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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방울 속절없는 물방울 … 나무에, 신문지에 그리며 50년

지난 50년간 500여 점을 그렸다고 하는 김창열 화백은 제주도에 주요작 200점을 정명훈 기증키로 했다. [사진 갤러리현대]
노화가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김창열 화백 '화업 50년'전

 “그림 그릴 때 오른손이 흔들리면 왼손으로 받친다. 물론 젊었을 때와는 필력이 다르다.”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84)이 ‘화업 50년’전을 연다. 29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신관에서다. 1970년대 초창기 물방울 시리즈부터 근작까지 40점을 전시한다.



 시작은 이랬다. 1969년 프랑스로 건너간 화가는 파리 근교의 마굿간에서 지냈다. “화장실도 없어 밖에 담아둔 물로 세수했다. 어느 날 아침 대야에 물을 붓다가 옆에 뒤집어둔 캔버스에 물이 튀었다. 크고 작은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비쳐 찬란한 그림이 되더라.”



 순간의 영롱한 빛을 발한 뒤 속절없이 사라질 물방울을 화폭에 고정시켰다. 물방울 그림이 1972년 살롱 드 메에 입선하면서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물방울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무색무취한 게 아무런 뜻이 없지. 그냥 투명한 물방울일 뿐”이라면서도 그는 “내 욕심은 그런 물방울을 갖고 그림을 만드는 것이었고 한평생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화가들은 착각이 심해서 어떤 때는 물방울을 그리면서 영혼과 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40여 년이 흘렀다. 아무 색도 없는 마포, 나무·흙·신문지 바탕, 한자를 그려 넣은 캔버스 등 물방울은 한결같되 배경이 달라졌다. 그의 작업실엔 조수 10여 명이 거쳐갔고, 이제는 두 명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는 평안남도 맹산 출신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부에게 천자문을 배웠다. 천자문을 배경으로 투명한 물방울이 화면 전반에 흩어진 ‘회귀’ 시리즈는 거기서 나왔다. 90년대 등장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문지 위에 붓글씨를 익히던 기억이 향수처럼 남아 있다. 한자는 추억이자, 글자 하나하나에 뜻과 깊이 조형성이 있는 매체”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지난해 국립타이완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요즘 자기 이름의 미술관 건립을 준비 중이다. 6·25 때 1년 여간 피난생활을 하며 ‘제2의 고향’이라 여겼던 제주도에 작품 200점을 기증키로 했다. 제주도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예술인마을에 김창열미술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그 또한 우리 현대사의 한 얼굴이다. 나라 없이 태어나 전쟁을 겪고, 고향을 잃고, 뉴욕으로 파리로 떠돌았다. 그리고 자기양식을 확립했다. 그에게도 아직 못다한 화업(畵業)이 있을까. “너절하지 않고, 있으나 마나 하지 않은 화가로 남고 싶다”고 대답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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