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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산악회원, 대피소 이용 못하자 “환자 쫓아낸다” 민원 제기

1. 지리산 특별단속반에 적발된 불법 등반객들. 지정된 야영장이나 대피소 외에서 취사와 야영을 하는 행위엔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2. 야영을 하던 중 단속에 적발된 등반객. 급변하는 지리산의 날씨를 고려했을 때 지정된 장소 외의 야영은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3. 3년 전 벽소령 대피소 주변 전경. 예약하지 않은 등반객들이 하루 수백 명씩 몰려 주변 환경이 훼손됐었다.
지난 9일 오전 9시, 지리산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목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 거림마을. 지리산 특별단속반 4명이 모였다. 세석대피소를 중심으로 불법산행을 단속할 팀원들이다. 나머지 특별단속반 팀원들은 장터목 대피소팀과 벽소령 대피소팀으로 나뉘어 따로 출발했다. 세석대피소 팀원 4명은 상하 1m가 넘는 배낭을 메고 등반 채비를 갖췄다. 대피소에 전할 부식과 랜턴 등 단속 장비들 탓에 배낭 무게는 20㎏을 넘었다. “장비 다 챙겼으면 출발하자.” 조대현 계장의 말에 등반이 시작됐다.

거림~세석대피소 코스는 세석대피소로 향하는 최단거리 코스(6㎞·3시간 소요)다. 계곡을 따라 걸을 수 있어 인기가 좋다. ‘거림(巨林)’이라는 글자 그대로,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햇빛을 막아줬다. 앞장서 가던 허승철(45) 계장이 운을 뗐다. “설악산이 아버지 산이라면,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다. 산세가 깊고 포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인자하기만 한 가. 매서울 땐 아버지보다 더 무섭다.” 지리산에선 지난해 안전사고로 53명이 다치고,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허 계장은 “아무리 전문가라도 불법산행 중 사고를 당하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 3월 입산시간 지정제 이후 마찰 늘어
특별단속반을 이끌고 있는 조대현 계장은 지리산 베테랑이다. 1996년부터 셀 수 없을 만큼 지리산에 올랐다. 이미 ‘산사람’이지만 산에 오를 땐 항상 겸손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지리산을 두고 99개 골짜기를 지닌 산이라고 하지 않느냐. 샛길이 정말 많아, 오면 올수록 모를 산이 바로 지리산”이라고 말했다. 조 계장을 최근 들어 괴롭히는 건 ‘막무가내 등반객’들이다. 그는 “25㎏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건 잠시 고될 뿐”이라며 “막장 등반객들을 단속할 때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세석대피소에 짐을 풀고 단속 중이던 오후 4시쯤, 백무동 방향에서 한 40대 남성이 올라왔다.

-선생님, 세석대피소에 묵으시려면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 예약하셨습니까?
“예약은 안 했는데 빈자리에서 그냥 묵으려고요.”
-대피소 예약을 하지 않으면 대피소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백무동이나 거림으로 하산하셔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내가 법을 좀 아는데, 그런 규정이 어딨습니까.”
-자연공원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참 나, 여기 안내문에는 표시가 안 돼 있지 않습니까. 그냥 재워주세요.”
-규정상 안 됩니다.

단속반이 완강하게 나오자 그가 대뜸 휴대전화를 들이댔다. 그러곤 단속반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내가 꼭 문제 제기를 하겠다. 두고 봐라”며 20분간 으름장을 놓다 하산했다. 이명희(41) 단속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래도 사진 찍어가는 건 약과다. 시행령을 보여주기 전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고 해 사무소까지 가서 시행령을 들고 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올 3월부터 지리산 전 구역에 입산시간 지정제를 실시한 이후 이처럼 등반객과의 마찰이 잦아졌다. 입산시간 지정제란 목적지의 난이도·거리 등을 고려해 통행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다. 세석대피소를 기준으로 벽소령 방향은 오후 2시, 장터목 방향은 오후 3시 이후 통제된다. 미리 대피소를 예약하지 않으면 대피소 이용은 물론 근처 야영도 금지된다. 이를 알고 단속반을 의도적으로 피해가는 사람들도 있다. 출입금지 구역을 이용해 산행하려는 등반객이다. 이들은 야간산행과 야영을 불사한다는 게 단속반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들도 단속망을 완전히 빠져나가진 못한다.

이날 밤 10시, 세석대피소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영신대 인근. 영신대 쪽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영신대는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가 돌아가 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지리산에서 가장 기가 센 곳으로 이름 나있다.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과 평지가 있어 등반객들이 즐겨 찾는 ‘명당’이지만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불빛에 단속반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재빨리 뛰어간 단속반이 비춘 랜턴에 3명의 등반객들이 잡혔다.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이고, 야간 산행은 금지돼 있습니다. 자연공원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하겠습니다. 신분증 주십시오.
“길을 잃고 헤매다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세상에 조난자에게 과태료를 끊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단속반이 입산 시간 및 등반 경로 등을 캐묻자 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저만 낼게요. 제가 오자고 했으니까 나머진 좀 봐주세요. 단속 효과는 충분하잖아요.” 일행 중 한 명이 잠시 버텼다. 소용없었다. 결국 3명 모두에게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허 계장은 “우리보다 수가 많거나, 술에 취한 사람들은 우리를 등산 스틱으로 툭툭 찌르며 항의하기도 한다”며 “지난 5월엔 술 취한 등반객이 맥가이버 칼을 꺼내 ‘확 파묻어버리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단속반에 적발된 등반객들이 많아지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해 단속을 피해가기도 한다. 단속반은 둘째 날인 1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대피소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촛대봉 근처에서 단속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출입금지구역에 들어오는 불법 등반객은 없었다. 대신 나무에 묶여 있는 ‘일취월장’ ‘○○산악회’ 등의 문구가 적힌 리본만 수거할 수 있었다. 단속을 피해 왔다 간 흔적이었다. 허 계장은 “최근에는 단속에 걸린 사람들이 단속이나 불법산행 정보를 블로그로 공유한다”며 “그런 블로그를 제한하거나 관리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법산행 정보 공유 블로그 제재를”
10일 오후 5시, 단속반에 비상이 걸렸다. 예약 없이 대피소를 이용하겠다는 등반객들과의 대치 상황이 벌어지면서다. 산악회 티셔츠를 입은 산악 단체 회원 19명이 “무슨 일이 있어도 대피소에서 자고 가겠다”며 버티고 서 있었다. “규정상 대피소를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산해야 한다”고 알리자 “작년엔 안 그랬다. 그러다 재워줄 거 다 안다”고 소리쳤다. 30분간 고성이 오간 뒤 이들은 대피소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일부는 소주를 들이켰다. 현재 국립공원 음주 산행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오후 9시가 되자 대피소의 전등이 소등됐다. 산악회 회원들 10여 명이 대피소 2층 입구로 들이닥쳤다.

“마루에 자리 남잖아. 좀 재워줘. 여기가 공산주의야? 달빛아 말 좀 해봐.”
“산장, 너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냐. 세금 꼬박꼬박 낸 우리가 왜 이런 대접 받아야 해?”
“우리 우습게 보지 마. 우리들 중에 교수도 있어.”

이들은 온라인상의 닉네임으로 서로를 불렀다. 단속반은 “내일 아침 하산을 약속하면 환자는 수용하겠다. 나머지는 하산해야 한다”고 답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치 상황이 계속되자 이들이 전략을 바꿨다.

“거기 119죠? 여기 지리산 세석대피소인데요. 환자가 70명인데 그냥 쫓아내려고 해요. 환자 한 명당 4명이 필요하니까 280명 당장 올려보내세요.”
“거기 방송사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하산하라고 쫓아내요. 보도해주세요. 빨리요.”
“청와대 민원실, 인권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다 다 전화했어. 너희들 큰일 났어 이제.”

새벽 3시30분까지 이어진 대치 끝에 결국 먼저 손을 든 건 산악회 일행이었다. 이들은 백무동 쪽으로 하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천벌 받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조 계장은 “한두 번 사정을 봐주다 보면 산악회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결국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애써 복원해놓은 환경이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다. 야간에 하산 조치를 시킬 경우 단속반이 동행하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목숨 건 불법야영 … 98년 300여 명 사망·실종
11일 오전 9시, 하산 채비를 갖춘 단속반이 마지막 단속 장소로 ‘도장골’을 택했다. 물이 깊고, 도주가 용이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마지막까지 빨치산이 잔존했던 곳이다. 11일 오후 2시, 도장골을 따라 내려가던 단속반의 ‘레이더’에 불법 등반객 6명이 잡혔다. 한 명은 방금 계곡에서 나온 듯 온 몸이 물에 젖어 있었다. 단속반이 재빨리 현장 사진을 찍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한 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신분증 대신 초록색 카드를 꺼냈다. 산림청 카드였다. “이건 아무 관계 없습니다. 신분증 주십시오.” 단속반의 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산림청 카드만 내밀 뿐이었다. 그렇게 10분. 결국 그는 신분증을 내놨다. 허 계장은 “‘내가 누군데’에서부터 ‘너희 소장 누구냐’까지 별의별 사람을 다 본다”며 “어떤 신분증을 내놔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9일 오전 시작된 단속반의 활동은 11일 오후 3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이번 단속을 포함, 올해 지리산 특별단속반은 총 25회(66일)의 단속 동안 과태료 352건, 지도장 192건, 고발 2건 등 546건의 불법 행위를 적발했다. 조 계장은 마지막까지 불법산행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지리산 날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뀐다. 무분별한 야영이 묵인되던 98년엔 갑작스러운 폭우 등으로 한 해 동안 300명이 넘게 실종되거나 숨졌다. 자연훼손도 문제지만 목숨이 달린 문제다. 불법산행이 줄기 전까지 지리산 특별단속반 해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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