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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빠지니 힘도 빠진 '세계 경찰' 미국

“아살라무 알라이쿰(‘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의 이슬람 인사).”



이집트 등 잇단 외교실패 왜

 2009년 6월 4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집트 카이로대 연설에서 이렇게 인사했을 때 전 세계 15억 무슬림은 환호했다. 오바마가 힘주어 내뱉은 두 마디는 곧 이슬람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자 낡은 대립의 감정을 풀어버리자는 화해의 손길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들은 이를 이슬람 세계와 미국 사이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진 순간으로 기록했다.



 노벨위원회 역시 오바마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의 카이로 연설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을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오바마가 국제 정치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그 덕분에 대화와 협상, 국제기구의 역할이 선호되는 다자 외교가 중심을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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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원조 규모 줄어 영향력 위축



 하지만 불과 4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이집트 관련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최악의 ‘외교 참사’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뿐만 아니다. 오바마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준 ‘스마트 외교’ 이니셔티브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반대의 결과로 이어졌다. ‘세계 경찰’로서의 위상은 간 데 없고, 미국의 외교력 자체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 외교 전문가들은 재정 적자에 따른 미국의 대대적 국방전략 수정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초 22년 만에 ‘두 개의 전쟁’ 전략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 두 곳에서 재래식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지상군을 파견해 동시에 승리한다는 두 개의 전쟁 전략은 냉전 후 미 국방정책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4890억 달러(약 545조원)의 국방예산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군사력 축소는 불가피했다. 2014년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 등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조치들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내놓은 게 바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의 외교 축(pivot) 전환이었다. 중동 지역 관여를 줄이고 아·태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는 아랍의 봄 이후 혼란이 거듭되는 지역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외교적 실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전했다. 미 정보당국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알카에다가 사실상 해체됐다고 판단했지만, 오히려 연계조직들이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 모세혈관처럼 침투해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방부도 2011년 보고서를 통해 “21세기 안보 환경에서 세계 어느 곳에서든 대규모의 반란 진압, 안정화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일시적이 아니라 상시적 필수 사항”이라고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었다. 재정 적자로 인해 군사 원조 규모를 줄인 것 역시 미국의 영향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태 지역으로의 외교 중심축 이동 역시 중국의 견제로 험로가 예고된 데다 미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전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에게 서한을 보내 “정부 차원에서 해당 국가에 나가 있는 외교 사절에게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아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과 몇몇 관료의 말을 토대로 추측한 외교술을 펼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자질 문제도 잇따른 외교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FP는 ‘재정 적자(budget deficit)’에 빗대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력 적자(diplomatic deficit)’가 문제라고 비꼬았을 정도다. FP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들은 대표적 문제점으로 우유부단하고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이는 곧 미국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는 이집트다. 친서방 노선을 걸었던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와 밀월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은 2011년 아랍의 봄 민중 봉기 때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보류했다. 무바라크 정부가 시위대에 무력을 사용하자 그제야 무바라크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이어 미국은 제헌의회 구성 권한을 위임 받은 군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권력 공고화 시도로 이슬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반군부 시위를 벌이자 다시 입장을 바꿔 빨리 민주 선거를 치르라고 군부를 압박했다.



 지난 7월 최초의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축출됐을 때도 미국은 좀처럼 입장 정리를 못했다. 쿠데타로 규정하면 곧바로 군사 원조를 끊어야 하고, 혼란이 주변 국가로 파급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지만 이를 감안해도 전략 검토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미국이 신뢰를 잃으면서 ‘정적의 부활’도 현실화했다. 오바마는 2009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와 미·러 협조 노선을 상징하는 ‘리셋(reset·재설정)’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취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노골적인 반서방 노선을 표방한 푸틴으로 인해 “리셋 관계가 리셋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최근 러시아가 미 정부가 반역자로 규정한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임시망명을 보란 듯 허가해준 것이 대표적 예다.



아·태지역으로 외교축 전환 패착



 FP는 이란을 언급하며 “지속적인 제재에도 이란은 계속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며 외교적 해결을 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리아 사태 개입에 대한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 역시 이란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AP통신의 분석이다. ‘이란-시리아-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강경라인이 복원됐다는 것이다.



 마이애미 헤럴드 앤 월드 폴리틱스 리뷰의 국제전문가 프리다 기티스는 최근 미 CNN 방송에 기고한 칼럼 ‘추락하는 오바마의 외교 정책’에서 “벼랑 끝에 몰린 미·러 관계를 보면 이제 리셋 외교라는 말이 민망할 지경”이라고 평가했다. 또 “미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정상회담을 취소했으나, 이 조치가 미국을 더 무기력하게 보이게 했다”고 꼬집었다. 또 “지금 우리는 냉전 시대의 재연을 목도하는 듯하다”며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미국이 경외심이 들 정도로 강국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비난의 화살은 오바마 개인에게도 쏠리고 있다. 오바마가 다른 국가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친화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각국 정상들을 초청했을 때 공식적 회담 말고 식사나 사적인 장소로 초대하는 법이 거의 없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농구 경기를 관람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단 둘이 산책한 일 등이 이례적 행보로 대서특필되는 이유다.



오바마 오락가락 정책, 신뢰 잃어



 오바마의 ‘낯가림 외교’는 카우보이 스타일로 세계의 지도자들을 매료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전임자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부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그레이스랜드 순방을 함께 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과는 손을 잡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는 비센테 폭스 대통령의 어머니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며 직접 그의 가족 농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추락하고 있는 미국의 외교적 위상을 다시 복원시킬 수 있는 이도 오바마밖에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2009년 카이로대 연설에서 오바마는 말했다. “나는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공통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치에 대한 자신감, 공정한 정의, 투명한 정부, 자유롭게 살 권리. 이런 것들은 미국의 가치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권리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 가치를 지켜낼 것입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이집트 국민은 여전히 오바마가 그렇게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FP 역시 “지금까지 치른 것만큼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그에게는 아직 3년이란 기회가 남아 있다”고 했다.



유지혜·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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