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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유한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

프리드리히, 북극해, 1823~24, 캔버스에 유채, 96.7×126.9㎝,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소장.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폭염 속 빙하 그림에 눈이나마 시원해지시면 좋겠다. 빙판과 충돌한 배가 산산이 부서진 모습이다. 무덤처럼 봉긋 솟은 얼음 파편 사이로 난파선이 살짝 보인다. 그림의 제목은 ‘빙해’ 혹은 ‘북극해’, 별명은 ‘난파된 희망’이다. 이 그림이 세상에 알려질 무렵 전시장에서 달았던 제목은 ‘수북한 얼음 덩어리에 놓인 난파선과 이상화된 북극해의 장면’이었다.



주문자는 화가에게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북쪽의 자연’을 그려달라고 의뢰했다. 당시 신문엔 북극 탐험대에 대한 기사가 자주 나왔고, 더러는 책으로 출간됐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는 드레스덴 인근 엘베강의 유빙(流氷)을 보고 유화 스케치를 몇 장 그렸다. 이 그림들이 ‘북극해’의 원류가 됐다. 이 대재난의 그림은 사뭇 숭고하다. 자연을 통해 인간의 조건, 나아가 신과 인간을 보여주겠다는 화가의 야심이 전해진다.



 지난해 이맘때도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한 점 소개했었다. ‘바닷가의 수도사’(1808∼1810), 망망대해를 마주한 수도사의 뒷모습이 먹먹한 그림이다. 그림처럼 내향적이던 이 화가는 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이듬해 누이가 죽었으며, 5년 뒤에는 빙판에 빠진 그를 구하려다 동생이 익사했다. 뒤이어 또 다른 누이가 사망했다. 가족의 잇따른 죽음, 특히 눈앞에서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그는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 후배 화가들이 그린 그의 초상화엔 이런 특징이 담겨 있다. 괴팍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 기도실처럼 단출한 작업실. 그가 유한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에 평생 매달린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는 변방에 속했던 19세기 독일에서 낭만주의 풍경화의 형식을 확립한 화가다. 66세, 당시로선 짧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은 이랬다. “1835년 프리드리히는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유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년은 거의 은둔의 삶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그의 그림들을 지켜보며 살았다. 때로는 그의 의도를 살리지 못한 채 다른 화가들이 모방한 그림들을 보아야 했다.”(데이비드 블레이니 브라운 지음, 강주헌 옮김, 『낭만주의』, 한길아트)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을 만큼 지독한 서술이다.



지베르니에 구현된 모네(1840~1926)의 행복한 장수를 다룬 바 있다.<본지 8월 1일자 28면> 그러나 모두의 삶이 그렇듯 예술가의 장수 또한 늘 축복으로 가득한 것만은 아닐 터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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