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우리 땅 독도에는 " " 가 있다



■ 울릉도서 87.4km



울릉도 동남쪽 87.4km, 동해안 죽변에서 216.8km 떨어져 있다. 날이 맑으면 울릉도에서 보인다. 일본에서는 157.5km 떨어진 오키섬이 가장 가깝다.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독도사랑 탐방대` 대원들이 동도의 해안포진지에서 독도경비대장의 설명을 들은 후 헬기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 동·서도와 89개 부속도서 구성



울릉도보다 약 200만년 앞선 460만년 전에서 250만년 전 사이에 화산활동으로 생성됐다. 동도와 서도, 89개 부속도서로 이뤄져 있다. 총면적은 18만7554㎡ 이며 서도가 동도보다 1만5443㎡ 넓다.



동도에 유인등대인 독도등대, 선착장 등 해양수산시설 대부분이 설치돼 있다. 우산봉과 천장굴이 있다. 탕건봉이 있는 서도에 주민숙소가 있다. 동도와 서도는 저조시 151m 떨어져 있다. 풍화로 생성된 사질양토가 대부분 30cm 이하로 덮여 있다.



[사진 대아고속해운]


■ 독도천연보호구역



독도는 철새 이동의 길목에 있고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 등이 번식하고 있어서 1982년에 독도 해조류 번식지로 지정됐다. 1999년,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라는 지질학적 가치와 자생 식물 및 주변 바다생물들의 특수함을 인정해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336호)으로 지정됐다.



(아래)괭이갈매기 [중앙포토]
■ 경제적, 군사적 가치 커



울릉도와 독도의 주변 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연안어장과 대화퇴어장이 형성돼 있어서 어업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한다.



또 원유 매장 가능성을 알려 주는 지시자원으로 알려진 하이드레이트의 매장이 확인되는 등 원유 매장 가능성이 크다. 또 동해의 한 가운데에 있어서 환동해권 관광의 중심지로 개발될 가능성도 크다. 아울러 위치상 군사적 가치도 크다.



■ 독도의 인물



◆우산국 정벌한 신라 장군 이사부=내물왕의 4대손으로 아슬라주(지금의 강원도 강릉) 군주(軍主)로 있었던 512년(지증왕 13년)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정벌했다. 541년(진흥왕 2년) 병부령이 되어 한강 상류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대가야를 정벌했다. 또 사서의 필요성을 주창해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본 막부 굴복시킨 안용복=1693년(숙종 19년) 동래 어민들과 울릉도에서 고기를 잡다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됐다. 그러나 안용복은 오히려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령이라는 서계를 받아냈다. 이에 반대하는 대마도주의 계략 때문에 외교적 갈등은 지속됐는데, 1697년 마침내 막부는 울릉도 근처에 대한 출어를 금지하겠다는 뜻을 대마도주를 통해 통보해 왔다. 이후 철종 때까지 울릉도의 영유에 관한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독도에 처음 주민등록 한 최종덕=독도에 처음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거주했다. 주민등록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을릉읍 독도리30(구 도동리 67번지). 1965년 3월 울릉도 주민으로 도동어촌계 1종 공동어장 수산물 채취를 위해 독도에 들어가 거주했으며, 1981년 10월 14일 독도를 거주지로 주민등록에 등재하고 1987년 9월 23일 사망할 때까지 독도에 거주했다.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한국전쟁 중 일본은 독도에 불법 상륙했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울릉도의 민간인들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 독도에 입도해 1956년 12월까지 약 3년 8개월간 일본의 독도 점령 시도를 막아냈다.





■독도박물관



울릉도, 독도 관련 자료를 발굴, 수집, 연구하고, 그 결과를 전시, 홍보하기 위해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에 건립을 시작해 1997년 8월 개관했다. 이종학 초대 관장이 30여년 동안 수집한 자료 를 비롯해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의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일본 실학자 하야시의 정치 지리서인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에 수록돼 있는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



이 지도는 동해상의 죽도(竹島)와 송도(松島)를 조선과 같은 색채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죽도의 좌측에 "조선의 것”이라고 명시했으며, 하단에는 "이 섬에서 은주가 보이고 조선 또한 보인다”고 기술했다. 지도 제작 당시 일본인들이 울릉도를 죽도(다케시마), 독도를 송도(마쓰시마)로 지칭했던 것을 감안하면, 지도상의 죽도를 울릉도로 봐야 하고 그 오른쪽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섬을 독도로 봐야 한다고 독도박물관은 설명한다.



박종근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