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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자주인가 추종인가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캐나다 외교통상부 청사의 이름은 ‘피어슨 빌딩’이다. 1973년 신청사를 준공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캐나다의 외교관이자 정치인이었던 레스터 피어슨(1897~1972)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피어슨은 외교장관 재임 중 수에즈 분쟁을 해결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캐나다 복지제도를 완성한 총리로도 이름이 높다. 캐나다 최대 도시인 토론토의 피어슨 국제공항에도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베트남전이 본격화하던 1965년, 피어슨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필라델피아 템플대에서 연설을 한다.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을 비판하고, 외교적 해법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격노한 린든 존슨 미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그를 초대한다. 이웃나라 정상을 불러놓고 존슨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테라스로 끌고 가 “남의 집 거실에 와서 오줌을 싸면 어떻게 하느냐”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양복 깃을 움켜쥔 채 피어슨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36년 경력의 전직 일본 외교관인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亨)는 캐나다 근무 중 전해 들은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피어슨 사건’을 계기로 캐나다 외교부는 “아무리 억압과 핍박이 강해도 미국에 할 말은 한다”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강조한다. 외교부 청사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도 그의 자주외교 정신을 잊지 말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존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피어슨은 끝내 베트남에 전투병을 보내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없다는 이유로 2003년 캐나다는 이라크전 참가도 거부했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메디치)



 마고사키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 외교는 대미(對美) 추종 외교였다고 말한다.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처럼 자주노선을 표방한 총리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배척당했다고 한다. 정치권, 관료, 재계, 언론의 대미 추종 그룹으로부터 조직적인 공격을 당해 거의 대부분 단명 정권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정치자금 관련 비리를 앞세운 검찰과 언론의 합동 공세나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당내 반발로 정치생명이 끝장났다는 얘기다.



 반면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등 장기집권에 성공한 총리들은 예외 없이 대미 추종 그룹에 속했다고 마고사키는 지적한다. 철저한 반공(反共)과 대미 추종에 기반한 ‘요시다 독트린’이 전후 일본의 외교정책 기조로 자리잡으면서 미·일 관계에서 미국은 영원한 갑(甲), 일본은 영원한 을(乙)로 자리매김됐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미국은 자신의 세계전략 속에서 다른 나라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미국의 전략이 바뀌면 다른 나라의 용도와 역할도 바뀐다. 장기판의 졸(卒)이 어느 날 갑자기 차(車)나 포(包)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전후 미국의 대일 정책은 일본을 두 번 다시 전쟁을 할 수 없는 ‘부전(不戰) 국가’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냉전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소련의 위협을 막는 방파제로 일본의 역할은 180도 바뀌었다. 지금은 대중(對中) 견제의 선봉장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새 역할에 편승해 대미 추종론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군사대국의 등장은 동아시아 질서에 최대 위협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모르는 체 눈을 감고 있다.



 6·25전쟁 당시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부채 의식과 보은 의식은 지금도 우리의 DNA에 강하게 남아 원자력협정 개정에서 방위비 분담, 전작권 환수, 방산물자 구매 등 미국과 국익을 다투는 협상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



 마고사키는 미국을 대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가급적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면서 우리의 이익을 챙기면 그만이다”는 방식과 함께 “비록 힘들지만 우리의 독자적 가치를 어떻게 지키고 관철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하자”는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용미(用美)와 극미(克美), 추종과 자주의 차이일 수 있지만 결국은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다. 미국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캐나다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이다. ‘피어슨 빌딩’에서 우리가 새길 교훈은 바로 이것 아닐까.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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