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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남침 소식 외신 보도로 처음 알아”

1951년 6월 9일 중부전선 적근산 남쪽 고지에서 포를 쏘고 있는 미 제7사단 장병들. [사진 이중근]
이중근 회장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어둠에 잠긴 38선을 따라 운집한 북한군 1·2·3·4·5·6·12사단과 105전차여단에 ‘폭풍’이란 암호가 떨어졌다. 남침 개시 신호다. 11개 지점에서 침공이 시작됐다. 이날 오후, 중공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게 프랑스 통신사의 ‘북한 남침’ 뉴스가 급히 보고됐다. 전쟁은 예고됐지만 정작 남침 소식은 뉴스로 들은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김일성은 사흘 뒤인 28일이 돼서야 개전 사실을 공식 통보한다. 그것도 대사가 아닌 베이징 주재 북한 무관을 통해서다.’

이런 내용은 『6·25전쟁 1129일』에 나오는 새 사실(史實)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이다. 중국의 6·25전쟁 개입 결정과 관련된 움직임을, 중국 자료인 『중화인민공화국사편년(中華人民共和國史編年)』 등에서 새롭게 발굴한 내용을 중심으로 더 따라가 보자. 책은 급박하게 전개되는 전황을 눈에 확 들어오게 보여준다.

▶50년 8월 5일, 마오쩌둥은 동북변방군에게 “이달 내에 모든 작전 준비를 완료하라”고 명령한다. (날짜를 못 박은 마오의 지시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50년 8월 16일, 베이징 회담에서 바체슬라브 몰로토프 당시 소련 외상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을 때 중공군 15만 명이 출병하고 중요 물자는 소련이 제공한다”고 밝힌다. (1차 중공 지원군 규모는 18만 명이었다. 새로 공개되는 이 내용은 ‘중공군 파병이 소련과 협의한 것’이란 저간의 분석을 확인해 준다.)

▶50년 8월 30일, 가오강(高崗)이 마오쩌둥에게 전쟁 상황을 보고하면서 “조선인민군의 현재 역량으론 대구와 부산지역을 점령할 수 없다”고 밝힌다.

▶50년 8월 31일, 덩화·홍쉐즈·세팡 등이 린뱌오(林彪) 제4야전군 사령관에게 보고한다. “대치 국면이 지속하고 미국은 대구·부산을 고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조선인민군은 2개월 정도면 완전히 소진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50년 9월 7일, 외교부 관리 차이청원이 마오쩌둥에 보고한다. “미군이 인천 혹은 기타 지역에 상륙할 가능성이 있다. 조선 측은 미국의 접안 항구 문제로 상륙작전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는 내용이다.

▶50년 10월 13일,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중공군이 반드시 한국전쟁에 투입돼야 한다”고 전보를 보낸다. (마오쩌둥이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을 결정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6·25전쟁 1129일』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史實)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몰랐던 중국·미국·유럽·동구의 전쟁 관련 뉴스도 담고 있다. 그러나 책은 새로운 발굴보다 이 회장이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듯이 전쟁의 입체적 이해에 더 비중을 둔다. 다시 예를 들어 책 66쪽, 전쟁 18일차인 50년 7월 12일 기록의 일부를 보자.

‘이날 북한군은 홍성을 점령했고 대전 지구 유엔군은 금강 남안에서 후퇴했다. 비상계엄하의 중요 재판은 군사법정이 맡는 조치가 취해지고 외무부 정보국장의 밀항 급증에따른 담화 발표도 있었다. 한국은행은 1인당 예금 지출한도를 5000원으로 축소했다. 조선인민군 이상조 부참모장이 김일성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돼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나 무기 원조를 요청한다. 캐나다와 네덜란드 함대가 한국을 향해 떠났다. 미국은 네덜란드에 중국 석유 수출 금지를 요청했다.’

거듭하는 패배로 한국엔 힘든 날 중의 하루였지만 북한 사정도 어려워져가고 국제사회의 한국 지원이 시작되는 분위기가 정리돼 있다. 전쟁 중의 하루를 이처럼 한 곳에 포괄적으로 정리한 기록은 없다. 그날을 힘겹게 살았던 이들은 몰랐던 당시의 전체 그림을 모아놓은 것이다. 책에는 그런 장면이 1129개나 된다.

1950년 10월 25일 평양 시내로 진입하는 국군.
날씨 같은 5대 변수 넣어 새롭게 정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남정옥 책임연구원은 “이 책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6·25전쟁을 정치·국제·경제·사회·문화 면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첫 서적”이라며 “우리는 전쟁이 한반도 내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론 지구촌 깊이 영향을 미쳤음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6·25전쟁에 대한 일지 형식의 기록은 50년 6월 전쟁 직후부터 55년 6월까지를 대상으로 한 국방부의 ‘한국전란지’가 유일하다. 그러나 전쟁 중의 기록이라 제한적이며 부정확하다. 이후 전쟁 자료들이 더 나왔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60년대부터 국가사업으로 자료를 축적했고, 이후에도 많은 연구가 있었다. 미국·중국·옛소련·북한에서도 새로운 자료들이 나왔다. 이런 자료들은 개별 연구자들을 통해 활용되거나 산발적으로 공개됐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편년체 방식의 정리는 없었다. 남 박사는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자료와 새롭게 찾아낸 자료들을 한데 모은 균형 잡힌 책”이라며 “비유하자면 6·25전쟁 연구의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어 일반인이나 연구자에게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쟁기간 매일매일 나타난 세계의 태도, 미국의 전쟁대응, 아시아·유럽·공산권의 반응, 북한의 행보, 정부의 전쟁 의지 같은 것들이 입체적·종합적으로 기록돼 있어 잘만 활용하면 ‘전쟁 그래프’를 그릴 수도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은 날짜·음력·요일, 전쟁 차수, 날씨 등 5가지 요소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중근 회장은 “이는 일지 형식으로 정리하는 책의 기본 요건”이라고 말했다. 그중 하나인 날씨를 예로 들어보자. 6·25전쟁 때 날씨는 중요한 변수였다. 중공군은 미군 비행기가 뜨지 않는 흐린 날 자주 공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50년 11월 4일 중공군의 한반도 진입이 공개된 이래 51년 1월 초까지의 중공군 움직임을 살펴봤다. 그러자 날씨와의 관련성이 드러났다. 중공군이 나타난 11월 4·5일엔 흐렸고 이어 15·16일 흐릴 때 중공군은 총공세를 펼쳤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했다. ‘흐림’으로 기록된 50년 12월 3·15·16일, 51년 1월 6·7일 중공군은 공세를 취했다. 날씨가 맑을 때도 중공군은 움직였지만 이런 날은 대개 국군·미군이 승리하거나 중공군을 격파한 날이 많았다.

개전 초기 흐린 날씨와 중공군 공격의 연관성이 컸던 이유에 대해 남 박사는 “흐리면 미군 항공기가 출격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쟁 초기 미 항공기는 일본 규슈의 이타지케 기지에서 출격했다. 한반도 왕복에 걸린 시간은 최대 세 시간. 실제 작전은 30분밖에 못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날아와도 날이 흐리면 돌아가야 했다. 악천후는 중공군에게 방어망이 돼준 것이다. 이후 한반도 주변 바다엔 늘 4대 이상의 항공모함이 떠 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중요했다.

요일별로 정리한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남 박사는 말했다. 50년 6월 전쟁 발발 직후부터 51년 7월 9일 휴전회담이 개시되기까지의 전쟁 양상은 기동전, 이후 53년 7월까지는 고지 쟁탈전이었다. 남 박사는 두 시기를 구분해 요일·날씨 등을 변수로 시뮬레이션을 하면 6·25의 새 양상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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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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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