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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3시간 대기, 3분 진료 … 병원이 앓고 있다

[일러스트 강일구]


개념의료

박재영 지음

청년의사, 415쪽

1만8000원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의료 분야의 쟁점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패널들을 보면 항상 2% 부족함을 느낀다. 자료는 잘 꿰고 있지만 이를 우리 상황 속에 녹여내지 못 해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의료계), 국민 정서를 끌어대 뒷심은 있지만 콘텐트가 빈약하다 (시민단체).



 저자는 “의료는 문화”라는 관점에서 이번 책 『개념의료』를 이끌어 간다. 콘텐트(텍스트)와 상황(컨텍스트)을 아우를 때 비로소 헝클어진 의료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문제가 됐던 진주의료원 폐업사태를 보자. 많은 이들이 폐업은 공공의료의 조종(弔鐘)이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의료의 공공성은 공립병원의 숫자에 비례하지 않는다. 대신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처럼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을 정부가 해결해 줄 때 의료의 공공성이 높아진다. ‘개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복잡다단한 의료 문제에 대해 지식이 탄탄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추천사를 쓴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판단 능력이 무럭무럭 자라난다”라고 했다.



 의사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지적한 의료 현실을 들여다보자. 대한민국 의료 성적표를 받아 들면 그 우수함과 효율성에 놀란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평균적인 OECD 국가의 사람들보다 오래 산다. 그럼에도 국민 1인당 연간의료비가 OECD 평균(3233 달러)에 비해 단지 58%(1879 달러)에 불과하다. 일본과 함께 전세계에서 의사를 가장 자주, 또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라도 한국이다.



 하지만 저자는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한국 의료의 어두운 모습에도 청진기를 들이댄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는데 역대 어떤 정권도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엄두를 내지 못 했다. 그 결과 저(低)보험료-저수가-저급여라는 한국형 건강보험제도가 탄생했다.



 물론 단 12년 만에 전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게 됐으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전세계에 유례가 없다. 그러나 환자들은 여전히 주머니를 털어야만 한다. 보험이 안 되는 의료서비스가 도처에 깔렸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병원에만 오면 화가 나는 이유다.



 한국의 의료 인프라와 수준은 한국보다 더 잘 사는 나라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은 90% 이상 민간인, 즉 의사들이었다. 의료선진국에서 대부분의 의료시설이 공공투자에 의해 건립됐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사정이 이렇지만 한국의 의사들은 욕을 먹는다. ‘3 시간 대기, 3 분 진료’는 저수가 건강보험제도가 낳은 기형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사들 욕부터 한다.



 어디 그뿐인가.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것이 다른 의료서비스에 비해 턱없이 비싼 복제약 가격, 국내 제약산업의 보호라는 허울좋은 명분, 그리고 무엇보다 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네 정서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따라서 의사들도 병원에만 오면 화가 난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대부분의 의사는 당연히 범죄자도, 사기꾼도 아니다. 하지만 의사라는 이유로 욕을 먹는다. 2000년 준비가 부실한 의약분업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대항했던 의료계를 반개혁세력으로 솎아내는 것이 쉬워 보였음에도 결국 ‘의사파업’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한 배경에 이러한 의사들의 원통함이 녹아 있다.



 그러나 저자가 의사라 의사 편을 든다고 오해는 마시라. 오히려 저자는 의사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와 시민의 입장을 의사들이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인이 볼 때 오십 보 백 보인 의사 집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앞으로는 실력과 도덕성, 환자와의 공감 능력에 따라 분화하리라는 예언 앞에 간담이 서늘해질 의사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딱딱하고 골치 아픈 주제임에도 이 책은 재미있다. 추리소설을 읽듯 화자와 시점이 변개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니까.



 물론 아쉬움도 있다. 기술 중심의 진료에서 사람 중심의 돌봄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란 예측은 옳지만, 이러한 패러다임 변경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대한민국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지 이 책에서는 즉답을 피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저자의 탓일까. “더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한 명쾌한 처방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당장 맘에는 안 들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저자의 바람처럼 개념 있는 의사와 시민이 많아지리라. 2% 부족한 토론 패널들을 더 이상 지켜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당연히 덤일 테고.



이형기 서울대의대 임상약리학 교수



●이형기 서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미국 조지타운의대·피츠버그의대·UCSF약대 교수를 거쳐 2012년 가을부터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 『FDA vs 식약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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