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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권하는 사회 … ‘싸고 좋은 전기 없다’ 깨달아야

14일 오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전력수급 상황실에서 전문가들이 전력 수요 현황을 지켜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1 섭씨 32도까지 올라 전 국민이 힘겨웠던 14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당인동 서울화력발전소는 바쁘게 움직였다. 중앙제어실 조정호 과장이 가스공사에 전화를 걸어 “전기 출력을 올려야 하니 가스 압력을 높여달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좀처럼 목표 전력량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가스 압력을 높여도 제 출력이 안 나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1930년 설립된 당인리 발전소는 국내 최초의 화력발전소다. 현재 운영 중인 4, 5호기도 각각 69년, 71년 만들어져 40년을 훌쩍 넘긴 ‘노장’들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2년 은퇴시켰어야 한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전력 비상 상태가 이어지자 억지로 가동하는 중이다.

 #2 “가스요? 요즘 누가 그런 걸 쓰나요. 신축 원룸은 70~80%가 전기 인덕션이 설치돼 있죠.”
 14일 홍익대 인근 마포구 서교동에서 부동산을 하는 김우중(31)씨에게 “원룸에 조리용 가스 설비는 잘돼 있느냐”고 묻자 김씨는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다. 그는 “깔끔하고 설치도 쉽고 화재 위험도 적으니까 세입자뿐 아니라 주인들도 선호하죠. 신축 건물뿐 아니라 가끔 오래된 건물을 원룸으로 고칠 때도 인덕션으로 싹 바꿉니다”라고 말했다. 전기레인지의 일종인 인덕션처럼 전기를 쓰는 조리 설비를 사용하는 것은 요즘 신축 원룸의 트렌드다. ‘전기 권하는 사회’의 한 단면이다. 한국전력거래소 조세철 팀장은 “겨울 난방용으로도 전기 온풍기 등이 널리 보급되는 바람에 요즘은 하계보다 동계 전력 사정이 더 안 좋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로만 알았던 전기의 ‘보복’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여름·겨울 피크 시즌이 될 때마다 온 국민이 전쟁보다 무섭다는 ‘블랙아웃(대정전)’의 공포를 겪는다. 더운 날씨에 냉방 한 번 편히 못하는 국민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됐던 12일부터 사흘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행히 전력 수급 상태는 양호했다. 사흘간 가장 낮은 단계인 ‘수급경보 준비’ 상태가 몇 차례 발령된 게 전부다. 예비전력이 대부분 500만㎾(전체 발전량의 7% 수준)를 웃돌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게 공짜는 아니다. 온갖 비상조치가 동원됐다. 공공기관의 냉방을 중지하고, 주요 대기업의 조업시간을 바꾸거나 피크 시간에 전기를 쓰지 않겠다는 약정을 하고, 민간 발전소의 전기를 사들이는 등 10여 가지 대책이 필요했다. 이런 대책이 전혀 없었다고 가정하면 이날 예비전력은 53만㎾가 부족해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비상 대책에 들어간 세금만 이날 하루 41억원, 올해 들어 1000억원이 넘었다. 기업과 시민의 고통은 별도다. 누군가 불안과 더위, 매출 축소 같은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는 하루하루를 넘길 수 없는 불안한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조종만 중앙전력관제센터장은 “이번 더위의 최악의 사태는 피한 것 같다. 하지만 늦더위 예보가 있는 9월 중순까지는 긴장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요 예측 번번이 실패한 게 원인
2011년 9월 15일. 한전 관계자들이 ‘9·15사태’라고 부르는 날이다. 추석 직후 찾아온 늦더위에 전력 사용량이 갑자기 치솟았다. 안심하고 정비에 들어간 발전소가 많아 전력 공급량이 부족했고, 사전에 비상 대책도 미흡했다. 블랙아웃 직전에 결국 순환단전이라는 강수가 동원됐다. 이날 이후, 강력한 절전 대책과 비상 상황에 대한 대응이 계속됐다. 올해는 특히 원전 부품 납품비리 사건의 여파로 주요 원전의 정비와 재가동이 늦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긴장감이 더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전력 수요 예측이 크게 빗나가서다. 2006년 3차 전력수급계획은 올해 예상 전력수요를 6878만㎾로 예상했다. 하지만 12일 기록한 최대 수요는 7970만㎾로 예상보다 13.7% 많았다. 장기 전망의 오차가 커진 것은 2007년부터다. 유가 급등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전기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가정·산업용 할 것 없이 전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심지어 농촌의 비닐하우스 난방이나 고추를 말리는 작업 등에도 전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들은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 노무현정부는 발전소 건설을 김대중정부 시절보다 확 줄였다. 이명박정부는 발전소 건설은 늘렸지만, 전기요금을 올리는 수요 관리 대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공급과 수요 관리에 모두 실패한 결과가 이제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수덕 아주대(에너지시스템학부) 교수는 “석유 가격이 10년 새 3배 가까이 오르는 동안 전기요금은 12%밖에 안 올랐다. 전기가 편리한 데다 값도 싸니까 당연히 수요가 몰린 거다. 이걸 미리 바로잡지 못한 정책 당국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대안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공급 부족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소를 확충하자는 의견과, 공급 확대보다 수요 관리가 먼저라는 의견이 맞선다.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연구원 최광림 실장은 “경제 성장을 지속하고 국민이 깨끗한 전기 에너지를 더 원하는 만큼 공급이 지속적으로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내년까지 완공되는 3기의 원전을 포함해 2024년까지 총 11기의 원전을 더 지을 계획이다.

 하지만 요금 인상을 포함한 적극적인 수요 관리 없이 공급만 늘려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진상현 경북대(행정학) 교수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공급 위주 정책이 변해야 한다. 산업계는 국제 가격보다 훨씬 싼 전기를 쓰는 만큼 요금을 올리면 경쟁력이 훼손된다는 건 엄살이다. 한마디로 가정용이건 산업용이건 전기는 고급 에너지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고급제품은 비싼 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정부도 공급 확대와 함께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 관계자는 “올해 한전의 적자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도 있었다. 누적 적자만 10조원이 넘는다. 최소한 한전이 적자를 보지 않을 수준까지는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요금·세제 손봐야
문제는 어떻게 요금을 올릴 것이냐다. 현재 국내 전력 수요 중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4% 정도다. 53%는 산업용이다. 가장 전기 사용량이 많은 현대제철 당진공장 한 곳만 하더라도 전력 사용량(지난해 550만㎿h)이 부산 시민들의 가정용 전력사용량보다 56%나 많았다. 산업용 요금을 올리라는 주장이 많은 이유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가정용 요금을 올리는 것은 효과가 적다. 현재도 외국에 비해 사용량이 적은 편이다.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의 요금을 더 올릴 필요가 있다. 요금이 현실화되면 기업들도 전기 절약이나 대체에너지 개발 등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반발한다. 올해 초 대한상의 등 13개 경제단체는 “최근 3년 새 산업용 전기요금이 많이 올라 생산원가를 웃돈다. 생산원가에 못 미치는 건 가정용이다. 산업용 요금이 더 오르면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진다”고 밝혔다.

 김창섭 가천대(에너지IT학) 교수는 국내 전기요금은 독일의 4분의 1에 불과해 인상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요금만 올리는 게 아니라 세금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스·등유 같은 1차 에너지 가격보다, 이걸 이용해 만든 전기(2차 에너지) 가격이 더 싼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유류세를 낮출 수도 있고, 유류세는 그대로 둔 채 전기세(또는 요금)를 올리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건 전기가 더 이상 값싼 에너지로 인식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깨끗하고 좋은 만큼 가장 비싼 에너지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만 산업계와 가정이 따라올 수 있도록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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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