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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서류도 안 보고 남발 … ‘묻지마 공증’ 기승

회사원 김모(35)씨는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급전을 빌려 썼다가 큰 낭패를 봤다. 대부업체가 보낸 대출서류에 섞여 있던 공정증서(公正證書·재판 없이 강제집행할 수 있는 공증)용 위임장에 서명을 한 게 화근이었다. 대부업체는 법정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요구했고 이자 상환을 연체하자 공정증서를 근거로 재산 강제집행 절차에 착수했다.



경쟁 심해 수수료 50% 할인에
미리 서명해 두고 택배로 거래도
변호사 등 올 67명 무더기 징계

 김씨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의신청을 냈다. 공증인이 이자제한법을 초과한 대출약정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들었다. 공증인법 25조는 ‘무효인 법률행위는 공증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씨는 간신히 강제집행을 중지시킬 수 있었지만 대부업체와의 민사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른바 ‘묻지마 공증(公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일부 공증인들이 당사자도 만나지 않고 부실공증을 남발하고 있다.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공증이 오히려 분쟁의 씨앗이 되는 셈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정부는 부실공증의 폐해를 막기 위해 2010년 공증인법을 개정했다. 공증업무를 전담하는 임명공증인과 법인·조합 명의로 공증업무를 할 수 있는 인가공증인으로 자격을 제한했다. 그러나 공증시장은 여전히 포화상태다.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전국 공증인은 360명(임명 51명, 인가 309개소)에 달한다. 제한된 시장을 두고 경쟁하다 보니 일부에선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대충 처리하는 ‘묻지마 공증’이 많아지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았을 때 재판 없이 재산을 강제집행하기 위해 공정증서를 작성한다.



원래 채무자와 대부업체, 공증인이 함께 공정증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일부 대부업자는 대출서류에 위임장을 슬쩍 끼워 채무자의 서명을 받는다. 대부업자와 연계된 ‘부실공증인’은 당사자를 만나지도 않고 미리 업체가 준비한 서류에 서명날인해 불법으로 공정증서를 작성한다. 이른바 ‘비대면(非對面) 공증’이다.



 공증수수료의 일부를 의뢰인에게 돌려주는 ‘공증 리베이트’도 판치고 있다. 대량 공증업무 유치경쟁이 심해지면서 공증수수료를 깎아주는 것인데, 당연히 공증절차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말미(末尾)용지 공증’도 대표적인 ‘묻지마 공증’이다. 공증인이 미리 서명날인해 둔 공증서류의 마지막 장을 쌓아두고 있다가 준비된 서류에 기계적으로 붙이는 식이다. 대부업체나 신용카드사, 여행사 등이 퀵서비스로 무더기로 공증서류를 보내면 공증사무소가 ‘말미용지’만 붙여 곧바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법무부는 지난 7월 공증인 특별감사를 벌인 결과 온갖 수법의 부실공증을 적발했다.



 한 법무법인은 올해에만 5000건이 넘는 비대면 공증을 하고, 신용카드사에 1000건이 넘는 ‘반값 공증’을 해 줬다. 6월 한 달 동안 5000건이 넘는 공증 리베이트를 제공한 임명공증인도 있었다. 1200장이 넘는 ‘말미용지’를 숨겨놓은 법무법인도 들통이 났다. 법무부는 37명의 부실 공증인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15명에 대해서는 정직 1~9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고, 22명에게는 견책 및 과태료 처분을 했다.



 올해 들어 부실공증 사실이 적발돼 징계를 받은 공증인은 67명이나 된다. 정직 처분을 받은 공증인이 16명(24%), 과태료와 견책 처분을 받은 공증인은 각각 47명(70%)과 4명(6%)이다.



 법무부 정승면 법무과장은 “분쟁의 사전 예방이라는 공증의 본질적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하는 ‘묻지마 공증’은 엄단해야겠지만 공증 자체를 불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부실공증 단속과 건강한 공증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공증(公證)=당사자 사이에 어떤 사실이나 계약 등의 법률행위가 있다는 것을 공적으로 증명해 주는 행위. 금전거래나 부동산 매매·임차계약, 유언장 등에 대해 공증절차를 밟으면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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