는 그 때문에 두 사람 몫의 일을 해야 돼 꽤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국내 기업들이 시행 중인 인턴제도가 해당 기업의 인맥 관리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역량 있는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위한 검증·교육 기능보다 취업 준비생들의 스펙 쌓기나 기업 인맥 강화에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기업에선 공개채용 방식이라고 밝혀놓고도 실제론 사전에 사람을 미리 정해놓는 사례도 있다. 대학가 주변에서는 부모·지인을 통해 손쉽게 인턴 자리를 얻은 이들을 놓고 ‘귀족 인턴’ ‘리베이트형 인턴’이란 신조어까지 돌아다닌다.
 
SK 100대 1, 예금보험공사 307대 1 경쟁
최근 국내 취업시장에선 입사 시험이나 대학 성적보다 인턴 근무 같은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9월 인턴 제도를 운영하는 37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가운데 94.9%가 인턴 중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채용연계형 인턴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그룹의 경우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 9000명 중 28%인 2520명이 그룹 내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보니 인턴 모집 땐 구직자들이 몰려든다. SK 그룹에선 올해 인턴사원 채용 경쟁률이 100대 1을 웃돌았다. 공기업은 더하다. 지난해 예금보험공사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인턴 16명을 채용했는데 4908명이 몰렸다. 307대 1의 경쟁률이다.

 현행법상 연줄을 통해 인턴 자리를 얻은 이들을 규제할 방법은 없다. 고용노동부 김형광 청년고용기획과장은 “인턴 채용을 관계법령에 따라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연줄을 통해 인턴 자리를 얻었다는 사실도 증명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선지 ‘귀족 인턴’들은 스스로 ‘연줄’을 통해 기회를 잡았다는 걸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경제관료의 손녀 C씨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빠가 해줘서 (유명 의류업체) 인턴 입사에 성공했다”며 자랑하는 글을 남겼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JP모건 등 대형 투자은행들이 모종의 대가를 바라고 중국 고위층 자녀들을 인턴으로 채용했는지 여부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JP모건은 차이나 에버브라이트 그룹 회장의 아들과 중국 철도 관련 고위 관리의 딸을 인턴 직원으로 고용했다. 이후 JP모건은 에버브라이트부터 여러 가지 사업을 따냈고, 중국 철도그룹의 기업공개(IPO) 관련 업무를 수주했다. 미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과거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중국의 전·현직 관리 자녀들을 고용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귀족 인턴’이 늘어나면서 이를 비꼬는 신조어도 늘고 있다. ‘금(金)처럼 소중한 인턴’의 줄임 말인 ‘금턴’이 대표적이다. 정규직 전환율이 높은 대기업 인턴 자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최근엔 인턴 채용 규모가 적어 경쟁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여기에 연줄을 동원한 ‘불공정 경쟁’까지 겹치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도 늘고 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영선(25·여)씨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인턴 19곳, 신입사원 공채 26곳에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그는 “인턴 경력이 없어서 혹시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요즘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학원 강사 자리를 찾아보고 있다.
 
이력서 한 줄 더 쓰자고 ‘다녀가는’ 사람들
그러나 기업 측에선 이런 주장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한다. L그룹 관계자는 “요즘엔 인턴도 공개 채용 시스템을 도입하기 때문에 투명한 선발이 이뤄지고 있으며, 실제로 연줄로 혜택을 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기업에서 인턴을 뽑는 걸 지나치게 규제해선 곤란하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 현장에서는 일부 ‘귀족 인턴’ 때문에 겪는 해프닝도 나온다. ‘연줄’로 들어온 인턴들의 업무능력이나 근로의욕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중견기업 사장인 아버지의 소개로 공기업의 해외지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Y씨(23)는 지난 두 달 동안 회사에 달랑 2편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다른 인턴들은 월 3~4편의 보고서를 내고 10여 건의 번역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인턴 박모(25)씨는 “Y씨가 현지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의 일을 떠맡게 된 다른 인턴들의 불만이 컸다”고 전했다.

 A증권 인턴 담당 직원 이모(30)씨는 “부서 회의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인턴도 있었다”고 씁쓸해했다. 모 그룹 인사담당 정승호(가명) 상무는 “방학만 되면 인턴 자리를 달라는 외부 요청이 매년 30건 가까이 된다.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은 열의가 없어 일선 부서에서도 인턴으로 받기를 꺼린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원한 H그룹 인사 담당자는 “우수 인재를 조기에 영입해 회사의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도록 키워내는 게 인턴 제도의 기본 목적”이라며 “이력서에 한 줄 더 쓰자고 ‘다녀가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취지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턴 채용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윤정구(경영학) 교수는 “인턴 경력이 채용과 직결된다면 채용 단계에서부터 공정하게 선발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김동원(경영학) 교수는 “법이나 규제보다 기업 스스로 윤리강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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